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은 불을 끄지 않는다 27
"아 미치겠네. 도대체 어떤 미친개 또라이 사이코 새끼야? 이건 그냥 단순히 미쳤다고 표현하기에는 모자라도 너무 모자라."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산채로 태워 죽일 수 있죠? 그러고 또 그걸 좋다고 녹화해서 보고 있었다니. 이거 이거 절대 인간이 아니네요.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겠어요?"
"자자! 모두 주목! 속칭 쇠사슬 살인마. 이 사건 오늘 이 시간 부로 공개수사로 전환한다."
"예? 반장님. 그러기에는 너무 사건이 잔인해서 사회적 파장이 클 텐데요"
"그걸 아시는 분이 여태 뭐 하셨어요? 박 팀장님! 기자들도 더 이상 엠바고를 거부하고 있고 박팀장 말대로 사회적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 기밀유지가 어려워. 윗분들도 닦달이 심하고. 차라리 CCTV에 찍힌 모습 공개하고 수사하면 뭐라도 건질 수 있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범인이 몸이라도 움츠릴 거 아냐. 어떻게든 연쇄 살인은 막아야지."
"에이씨. 흐릿한 뒷모습 하고 모자에 마스크로 다 가려진 그 CCTV 영상 보고 누군지 알 수 있으면 대한민국에 범죄자란 범죄자는 다 잡히고 없겠네."
"야! 박찬유! 그럼 어쩌라고 벌써 6건째야. 인천만 해도 벌써 3건이나 동일 연쇄사건이 발생했고 시흥과 화성에서도 각각 2건, 1건 총 6건이나 발생했다고. 우리만이 아니라 시흥, 화성 쪽도 다 뒤집어졌어. 공개수사 아니면 아무런 답도 없는데 어떻게든 해봐야지. 곧 경찰청에서 광역수사대 전담팀을 만들 거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에이씨. 알았다고요. 알았어요. 야! 송형사. 피해자들 인적사항하고 사건 보고서 다 들고 회의실로 와!"
박찬유 팀장은 회의실 탁자에 여태껏 발생된 쇠사슬 살인마의 사건을 시간 순으로 늘어놓았다. 너무 잔혹하여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욕지기가 뱃속 깊은 곳에서 밀려 올라올 정도였다. 그동안 많은 사체를 보았고 더 잔인한 현장도 경험해 보았음에도 이놈이 저지른 살인 현장은 볼수록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살인에는 보통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이익, 복수, 쾌락 이것이다. 이놈이 노린 피해자들은 모두 데이트 폭력에 시달린 불우한 여성들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가해자인 남자가 포함되어 있다. 즉, 이익이나 복수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남은 것은 쾌락인데 놈의 현장에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물론 소형 카메라를 설치하고 녹화를 하는 것으로 보아 놈이 피해자의 죽는 모습을 보며 쾌락을 즐기는 변태 성욕자일 것이라는 범죄심리학자의 의견은 타당성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박 팀장이 현장에서 느낀 감정은 단순한 변태 성욕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모자란 느낌이 들었다. 변태적인 성욕의 성향이 다소 가미되었던 최초의 구월동 사건 이후 점차 무미건조하고 냉철한, 마치 의뢰를 받은 전문킬러와 같은 느낌이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회의 중 박팀장의 이러한 이야기에 송형사는 불쑥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의무? 킬러를 고용해서 불쌍한 여자들을 골라 죽인다? 에이 말이 안 돼! 의무... 의무... 무슨 의식 같은 것 아닐까? 종교의식! 불로 죽어야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신흥 종교일까? 불을 믿는 신흥종교?"
"뭐? 송형사! 방금 뭐라고 했냐? 의식? 종교의식?"
"에? 아니 그러니까 그냥 혼자 생각해 본다는 게 입으로 흘러..."
"그래! 종교의식! 그래 현장에서 죄의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설명이 돼. 종교의식이라면"
"박팀장님! 저 갑자기 아랍 쪽의 명예살인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확 떠오르네요. 혹시?"
"그건 좀 너무 나갔어. 피해 여자들이 이슬람교도도 아니고 대부분의 전 남자 친구들 알리바이가 확실하잖아. 대부분의 피해 여성들이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고. 그건 아니고. 현장들을 보면서 든 느낌이 그렇다는 거야. 마치 종교의식을 치른 듯한 그런 느낌말이야. 고대 이집트나 마야에서 신에게 재물을 바치 듯 일정한 방법, 유사성이 짙은 피해 여성의 상황, 차분한 현장의 느낌 등등 그런 것 말이야. 일단 신흥 종교 쪽도 조사해 봐. 피해자들과의 접점이 있는지도 확인해 보고. 교회라고 무조건 기독교일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자세히 접근해 알아봐!"
"씨발 ~! 다 꺼져. 지옥으로 가라고. 다 꺼져버려!"
H는 온몸이 식은땀에 젖은 채로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꿈이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 똑같은 꿈을 꾸고 있다. 사방이 막힌 캄캄한 공간에 홀로 서있다. H가 거친 숨 내뱉을 때마다 주변 공간이 같이 공명을 한다. 들 숨에 사방이 쪼그라든다. 짓누를 듯이 보이지 않는 검은 장막이 H를 향해 몰려온다. 숨이 들이켜지지 않는다. 모든 공간을 완벽하게 차단한 검은 장막이 H의 몸에 레깅스처럼 달라붙는다. 숨이 막혀온다. H와 검은 장막의 사이에는 어떠한 간격도 존재하지 않는다. 공포에 질린 H의 목은 뻐끔거리기만 할 뿐 어떠한 소리도 뱉어내지를 못하고 있다. 공포심에 삼킨 침 한 방울이 식도가 아닌 폐를 향해 질주한다. 냉정한 기도는 자신에게 들어온 이물질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숨구멍은 이단자를 내쫓으려는 듯 격렬하게 반응했고 그 반응은 강렬한 기침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폐부 구석에 남아 있는 미량의 공기가 외부로 터져 나온다. 그 덕분에 H를 강하게 조이고 있던 검은 장막이 바깥으로 밀려나간다. 틈이 생긴다.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H는 급히 숨을 들이켜려고 한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싼 검은 장막이 다시 H에게 달라붙는다.
숨을 쉬지 못하고 꺽꺽거리며 목을 부여잡고 있는 H의 눈에 검은 장막 넘어 자신을 향해 꾸물럭 거리며 기어 오는 구더기들이 보인다. 빛 한 조각 새어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 넘어 어떤 것도 볼 수 없었음에도 자신을 향해 해맑은 인간의 얼굴로 웃으며 기어 오는 거대한 구더기들이 보이고 있다. 1호 천사 후보였던 임현지, 이수진, 길마리 등등. '응? 그런데 길마리? 그녀는 이미 천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는데? 왜 저기서 구더기가 되어 나에게로 달려오는 거지?' 그랬다. 길마리는 이미 탈피하여 구원되었음에도 구더기로 다시 나타나 H를 향해 미친 듯이 꾸물럭 거리며 돌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 천사 후보였던 여자들과 같이 죽은 남자 애인들도 합세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심지어 이름 모를 노숙자까지도 거대한 한 마리의 구더기가 되어 서로 몸이 뒤엉키고 섞이고 부딪치며 기어 오고 있다. 몸에서는 진득한 액체가 흘러나와 검은 바닥을 더욱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구더기들은 H를 중심으로 둘러서더니 모두 똑같은 무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선다. 거대한 덩치에 H는 자신이 미천한 한 마리의 개미 같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하고 헛웃음이 나온다. 무거운 침묵. 거대한 구더기들의 압박에 견디다 못한 H가 들숨을 한 모금 들이킨다. 순간 모든 구더기들의 몸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 올라오며 번들거리는 진액이 사방으로 터져 나온다. 그 진액이 H를 둘러싼 검은 장막에 닿자 마치 뜨거운 물에 넣은 검은 초콜릿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녹은 검은 장막은 구더기들의 몸에서 나온 액체와 섞이어 검은 바닥으로 스며든다. 스펀치처럼 액체들을 흡수한 바닥에 조그마한 점이 생기더니 점차 점차 커져간다. 그랜드캐년 협곡만큼 커진 구멍에서 묵직한 진동이 울려 퍼진다.
"쿵... 쿵... 쿵... 쿵"
진동은 거대한 무엇인가의 걸음 소리가 되어 점점 커져간다. H가 숨을 멈추고 구멍 속을 들여다보자 불쑥하고 거대한 얼굴이 솟아오른다. H를 둘러싸고 있는 구더기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구더기가 구멍에서 얼굴을 내민다.
"어... 어... 헉! 엄... 마...?"
구멍에서 올라온 거대한 구더기는 엄마다. 아니 엄마의 얼굴이다. 온통 흰자위 하나 없이 붉은색만 남은 눈으로 H를 쳐다보던 엄마 얼굴을 가진 구더기의 입이 얼린다.
"살... 인... 자. 살... 인... 자. 살... 인... 자."
주변의 구더기들도 동시에 엄마 구더기를 따라 외친다.
"살... 인... 자. 살... 인... 자. 살... 인... 자."
그들의 소리에 H의 입도 마치 공명하듯 열리며 외친다.
"살... 인... 자. 살... 인... 자. 살... 인... 자. 뭐? 살인자? 아냐. 아냐. 난 살인자가 아니야. 꺼져. 다 꺼지라고!"
그들은 벌어진 H의 입에 불덩이가 이글거리는 거대한 몸뚱이를 쑤셔 넣기 시작했다. 도저히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 H의 작은 입으로 꾸역꾸역 삼켜지고 있었다.
"욱.. 욱..ㅇ...."
H는 시원한 생수 반 병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서야 겨우 정신은 차렸으나 한동안 퀭한 눈으로 침대에 앉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다. 육체는 거의 탈진한 상태였던 것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야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H는 다시 벌러덩 침대에 누웠다.
'뭐지? 왜지? 왜 자꾸 살인자라고 하는 거지? 그것들은 어차피 구더기였잖아. 천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정도의 희생은 당연한 거잖아. 그까짓 구더기 따위. 시발! 보여줄 거야. 내 잘못이 아니야. 천사는 있어. 내가 반드시 천사를 찾을 거야. 그리고 구원시켜 줄 거야 꼭."
짙은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던 H는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누워있을 시간이 없었다. 서랍에 들어있는 구원의 성경을 꺼내왔다. 그러고는 붉은색 볼펜을 들어 이름 위에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의 이름에 새겨진 붉은색보다 더 진한 붉은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들 거렸다.
구급사인 이선희는 간신히 눈을 뜰 수 있었다. 뒷머리가 찡하고 울려와 인상이 저절로 구겨졌다. 묶인 두 손을 목 뒤로 올려 꾹꾹 누르자 조금 나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떴으나 사방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몸을 일으켰으나 머리에 무언가 단단한 것이 부딪쳤다. 눈에서 불이 번쩍하고 튀는 느낌이었다. 손을 천천히 올려 더듬었다. 쇠창살이었다. 천천히 주변을 손으로 더듬어 보았으나 모두 쇠창살로 막혀있었다. 쇠창살 사이는 두꺼운 천 같은 것으로 쳐져있었다. 소리를 지르려고 했으나 입은 두꺼운 마개로 막혀있어 아무런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이선희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자신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갇혀 꽁꽁 묶여있는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확실하게 인식이 되었을 때, 이선희 구급사는 심연에 잠겨있었던 어떤 기억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의식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사방으로 깨어져 나갔던 우울하고 음침한 과거기억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모이고 있었다. 뱃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검고 음흉한 손이 이선희 구급사의 심장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작은 몸뚱이에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력,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엄마의 비참한 모습, 사방이 어둠으로 막혀있는 골방. 희미한 불빛 아래 서서히 다가오던 검은손, 흥분으로 터져버린 실핏줄이 눈알 전체를 붉게 물들어 지옥에서 막 올라온 악마처럼 느껴지는 아빠의 눈빛, 무너져 쓰러져 있는 자신의 허벅지를 타고 오르는 소름 끼치는 잔혹한 손길 그리고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옥의 시간. 패닉에 빠져버린 온몸이 덜덜 떨려오고 숨이 가빠왔다. 이선희 구급사는 절망 속으로 자신의 모든 것이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움직일 수도 도망갈 수도 아니 숨 쉬는 것조차도 불가능하였다.
이선희 구급사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던 것은 H 소방사와의 술자리였다. 동료들과 퇴근하면서 간단하게 한잔 먹자고 시작된 술자리가 소방팀 인원의 참여로 커졌고 3차에 걸친 과음으로 만취가 되어갈 무렵 술을 견디지 못하고 몰래 빠져나왔었다.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버스를 타지 못하고 집 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H가 그녀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선희는 평소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H가 내미는 캔커피를 거절하지 못하고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더 이상의 기억이 없었다. 짙은 안갯속으로 걸어간 느낌만 남아 있었다.
패닉상태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그녀의 귀에 멀리서 터벅거리며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암흑의 공포 속에 빠져 있는 그녀에게는 오히려 낯선 발자국 소리가 반갑게 느껴졌다.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내려고 혼심의 힘을 기울였다. 그 덕분이었을까? 발자국은 그녀의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누군가가 암흑의 커튼을 제거하고 쇠창살로부터 자신을 구해주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드디어 검은 커튼이 옆으로 제쳐지고 빛이 조금씩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커튼이 완전히 제쳐지고 밝은 빛에 제대로 뜨지 못했던 눈을 여러 번 깜박이자 주위의 여러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보이는 발자국의 주인의 모습!
"안녕? 마이 앤젤?"
그의 얼굴을 본 이선희 구급사는 깜짝 놀라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