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사람들 3
나는 뉴스를 보고는 부모님이 죽었다 살아 돌아오셨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핸드폰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내가 신고를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경찰에 함부로 전화하기가 두려웠다. 혹시라도 부모님이 정부의 비밀기관에 끌려가서 이상한 실험이라도 당한다면 그건 결코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기에 함부로 연락하기 어려웠다.
조금 두고 볼 시간이 필요했다. 계속 TV 뉴스와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며 돌아온 사람들에 대하여 정보를 모아갔다. 삼 일이 지나갔다. 부모님은 생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생활을 이어가셨다. 돌아온 사람들에 대한 정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정부의 조사도 진척이 크게 없었다. 그럼에도 돌아온 사람에 대한 소식은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나는 도저히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중전화로 경찰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러나 경찰의 대답은 그저 신원을 요구하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생전과 똑같았다.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조금씩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든 엄마든 동생들에 대한 질문을 전혀 하지 않았다.
동생들이 한 번도 보이지 않았음에도 안부를 묻지도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전혀 없었다. 내 책상에 동생들의 사진이 버젓이 놓여있음에도 한 번도 두 사람에 대하여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먼저 동생들에 대하여 궁금하지 않냐고 물어봐도 그들이 죽은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이 그저 웃으며 자리를 피하곤 했다.
삼 주일이 지나면서 그 사람들에 대한 공식적인 명칭이 ‘돌아온 사람들’이라고 명명되었다. 그리고 국가 주관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신체에 대한 정밀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죽기 전과 동일한 상태라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돌아온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돌아온 사람들이 돌아오기 전 가까운 시일에 가족 중에 사망자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한 명이 죽은 가정에는 먼저 죽은 한 명이, 두 명이 죽은 경우에는 두 명이 살아나 돌아왔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돌아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동생 두 명이 죽었기 때문에 돌아오실 수 있었던 것이었다. 특별히 돌아온 사람에 대한 불이익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부모님에게 경찰에 자진신고 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두 분도 의외로 수월하게 수긍하였고 그날로 바로 경찰에 전화를 하였다.
집으로 온 것은 경찰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이 입은 전신 방호복의 등 쪽에는 ‘국립 보건 연구소’란 이름이 새겨진 있었다. 부모님은 그들이 몰고 온 차를 타고 가서 이틀 정도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특별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두 사람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살아 돌아온 지 정확하게 49일이 지나고 나서부터였다. 49일이 되는 날 아침. 엄마는 내 방을 청소하며 그동안 한 번도 쳐다보지도 않았던 동생들의 사진을 들어 애잔하게 쳐다보다가 액자에 묻은 먼지를 조심스럽게 물휴지로 닦으며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깬 나를 쳐다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아들. 동생들 보고 싶지?”
다정한 목소리였음에도 나는 왠지 모르게 몸에서 소름이 돋아 올랐다. 분명 입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에서 불그스름한 기운이 감돌고 냉랭한 살기가 흘러나와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살기였다. 초 가을에 겨우 발을 디딘 지금 아무리 아침이라 하더라도 냉기가 돌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 싸늘한 냉기는 결코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엄마의 몸에서 차가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환상에 몸마저 굳어져 버렸다. 나의 변화를 눈치챈 것일까? 엄마의 분위기가 원래대로 순식간에 변했다.
“왜?”
다시 원래처럼 돌아온 엄마는 눈썹을 위로 가볍게 치켜뜨며 나름 귀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니... 엄.... 엄마가 그동안 동생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 건 처음이라”
“네가 많이 슬퍼할 까봐 그동안 말을 안 했던 거지.”
“그... 그래? 동생들 많이 보고 싶지. 정말 많이 보고 싶어.”
“그래 우리 아들.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지. 힘들었지?”
엄마의 다정스러운 말에 마음속에서 무언가 훅하고 치고 올라오는 감정이 느껴졌다.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과 함께 눈가가 뜨거워졌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아랫입술을 이빨로 꽉 깨물었다. 그러나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다가오는 엄마를 보자 더 이상 참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그랬다.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난 후 혼자서 동생 두 명을 챙기며 사는 것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았다. 비록 두 분이 남겨주신 유산이 있었지만 부채도 적지 않아서 상계하고 나니 달랑 현재 살고 있는 집 한 채만 남게 되었다.
가장 급한 것은 생활비와 나의 대학 등록금이었다. 동생들이 아직 중학생이라 그나마 학비는 들지 않아 조금 부담이 덜 되었으나 나도 아직 학생이었던 탓에 아르바이트 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고 3이었던 나는 가고 싶었던 대학을 포기하고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대입 수능 점수가 높아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대학 생활은 학업을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거의 돈을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 생활이 주를 이루었다. 음식점 서빙에 편의점 계산원 거기에 밤에는 대리 기사까지 뛰어야만 동생들 학원이라도 보낼 수 있었기에 정말 쉴 틈 없이 뛰어다녔다. 주말이면 공부고 뭐고 쓰러져 자기 바빴고 그 흔한 대학의 낭만을 누려볼 기회를 가져보지 못하였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동생들의 웃는 모습을 보며 견뎌 왔는데 교통사고로 인해 동생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엄마의 위로의 말을 듣자 간신히 버텨오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왜... 왜.. 이제야 온 거야? 조금만, 조금만 일찍 왔으면 동생들도 아무도 죽지 않았을 것인데. 우리 가족 모두 옹기종기 모여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왜 이제야 온 거야? 엄마! 엄마! 나 정말 힘들었어. 무서웠단 말이야.”
나는 오랜 시간 엄마를 끌어안고 오열하였다. 엄마는 그저 가만히 나를 안은 채 서 있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겨우 감정이 진정되었다. 속이 시원해졌다. 어깨를 내려 누르던 부담감도 사라졌고 동생들을 보내고 산산이 부서졌던 가슴이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