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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Nov 17. 2024

어른이 되어서도 첫 실패의 씁쓸함을 안고 살아간다.

나의 첫 실패는 여전히 아리고 아프다.


14일 목요일. 눈을 뜨자 흐린 날씨와 축 처진 몸, 울적한 기분이 한 번에 몰려왔다. 당황함도 잠시, 오늘이 무슨 날이더라 생각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수능 날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약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날에 발이 묶여 있다.


대한민국에서 입시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정해진 틀과 순위와 타이밍이 이토록 명확한 이 사회에서 그 시작이 대입이 아니던가. 십 대의 전부를 바치고, 온 가족이 매달리고, 수능 날 전 국민이 협조하며, 뉴스에도 나오는 그 대입말이다. 아마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에게 대학은 인생의 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시작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열아홉의 나는 나의 첫 실패를 경험했다.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수시 원서 6장을 모두 썼으며, 최저등급 또한 없었다. 즉, 내 입시에 있어 수능은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단 뜻이다. 그런 내가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약 십 년 동안 왜 수능 날만 되면 그다음 날까지 울적해지고 눈에 눈물이 고이게 되었는지는 2015년 11월로 돌아가야 알 수 있다.


그 해 수능은 물수능이었고, 오히려 상위권 학생들에게 불리했다. 자칫 실수라도 했다간 등급이 훅 떨어지곤 했으니까. 물론 이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 친한 친구들과도 상관없는 이야기여야 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 통을 내놓고, 전혀 고생하지 않았지만 고생했다는 말을 듣고, 맛있는 저녁을 먹기 위해 잠시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던 그때, 친구 한 명에게선 전화가, 또 다른 친구에게선 문자가 왔다. 

늘 모의고사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그만큼 치열했던 수험생활을 보냈던 그들이기에 도리어 내가 해방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들의 연락을 받았지만, 휴대폰 넘어 들려온 건 통곡의 목소리와 낙담 가득한 텍스트였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을 통해, 인생 처음으로 노력이 이토록 크게 배신할 수도 있구나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는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과 갈 줄 알았던 대학 모두 불합격 통보를 받았으며, 절망이란 감정이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땅 속으로 푹 꺼지는 듯한 기분임을 깨달았다.

내가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 아직도 그날의 금요일이 눈앞에 선연하다. 흐린 날씨와 음울한 분위기, 눅눅한 낙엽에게서 나는 달큼한 냄새. 왜 하필 해는 한 점 비추지 않았던지. 마치 울지도 않았던, 아니 못했던 나의 심정 같았다. 차라리 그날 속 시원히 펑펑 울었다면 매년 수능 날마다 내가 눈물 고이는 일은 없었을까. 그렇게 겪게 된 나의 첫 실패는 여전히 아리고 아프다. 


저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펼치라 했던가. 

어른인 우리는 대학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대학이 전부인 줄 아는 그대들을 보며 '그러니 열아홉이지.'라며 안쓰러움을 보내지만, 그리 말하는 어른 또한 열아홉의 선택들을 되돌아보곤 한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첫 실패의 씁쓸함을 안고 살아간다. 매년 50만의 수험생들이 이 씁쓸함을 모르기를 간절히 응원하지만, 혹여 이 씁쓸함을 맛보아야 한다면 부디 잘 달래주길 바란다. 그대가 나아갈 저 넓은 세상에 그대가 맛보았던 그 씁쓸함을 잘 소화시켜 영양분 삼아 큰 꿈을 펼쳐나가길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결과와 상관없이, 성실했던 나태했던, 마음만은 편치 않았을 지난 시간들은 잠시 잊어두고 이번 주말만큼은 편히 쉬었길 바란다. 지난 시간 동안 그대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순응이 곧 끝납니다.


12년의 길고 길었던 교육과정이 마무리됩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등하교하고 

점수에 의해 등급으로 줄 세워지고

싫어도 의무적으로 해야 했던 모든 순응으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었고,

인생의 가치가 대학 순위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먼저 성인이 된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10대 청소년 개개인의 가치를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순응이 곧 끝납니다. 


우린 당신이 제대로 찍길 바랍니다.

정답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이 시스템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출발을 하길 바랍니다.


우린 당신이 제대로 붙길 바랍니다.

대학에 붙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기조대로 세상과 제대로 한 판 붙길 바랍니다.


순응이 곧 끝납니다.


이제 세상에 불응할 수 있는

성인이 된 수험생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2019.11.11 

@theclub_home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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