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 청담에 위치한 제작가구 업체
두 번째 업체는 아내가 고른 곳이었다. 청담에 위치해 있어서 우리 집에서는 꽤 멀었다. 사무실은 주택가의 골목에 있어서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십오 분은 걸어가야 했다. 무덥고 습하기 그지없는 한 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 걷고 있자니 땀이 줄줄 흘렀다. 하필이면 가파른 오르막길을 한참 지나야 했다.
마치 산을 등반하듯 굽이진 골목길을 이리저리 헤맸지만, 사무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네이버 지도에 표시된 사무실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은 듯했다. 업체명이 적힌 간판도 보이지 않았다.
"바쁜가? 계속 통화 중이네."
아내가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통화가 되었고, 그제야 정확한 사무실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빌라 1층에 사무실에서 만난 대표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간판을 걸어놓으니, 동네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다 찾아와서 없애 버렸어요."
네이버 지도만 보고 찾아오다가 헤맬 것을 뻔히 알았을 텐데, 저런 말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이전에 상담했던 업체는 문자로 미리 약도 이미지까지 보내주었던 터라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지만, 힘들게 도착했으니 상담이라도 받아야 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서 상담을 시작했다. 업체의 대표는 말이 정말 많았다. 문제는 가구 이야기는 거의 없고,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는 점이었다.
"제가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문고리, 수전, 스위치 높이를 맞춰야 깔끔해 보여요."
"여기 2-way 에어컨은 너무 용량이 작네요. 4-way로 바꾸셔야 될 거예요."
"두 분이 키가 크시네요. 전에 배구선수 부부 가구도 해준 적이 있는데..."
끝도 없이 다른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처음에 한 시간 정도는 예의상 들어주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중간중간 말을 끊고 가구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애를 썼음에도 상담은 한 시간이 더 지나서야 끝났다.
대표는 여전히 할 말이 남은 눈치였다. 화려한 언변으로 어떻게든 손님을 붙잡으려는 속셈 같았지만,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이 자리를 빨리 뜨고 싶을 뿐이었다. 억지로 웃으며 나가는 우리에게 대표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주 안으로 견적서 보내드릴게요."
며칠 만에 견적서를 준다니 일처리는 빠르겠구나 싶었다.
약속했던 한 주가 지나고, 다시 또 한 주가 지났다.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견적서도 전화도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약속을 어긴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했지만, 전화해서 묻지 않았다. 기본적인 약속부터 어기는 업체와 거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약속을 어기고, 견적서조차 안 보내는 업체도 있다
#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제작가구 업체
견적서 비교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나머지 업체들도 만나야 했다. 건축사사무소에서 다섯 곳의 업체를 소개해 주었으니, 세 곳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 두 곳은 방문 없이 서면으로 견적을 받아볼 수 있었다. 업체가 요구하는 내용을 잘 정리해서 PDF 파일로 만든 후, 메일로 보냈다.
남은 한 곳은 경기도 광주에 있어서 집과 가까웠다. 날짜를 잡고 방문해 보니, 대표님의 인상이 참 좋았다. 대화도 잘 통하고 이런저런 좋은 조언도 많이 받았다. 여기서도 중요한 가구는 무늬목으로 하기를 추천했다.
문제는 견적을 내는 방식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우리가 준비해 간 평면도 위에 즉석에서 펜으로 가격을 적어 나갔다. 자재 원가나 크기, 공임에 대한 정확한 계산도 없이 말이다. 심지어 만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적었다.
"신발장 112만 원, 드레스룸 234만 원, 현관창고 154만 원...... 그리고, 주방은 음... 어떻게든 다 합쳐서 오천 만 원 아래로 맞춰 드릴게요."
이전 업체보다 저렴하게 해 준다고 하지만, 신뢰가 가지 않았다. 평면도 위에 숫자만 덩그러니 적힌 허무맹랑한 견적서가 아니라, 마감재, 서랍재, 목대 등 세부 사양이 꼼꼼히 적힌 견적서를 받고 싶었다.
# 서면으로 견적을 받은 제작가구 업체 A, B
일주일 뒤, 메일로 견적을 요청했던 두 곳에서 답장이 왔다. A업체는 우리가 맨 처음 방문했던 곳보다 천만 원 정도 저렴했다. 팬트리와 현관 창고의 자재 사양이 조금 낮아 보였지만,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나의 선택지가 더 생긴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반면, B업체가 보낸 견적서에는 가장 비싼 가격이 적혀 있었다. 부가세 포함해서 총 7,289만 원.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가격이었는데, 심지어 12% 할인이 적용되었음에도 이 가격이었다. 심지어 무늬목 마감도 아니었다. 이 업체는 깔끔하게 마음속에서 지웠다.
며칠 후, B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자신들이 보낸 견적서를 잘 받아 보았는지 물었다. 아마도 나는 조금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던 것 같다.
"네. 잘 봤는데요. 제 예산에는 너무 비싸서요."
솔직하게 나에게는 너무 비쌌다. 스마트폰 너머로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하. 그게요?"
업체대표가 어이없다는 듯이 비웃는 투로 말했다. 순간 기분이 확 상했지만, 사회인의 참을성을 발휘해 정중하게 전화를 끊었다. 속으로는 치미는 화를 삭였다. 집 짓다가 왜 10년 늙는지 조금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집 짓다 10년 늙는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됐다
집 짓기를 결심하기 전, 꽤 오랫동안 고민하며 책과 유튜브, 방송을 섭렵했다. 하지만 그 방대한 자료 중 제작가구를 자세히 다룬 내용은 거의 없었다. 빌트인 가구가 필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집의 구조나 단열, 설계와 시공에 집중하느라 가구는 뒷전이었다. '적당한 업체에 맡기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건축가와의 미팅과 달리, 가구 업체와의 미팅은 험난했다. 가장 큰 원인은 '정보의 비대칭성'이었다. 건축가가 선별해 준 업체들조차 제대로 된 홈페이지가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블로그나 SNS에는 예쁜 시공 사진만 있을 뿐, 구체적인 가격 정보는 전무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발품을 팔아 미팅하고, 견적서를 받아봐야 비로소 사양과 가격을 알 수 있는 구조였다.
결국, 최대한 많이 만나보고 견적서를 직접 비교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방법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건축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제작가구는 품질과 가격 못지않게 시공사, 건축가와의 협업 능력이 중요하다. 이 부분은 함께 일해본 건축가가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다.
가격 조건을 떠나 어디가 가장 나은지 묻자, 건축가는 조심스럽게 우리가 가장 처음 상담했던 업체를 추천했다. 꼼꼼한 작업 스타일과 원활한 협업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더 저렴한 곳도 있었지만, 우리는 건축가의 조언을 믿고 따르기로 결정했다.
필요할 때는 건축가의 조언을 구하자
Tip1. 소통이 잘 되는 업체를 선택하자.
결과적으로 처음 만난 업체와 계약하게 되었으니, 이후의 미팅들은 헛수고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점은 명확하다. 제작가구는 설치 전까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설계 변경이나 가전제품 모델 변경에 따라 가구 치수도 수시로 바뀐다. 따라서 말이 잘 통하고, 연락하기 편한 담당자를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능하면 검증이 가능할 만큼 상세한 견적서를 주는 곳을 택해야 한다. 평면도에 가구 위치 도면까지 첨부해 준다면 금상첨화다. 그래야 제대로 된 비교가 가능하다. 만약 복잡한 견적서 비교가 어렵다면, ChatGPT나 Gemini 같은 AI를 활용해 표로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