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은 불을 끄지 않는다 24편
"쾅....콰콰광"
오토바이를 들어 받은 승용차는 멈춰 서지 않고 계속해서 밀고 나가며 오토바이와 운전자를 동시에 깔아 뭉게 버렸다. 의도적인 사고임이 분명해 보였다.
"어어억~! 뭐야 씨발! 아아악!"
김명주는 무식하게 밀고 들어오는 승용차 앞바퀴에 오토바이와 함께 하체가 깔렸다. 오른쪽 종아리 뼈에서 '빠그락'하며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느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어둠 속에서 허옇게 불타오르는 두 개의 눈동자가 김명주의 얼굴 바로 옆에서 미친 듯이 우르렁 거리며 울부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명주는 무의식결에 양손으로 차의 앞 범퍼를 잡고 밀어내려 힘을 주었다. 그 덕에 차 밑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고 뒤로 밀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7~8m 정도 뒤로 밀려났을 때 자동차는 '끽' 소리와 함께 멈춰 섰다. 김명주의 오른쪽 발은 오토바이와 승용차 사이에 부러진 채로 끼어있어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나마 바닥이 흙이었기에 큰 부상 없이 차바퀴에 말려들지 않고 뒤로만 밀려갔던 것이었다.
"헉헉~! 아악! 이런 씨발. 도대체 뭐야? 왜 이래? 왜? 아파 씨발! 내다리!"
자동차가 멈추고 나서야 종아리의 부러진 부위의 고통이 뇌 속으로 서서히 밀려들어 왔다. 자동차의 운전자가 서서히 문을 열고 내렸다. 김명주는 그 운전자를 보려고 눈을 들었으나 헤드라이트의 불빛으로 인하여 얼굴을 정확히 볼 수가 없었다. 몸을 비틀어 일어서려고 하였으나 차바퀴에 끼인 오른발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허겁지겁 달려와서 괜찮냐는 말과 함께 자신과 차의 상태를 확인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운전자는 산책이라도 하듯이 느긋한 발걸음으로 혀를 '쯧쯧쯧'하고 차며 쓰러져 있는 김명주 쪽으로 걸어갔다.
"이런 이런. 사고가 났네. 아이고 다리가 끼었네. 이거 완전히 부러진 것 같은데? 아프신가?"
"야이 개새끼야. 눈깔이 멀었어? 보면 몰라? 뒤에서 들이받은 주제에 지금 그게 할 말이야? 빨리 119.. 119에 전화부터 해. 아프단 말이야!. 다리가 꼈잖아 이 개새끼야!"
"어휴 술냄새. 그렇네. 다리가 꼈네. 크크크크 아프겠지. 아프지 않으면 이상한 거지?"
이죽거리며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운전자의 얼굴을 본 순간 김명주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그런 김명주의 표정을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H는 뒤에 감추고 있던 야구 방망이를 꺼내 들었다. 그 방망이를 보자마자 김명주의 눈빛은 분노에서 극심한 공포로 바뀌어져 갔다.
"크크크크크 병신! 이 차 번호판이 익숙하지 않아?"
H는 김명주 앞에 서서 차량의 번호판을 야구방망이로 가볍게 툭툭 건들었다. 번호판을 바라보던 김명주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김명주는 번호판과 H를 번갈아 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였다. 그때 H는 야구 방망이로 김명주의 머리를 내려쳤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김명주는 바람 빠진 풍선 인형처럼 그대로 푹 쓰러졌다.
"앗싸 홈런~! 구더기 같은 새끼. 네가 뭐 최민수라도 돼? 누구냐 넌?이라고 물어라도 보려고? 빙신새끼. 자 어서 가보자고 천사님이 기다리시는 곳으로. 이번에는 반드시 구원하고 말 거야. 암 반드시 구원해야지"
"끄응~! 여기가 어디지? 아파! "
겨우 정신을 차린 이수진이 눈을 뜨고 주의를 살피려 하였다. 그러나 눈에 무언가 천조각 같은 것이 묶여 있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몸을 바로 일으켜 세우려고 하였으나 손이 뒤로 묶여 있어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발은 물론이고 입도 두꺼운 천 소재의 재갈이 물려 있었다. 이수진은 검은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공포심이 온몸을 엄습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수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몸이 묶여있는 것이 아니었다. 짙은 암흑 속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저갱 속 같은 공허함이 미칠 듯이 두려워졌다. 그녀는 중증의 achluophobia 즉, 어둠공포증 환자였다. 깊은 공포 속에 빠져버린 그녀는 입에 재갈이 물려있지 않았다 하여도 비명은커녕 움직일 수 조차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의 공포심은 심장을 조이는 고통으로 변하여 그녀의 조여오기 시작하였다. 면도날로 베어내는 듯한 날카로운 고통과 거대한 힘으로 꽉 조여드는 듯한 아픔이 그녀의 가녀린 심장에 몰려들었다. 한 번에 끝나지 않은 고통은 심장의 고동에 연동되어 지속적이고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극심한 고통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이 오그라들고 숨이 막혀 쉬어지지 않았다. 간신히 깨어났던 정신이 점차 아득히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까물거리는 정신에도 김영주가 다시 돌아오면 겪어야 할 고통보다는 그냥 이대로 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수진은 지금의 모든 것이 김명주가 벌린 일로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수진이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2시간이 훌쩍 지난 후였다. 아마도 이수진 본인은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인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어둠과 무음의 폐쇄 공간이 불러온 공포에 정상적인 감각이 마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멀리서 정확히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들어보니 자동차의 배기음이었다. 부릉거리던 배기음이 가까이에서 사라진 뒤 담시의 시간이 지나고 '끼끼긱'하며 문 열리는 소리와 남자의 거친 호흡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음 음음음"
입에 채워진 재갈 때문에 제대로 된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크크크 궁금한 것이 많은가 보네. 준비가 끝나면 어련히 알게 될 것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아직 준비가 덜 되었어.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면 금방 끝날 거야. 끙차! 더럽게 무겁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미세하게 남자의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흠칫 놀라서 몸을 돌리려고 끙끙거리며 힘을 쓰는 이수진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H는 그녀에게 다가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를 풀어 버렸다.
"으윽!"
희미한 백열등 불빛조차도 짙은 어둠 속에 한참을 머물렀던 이수진에게는 심하게 눈이 부셨다. 눈을 찌푸리며 몇 번이나 깜박거려 간신히 실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H는 가만히 이수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궁금한 게 무척 많은가 보군. 뭐 상관없겠지? 마지막 단계만 남았으니까. 보고 싶으면 실컷 봐. 단 입마개는 풀어 줄 수 없어. 네가 소리라도 지르면 내가 좀 곤란해 지거든. 이해하지?"
이수진은 겁에 질린 눈으로 H를 바라보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해해서 그랬다기보다는 그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그녀의 고개를 저절로 끄덕이게 만든 것이다. 백열등 빛에 조금씩 익숙해지자 이수진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은 백열등이 하나 천장에 달려있는 컨테이너 박스 내부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이수진은 바로 옆에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남자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본능적으로 흠칫 놀랠 수밖에 없었다. 사냥감의 입장에서 결코 모를 수 없는 얼굴이었다. 포식자인 김명주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괜찮아. 놀라지 마. 그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한쪽 발은 이미 지옥에 걸치고 있으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어. 흠~! 이제 모든 준비는 마쳤으니 우리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질까? 재갈을 잠시 풀어줄까 하는데 혹시 소리 지르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 따위는 기대조차 하지는 마! 그런 일이 생기면 서로 슬픈 일이 발생할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수진은 H의 손에 들린 야구 방망이를 바라보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H는 가까이 다가가 이수진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고 다시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와 쪼그려 앉았다.
"자! 너는 누구지?"
H의 뜬금없는 질문에 이수진은 멍하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납치를 해왔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묻어 나오는 표정이었다.
"너가 누구냐고?"
"저... 저는 ... 이. 수. 진 이여요"
"아니, 아니 이 세상에서 불리는 이름 말고 너가 누구냐고? 너의 정체가 뭐냐고 묻고 있잖아!"
"네? 저는... 이수진이고 조그마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여성이..."
"아니, 아니 그것 말고 너의 정체! 넌 구더기야? 아니면 천사야? 너의 근원적 정체를 묻는 거잖아!"
"구...구더기? 천사....요?"
"그래. 너의 본모습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잖아."
"아저씨 저는 구더기도 천사도 아니여요. 그냥 평범한 직장여성이에요. 이러지 마세요. 지금의 일 절대 말하지 않을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에이, 그럴 순 없지. 운명이란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니까. 너! 저 개새끼 때문에 무척이나 힘든 삶을 살아왔지? 그거 왜인지 알아?"
"누구? 김명주요? 그건 제가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
"아니. 아니. 그건 너가 천사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천상에서 죄를 짓고 이 땅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저 구더기 새끼의 폭력과 악행을 견디어 내야 하는 벌을 받은 거야. 알아? 그리고 이제 충분한 벌을 받았으니 저속한 껍질을 벗고 탈피해야 해. 이제 천사인 너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지. 이제는 그걸 깨닭을 때가 되었어. 아! 내 소개가 늦었지? 난 구원자야. 너를 천사로 탈피시켜 줄 구원자. 좀 이해가 돼?"
"아뇨. 아저씨. 저는 천사니 뭐니 그런 게 아니여요. 전 그냥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직장여성에 불과해요. 아저씨가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제발 살려주세요."
"비루한 지상의 껍데기에 그리 연연하지 마. 천사로서의 고결함을 유지해야지."
이수진은 답답한 마음에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 순간 들린 절그럭 소리에 그녀는 자신의 다리가 쇠사슬에 묶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쇠사슬이 김명주의 다리와 연결되어 컨테이너의 하부에 자물쇠로 채워져 있는 것도 발견했다.
"악! 이게 이게 뭐야? 이 개새끼야. 이거 풀어. 애초 죽이려고 마음먹은 거지? 이거 풀어!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요! 음..으음응"
"사실 여기가 이 시간에 사람들이 올 만한 곳이 아니야. 아무리 소리쳐봐야 소용없어. 그래도 좀 시끄럽군.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는데 방해되니 미안하지만 입은 다시 막아야겠어."
H가 재갈을 다시 물리려고 하자 이수진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거칠게 반항하여 재갈이 입을 꽉 조이지 못하고 틈이 벌어졌다.
"살..인자.. 으음으. 살려 주... 살..인.자"
"난 저속한 살인자 따위가 아니야. 구원자라고. 알지도 못하는 벌레 따위가 어디서 감히 말을 함부로 해? 구원이라고. 너를 구원하기 위해 이러는 거라고."
힘으로 재갈을 다시 단단히 묶은 H가 이수진의 눈앞에 라이터를 켜자 그제야 주변의 신너와 페인트의 냄새를 맡게 되자 그녀는 더 심하게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쇠사슬 절그럭 거리는 소리만이 요란하게 컨테이너 내부에서 요동칠 뿐 외부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 천사님의 구원을 위하여!"
H는 컨테이너의 문을 열고 문 밖에서 라이터로 뭉쳐진 신문지에 불을 붙이고 미리 모아놓은 목재 파렛트 더미 위에 던졌다. 신너와 페인트가 뿌려진 목재들은 곧바로 불이 활활 타올랐고 컨테이너 전체로 번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