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은 불을 끄지 않는다 25부
"으헉! 이게 뭐야? 한 사람이 아니네."
"네 형님! 두 사람인데 이건 뭐. 하나로 뭉쳐져서 둘이라 하기도 그렇고 합체된 완전체네요"
"뭐? 합체? 완전체? 고인 앞에서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휴! 이렇게 농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보기 너무 힘들어서요. 미친놈 중에도 완전 개또라이 미친놈인 것 같아요. 사람을 산체로 태워 죽인 것도 소름 끼치는데 어떻게 두 명을 저렇게 쇠사슬로 엮어서..."
"개또라이 미친놈인 것은 맞아. 이거 뭔지 알지?"
"어? 이거 초소형 무선 카메라 아니에요? 다 타버렸네요"
"응 맞아. 무선 카메라. 이게 이 작은 컨테이너에서 6개나 나왔어. 이 미친놈이 현장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있었어. 아무리 봐도 이 새끼는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상의 사이코패스인 것 같아."
"녹화도 했겠죠?"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휴~! 등록된 변태 성욕 전과자부터 알리바이 확인해 보고 피해자 신원 확인되는 데로 주변 사람들 조사해. 치정이나 원한일 가능성도 높아."
한참 사건에 대한 회의가 진행되는 시화경찰서 회의실의 문이 벌컥하고 열렸다.
"누구야? 회의 중이라고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나다. 니 서장! 니가 간댕이가 부었지?"
"엇! 서장님 이신 줄 몰랐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서장님께 반말 따위를 찍찍하겠습니까? 근데 갑자기 뭔 바람이 불어서 회의실까지 왕림하셨는지요?"
"이 시끼가 새끼줄을 꼬다 왔나 어디서 베베 비꼬고 있어? 됐고! 인사나 해. 남동서 강력계 박찬유 팀장이야. 내가 중부서에 있을 때 데리고 있던 후배니까 잘해줘!"
"네. 네. 네.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박찬유 팀장님? 이쪽으로 오시죠"
서장이 회의실 문을 닫고 나가자 시흥 경찰서 김동진 팀장의 말투가 확 바뀌었다.
"안녕하십니까? 시흥서 강력계 김동진 팀장입니다. 남동서에서 예까지 뭔 일로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박찬유입니다. 사건 뺏으려고 온 것도 아니고 감찰 온 것도 아니니 너무 각 세우지 마시죠."
"흐흐흐 그래요. 그러지요. 자 본론으로 직행하시죠."
박찬유 팀장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봉투에서 파란색의 파일을 꺼내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김동진 팀장을 바라보았다. 박찬유 팀장의 눈빛을 가만히 바라보던 김동진 팀장은 파일을 손으로 들쳐보았다. 파일에 끼어있던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끔찍한 방화살인 사건의 현장사진이었다. 몇 장의 사진을 살펴보던 김동진 팀장의 시선이 갑자기 한 장의 사진에 고정되었다.
"이거...."
"네, 저희가 온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2주 전에 저희 관할구역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그제 대부도에서 발생한 사건이과 유사성이 높아 확인을 해보려고 온 것입니다. 혹시 현장 사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하~! 이 개 사이코 새끼. 초범이 아니네.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연쇄네 연쇄. 이 미친 새끼. 사진은 여기 있으니 마음껏 보시고요."
"역시... 여기도 쇠사슬을 사용했군요. 그리고 신너와 페인트를 이용하여 화력을 최대화하였고. 동일 수법이네요. 그런데 여기는 피해자가 여자 혼자가 아니네요."
"네. 남자와 같이 묶어서 세트로 불태웠습니다. 범행이 점점 확대되어 나가는 것 같군요."
그때 시흥서의 한 형사가 서류를 들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김 팀장님. 피해자 신원 나왔습니다. 남자는 김명주, 여자는 이수진입니다. 혹시 기억나세요? 얼마 전에 데이트 폭력으로 들어왔었던..."
"아! 그 커플? 여자가 고소를 거부해서 남자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지 아마?"
"네. 맞습니다. 나간 지 며칠 되지 않아 당했습니다."
"흠! 참 애매하네. 복수도 아니고 치정일까? 여자도 같이 죽인 걸 봐서는.... 근데 또 이게 연쇄라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이때 사건현장 사진을 살펴보던 박찬유 팀장이 끼어들었다.
"혹시 방금 데이트 폭력사건이라고 하셨나요? 김명주가 가해자인가요?"
"네 맞습니다. 남자의 폭행으로 이수진 씨는 전치 6주의 상해를 당했고 유산까지 되었는데 두려움 때문인지 고소를 거부해서 무혐의로 결론 났습니다. 물론 가해자는 김명주였고요."
"그런데 대부도의 버려진 컨테이너에서 둘이 함께 쇠사슬에 묶여 불타 죽였다라... 이수진이 복수를 한 것이라면 김명주를 어떻게 쇠사슬에 묶을 수 있었을까요?"
"검시결과 김명주의 몸에 교통사고로 추정되는 전신 타박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우측 다리와 갈비뼈도 몇 개 부러졌고요. 김명주를 대부도 쪽으로 유인하여 뒤에서 차로 충돌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수진이 전치 6주의 부상 상태인 데다 유산까지 한 몸으로 쓰러진 김명주를 차로 그 컨테이너까지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정신을 잃은 70KG에 육박하는 김명주를 부상당한 여자 혼자서 차 트렁크에 싣고 더구나 끌고 간 흔적 하나 없이 컨테이너 안으로 옳기는 것은..."
박찬유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현장 사진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사진 한 장을 들어 김 팀장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건 뭐죠?"
"아! 그거 초소형 무선 카메라입니다. 자체 와이파이로 핸드폰에 영상이 전송되는 방식입니다. 물론 핸드폰은 대포폰이고 이미 폐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컨테이너 사방에 6개나 설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미친 새끼가 아마도 현장을 녹화한 것 같습니다."
"동일범이 확실합니다. 치정이나 복수도 아니고요. 제삼자에 의한 방화살인이 확실하네요."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저희 관할에서 일어난 사건과 거의 유사성이 높습니다. 살해방법과 쇠사슬 등의 도구는 물론이고 피해자 선정도 유사합니다. 심한 폭력의 피해자라는 유사성은 물론 방화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도 동일합니다. 가해 남자까지 포함해 피해자가 늘어났다는 점과 직접 지켜보는 것에서 초 소형 무선카메라를 이용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범행이 점차 지능화, 계획화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추가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빨리 잡지 않으면 정말 위험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H야! 빅뉴스다 빅뉴스!"
"또 뭐? 뭔데 난리야?"
"너 어제 비번일 때 우리 구역에서 큰 사건이 있었어. 살인사건이 발생했어. 대부도 컨테이너에 두 사람이 방화로 불에 타 죽었는데 끔찍하게도 산채로 쇠사슬에 묶여 죽었어. 시발! 불 끄러 나갔다가 식겁했잖아. 페인트 때문에 둘이 완전히 붙어서 녹아내렸어. 너무 그로테스크한 모습이라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기분 정말 더러워. 경찰에서 수사 들어갔다는데 어찌 됐는지 모르겠다. 하필이면 우리 관내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가지고"
"경찰은 뭐래?"
"뭐래 기는 사이코 변태 새끼인 것 같다고 그러지. 사건이 너무 흉악스러워서 경찰들도 치를 떨더라. 어떤 미친 새끼인지 몰라도 이거 무서워서 어디 살겠냐? 참! 그 미친 새끼가 방화 장면을 고스란히 녹화했다고 하더라, 사방에 초소형 무선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러던데"
"어제 비번이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네. 그런 꼴 보지 않을 수 있어서"
H는 성중이의 말에 천연덕스럽게 대꾸를 하였다.
흡연실에서 한참을 주절거리며 떠들던 성중이가 사무실로 내려가자 H는 손에 들고 있던 꽁초를 재떨이에 털어 버리고 새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불이 눈앞에서 타오르는 순간 어제저녁 컨테이너 안에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수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 죽어요?"
"아니 구원이야. 죽는 게 아니고 구원되는 거야."
"구원? 구원? 이게 무슨 구원인가요? 이렇게 묶여서 불에 타 죽는 게 무슨 구원이에요?"
"불의한 세상으로부터 탈출하여 너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지. 너의 본래 모습은 천사였어. 하늘에서 죄를 지어 지상에 떨어져 벌을 받고 있었던 거야. 이제 때가 되었으니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해. 난 그런 너를 구원해 주는 구원자이고. 인간의 입장에서는 조금 과격한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죽음을 통한 구원이라 어쩔 수 없어. 죽음이란 하나같이 난폭하고 공포스러운 일이야. 다른 죽음과 크게 틀릴 바 없어. 그냥 하나의 과정이지. 천사가 되기 위한 탈피의 과정.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해. 그러기 위해 필요한 과정의 일부일 뿐이야."
"천사? 구원? 탈피? 크크크크 킥킥킥킥!"
중얼거리던 이수진의 입에서 괴이한 웃음소리가 마치 성대를 거치지 않고 공중에서 퍼져 나오는 것처럼 거칠고 괴기스럽게 터져 나왔다.
"이따위게 구원이라고? 내가 천사가 되는 과정이라고? 미친 새끼 지랄하고 있네. 내가 겨우 이 꼴이나 당하려고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줄 알아? 내가 왜?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데? 니가 뭔데 나를 구원하네 마네 지랄이야? 날 좀 내버려 두면 안 돼?"
"그건..."
"뭐 죄를 지어서 벌 받는 거라고? 충분하잖아. 이 거지 같은 삶을 견뎌온 것만으로도 충분하잖아. 아기까지도 빼앗아 갔으면서 그것만으로 부족해? 모자라?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산 채로 불태워 죽어야만 구원이 된다는 거야? 부모한테 버림받고 어린 나이에 주변의 온갖 사내새끼들한테 성폭행당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들어간 직장에서는 퇴직금 한 푼 못 받고 쫓겨나고. 겨우 마음 잡고 만난 애인이라는 짐승 새끼는 폭력에 약에 찌든 악마새끼고... 이제는 납치까지 당해서 불타 죽어야 된다고? 그래야 천사가 된다고?"
"그건 니가 하늘에서 죄를 지어서.."
"이 세상에 맞고 사는 모든 년들이 다 천사야? 부유하게 행복을 누리는 착한 년들은 다 죽으면 벌 받게 돼? 왜 이렇게 불공평해? 죽는 것조차 이렇게 불공평해야 해? 시발! 나 천사 안 할래? 그냥 편하게 날 좀 내버려 둬. 너나 하느님이나 개뿔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이 지랄이야? 날 그냥 놔둬 달라고"
"때가 도래했기 때문에 이러는 거야. 이제는 천사가 돼서 행복하고 편하게 지내는 존재가 돼야지. 그러려면 탈피를 해야 하고.."
"그걸 네까짓 게 왜 결정해? 내 삶이고 내 목숨이야. 내가 천사라면 그냥 내버려 둬. 죽어도 내가 알아서 죽을 거야. 내가 결정할 거라고. 이 미친 사이코 새끼야!"
미친 듯 항변하는 이수진을 바라보던 H는 한숨을 쉬며 풀었던 입마개를 다시 묶으려고 하였다. 패악을 떨던 이수진은 그런 H를 증오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며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이 살인자 새끼. 이건 구원도 뭣도 아냐. 그냥 살인일 뿐이지. 넌 살인자야. 널 저주할 거야. 네가 이보다 더 큰 고통 속에서 오랜 시간 절대 쉽게 죽지 말라고. 반드시 그렇게 되라고 저주할 거야. 이 미친 사이코 살인자"
H는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이수진의 입을 막았고 라이터를 켜서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종이에 불을 붙였다. 이수진은 포기한 듯 아무런 반항도 없이 H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불이 점차 번져 나감에도 불구하고 이수진은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컨테이너를 나가는 H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H는 문을 닫으며 그런 그녀의 눈을 다시 한번 무심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H는 세워두었던 이수진의 차에도 불을 지르고 앞쪽의 갯벌을 따라 1km 밖에 미리 세워놓았던 자신의 오토바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고 큰길까지 몰고 나온 후 대부 바다향기 테마파크 주차장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갔다. 그곳은 평일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특히 음식점이나 카페가 밀집되지 않은 골목길 쪽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더구나 철새 보호구역이라 CCTV도 설치되어있지 않아 몸을 피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H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무선영상 앱을 실행시켰다. 6개의 분할 화면이 컨테이너의 내부를 입체적으로 비춰주고 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았음에도 컨테이너 내부는 온통 화염에 휩싸였다. 첫 번째 카메라에 넘실거리는 화염사이로 김명주의 모습이 보였다. 다리는 부러진 상태로 피를 흘리며 아직도 정신을 잃고 쓰러진 상태였다. 두 번째 카메라를 확대하니 두 사람의 모습이 더 확실하게 보였다. 놀랍게도 이수진이 김명주의 상채를 껴안고 있었다. 마치 피에타 조각상을 보고 있는 듯한 신성한 느낌이 감돌았다. 이수진은 어떤 마음으로 김명주를 껴안고 있는 것일까? H는 기묘한 분위기에 눌려 화면을 보지 못하고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무음의 영상에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다음에는 마이크도 설치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이수진의 행동이 궁금해진 H는 다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H는 깜짝 놀라 핸드폰을 바닥에 떨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