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악몽의 시작 - 지연된 일정

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by 소한

9월의 첫날, 설계가 끝나고 세 달 만에 처음으로 건축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건축주님, 잘 지내셨나요?"

"네. 잘 지냈습니다. 소장님도 잘 지내셨나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반가웠다. 마음 한편으로는 이제 곧 착공이 시작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일로 시공사 견적서 일부 전달 드렸는데요. 아직 모든 시공사가 보내지는 않았지만, 미리 상담받아 보셨으면 해서요."


순간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던 진행순서와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시공사 견적서가 모두 도착하면 건축사사무소에서 비교 견적서를 만들고, 건축주는 이를 토대로 시공사와 상담 일정을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가 알던 순서와는 많이 달랐지만, 일단 알겠다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일정이 밀렸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image.png 골조 시공 중인 우리 집 - 곡선 부분 보강을 위해 H빔이 추가되었다

전화를 끊고 메일을 열어 보았다. 건축사사무소에서 보낸 견적서 3개가 첨부되어 있었다. 메일 내용 중에는 다음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일정이 다소 늦어져 죄송합니다.'


우리 집 설계가 끝난 것은 5월 말이었다. 그때 안내받기로는 7월 중순에 시공사 선정, 7월 말에서 8월 초에 착공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벌써 9월 1일이었다. 시공사 선정 단계를 이제 진행하고 있으니, 일정이 한 달 반 정도 밀린 셈이었다.


사실, 8월부터 아내와 일정이 늦어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었다.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우리는 건축사사무소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계 시작할 때부터 일정을 넉넉히 잡아두었었다. 착공이 조금 늦어져도 준공 일정에 맞추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년 4월까지는 아직도 8개월이나 남아 있었다.


진짜 문제는 견적 비교표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메일에는 모든 견적이 취합된 후에 보내준다고 되어 있었다. 당장 시공사와 상담을 시작해야 하는데, 비교표도 없이 상담할 시공사를 골라야 했다.


세 곳의 시공사 견적이 모두 달랐다. 가장 비싼 곳과 가장 싼 곳의 가격 차이는 1억이었다. 그러나, 견적서를 열어서 확인해 보니 반영된 항목이 모두 달랐다. 담장 공사비가 견적에서 빠진 곳도 있었고, 부가세, 에어컨, 열회수 환기장치 등의 반영 여부도 시공사마다 달랐다.


모두 시공 견적서라고 보냈으나, 바로 비교해서 볼 수 없었다. 결국, 직접 비교표를 만들지 않고서는 합리적인 선택이 불가능했다. 엑셀, ChatGPT, 그리고 Notion을 열어서 비교를 시작했다.

견적 비교는 꼼꼼히 하자

견적서마다 제각각으로 지정한 별도 비용 항목을 일일이 계산해서 채워 넣었다. 담장을 반영 안 한 곳에는 담장 비용을 추가해서 넣고, 부가세가 빠진 곳에는 부가세를 넣었다. 문서를 보다 보니 외벽과 지붕의 단열재 견적을 누락한 곳도 있었다. 한참을 작업하고 나니, 그제야 동일한 항목을 반영했을 때의 견적을 비교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나온 시공비는 나를 암담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가장 비싼 곳의 견적은 우리 예산보다 1억 4,500만 원이나 비쌌다. 가장 저렴한 곳의 견적도 4,200만 원이 더 비쌌다. 설계 중에 작은 다락이 하나 추가 되어 미리 예산을 5천만 원 늘려둔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건축사사무소가 우리 예산을 고려해서 설계한 게 맞나?'

'나머지 시공사의 견적은 우리 예산에 들어올까?'

'시공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스스로 답을 낼 수 없는 의문이 끝도 없이 이어지다가, 결국 한 가지 생각만 머리에 남았다.


'집 지을 수 있을까?'


진짜 집 짓다가 10년 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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