이제 만 6세지만 사람일 모르니까 미리 미리 준비를... 나는 파워J
워낙 혼인율이 날로 줄어드는 요즘
결혼식에 갈 기회도 잘 없지만,
뜨문 뜨문 결혼식에 가보면
가장 크게 바뀐 절차 중 하나가 바로
'주례'인 것 같다.
대개의 경우(라고 적고 나의 이야기)
신랑의 아버지 친구 혹은 신랑/신부와 인맥이 닿는 사람 중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직업이라고 하는 이른바
교수, 법조인, 고위관직자, 정치인 그리고
가장 만만한 선생님(주로 나이대 고려하면 교감/교장급)들께서
피눈물 같은 주말 프라임 시간대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10분~15분 짜리 일장연설을 했던 것 같다.
사실 개인적으로
일단 너무 안 들려서 불만이었고,
(조곤조곤/ 웅얼웅얼 하시거나 아니면 너무 딕션이 나쁜 경우가 대다수)
하는 얘기가 신랑 신부 잘 살라는 이야기 보다는
너무 지나치게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ㅁㅁ하니 좋더라,
ㅁㅁ하며 살아라하는 식의 '덕담'을 빙자한 '자기 자랑'인 경우가
많았어서 더 불편했던 것 같다.
빨리 축가 부르고 행진하고
사진 찍고 밥 먹으러 가야하는데....
아오 저 무슨 말이 이렇게 많어 ㅠㅠ
이게 나의 주례에 대한 '주'된 입장이었는데,
최근 참석한 2개의 결혼식에서 아주 재밌는 주례가 있었고
그게 요즘 트렌드인 것 같단 얘기를 들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과연 내 자녀가 결혼을 할지?)도 모르면서도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신랑신부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스토리텔링' 주례였다.
내가 참석한 ㅇ모 친구의 결혼식에서는
아주 식상하지만 색다른 이벤트가 2개 있었다.
먼저,
신랑 신부의 아버지, 어머니가 버진로드를 걸어서
입장하는 방식이었다.
상당히 쇼킹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1987년 ㅁ월 ㅁ일 결혼한 신랑 김ㅁㅁ, 신부 박ㅁㅁ' 입장
'1992년 ㅁ월 ㅁ일 결혼한 신랑 이ㅁㅁ, 신부 최ㅁㅁ' 입장
너무나 신박한 입장 방식에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버진로드를 다시 걷는 그 '리마인드' 웨딩의 기분을
자녀 결혼식에서 느낄 수 있는 것도 상당히 재밌었다.
다음은
신랑 신부 아버지가 차례로 축사를 하는 것이었는데,
(여기까진 다소 식상)
신부 아버지가 나와서 단상에서 하객들 바라보고 인사 한 번 하더니
갑자기 다시 자리로 가는 것이었다.
?_? 뭐지? 다들 뭐지? 왜 아무 말도 안하지?
하는 순간 불이 꺼지고 정면에 있는 스크린에 영상이 시작되었다!
신부의 어릴적 사진이 뜨며
아주 엉성한 글씨(아마 직접 영상을 편집하신 것 같다)로
'신부 아버지 ㅁㅁㅁ입니다.'가 적힌 영상이 나왔다.
* bgm은 양희은 <엄마가 딸에게> .....
https://youtu.be/8rWuQI9ljsY?si=7ZQP5eSeAryYk8w5
사실 감수성 풍부하신 분은 거기서
이미 눈물이 터졌을 것 같다.
나도 솔직히 그 엉성한 영상 도입부에서
아버지의 진심이 느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억나는 몇 문장을 옮기자면...
- '사랑하는 딸 ㅁㅁ야' 이 한 마디를 적고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적어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 식날도 나와서 읽다가 눈물만 날 것 같아서 이렇게 영상으로 성의없이 전한다.
- 니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널 가진 걸 후회한 적 없다.
- 니가 '나 아빠랑 결혼할거야'라며 엄마와 다투던 6살 모습이 아직도 눈에 너무 선하다.
- 그런 니가 클수록, 여자가 되어 갈 수록 나와는 많이 멀어졌던 것 같다.
- 어떤 얘기를 하면 좋을지 몰라서 한 마디 붙인다는 게 늘 듣기싫은 잔소리만 한 것 같다.
- 아빠는 너랑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 사위 ㅁㅁㅁ랑 잘 지내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싸우지말고 잘 살아라.
여기까지는 딸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 짠했는데,
이후로 아주 또 반전 포인트가 있었으니...
본인과 신부 어머니의
연애하던 때 사진(대략 80년대 초반)이 나오며
'그리고 사실 내 첫사랑 ㅁㅁㅁ여사'라는 자막이 나왔다....!
딸 어머님이 딸 영상에서는
눈물을 참으셨는데,
거기서 왈칵 우시는 모습이 보였다.
(아버님은 이미 계속 눈물 닦고 계심)
- ㅁㅁㅁ 여사, 내가 손에 물 안묻히게 고생 안하게 한다고 했는데 정작 맨날 고생만 시켰네.
- 내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라, 같이 살면서 너무 힘들었지?
- 우리 딸 ㅇㅇ 이렇게 예쁜 여자로 키워줘서 고마워.
- 그리고 나랑 30년 넘는 시간 함께해줘서 고마워.
-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이제 내가 못했던 것들 해주며 살게.
- 그러니 우리 아프지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이걸 영상으로 찍지 못해 아쉽지만,
촬영할 생각도 안 날 정도로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괜히 집에 있는 와이프 생각나서 마음이 찡했다.
나도 약 30년 후에 저런 마음일까?
결혼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해서 그 장면이 떠올랐다.
한 번의 기회에 두 명(+@)에게 마음을 전한
아버지의
일타이피 스킬도 인상 깊었지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정말 자식을 향한 사랑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서
마음이 뭉클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자녀(2018년생), 만6세 아들램 녀석이 만약
빠르면 20년
늦으면 30년 후에 결혼한다고 하며
나에게 축사를 부탁한다면?
나는 어떤 내용을 담아
이 녀석과의 시간을 회고하고
이 녀석과 함께할 친구에게 고마워하고
이 녀석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정제되지 않는데,
한 번 정제해서 2편에 전문(안)을 실어보려고 한다.
커밍순
- 오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