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사람들 4
부모님께서 돌아오시고 꿈같은 일주일이 지나갔다.
동생들의 사고로 무너졌던 마음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버지는 다시 일을 나가셨다. 자동화 기계 공장 공무팀에서 20년 넘게 기술자로 근무하셨던 덕에 조그마한 중소기업에 재취업이 가능하셨던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저녁에 나가던 편의점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아르바이트는 그만 다녀도 되었다. 부모님께서는 그것마저 그만두고 공부에 열중하라 하셨지만 그래도 내 용돈은 내가 벌어서 쓰고 싶었기에 저녁에 다니는 편의점은 계속 다니겠다고 고집부렸다.
여유롭게 편의점에 도착하였다. 오후에 하던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기에 시간적 여유가 많았기 때문에 늘 조금 일찍 편의점에 갔다. 물론 그 시간에 가면 전 타임 담당자가 남겨 놓은 폐기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그 시간에 신규 상품들이 새로 들어오기에 녀석도 도울 겸해서 항상 조금 일찍 간 것이었다.
전 타임 담당자 녀석은 나보다 2살이 어린 휴학생 녀석이었다. 녀석도 집이 가난하여 격년으로 휴학하여 등록금을 벌고 있었다. 왠지 짠하고 마음이 가는 녀석이라 그냥 특별한 이유 없이 도와주고 싶었다. 입고된 상품들을 녀석과 정리해 놓고 나는 창고로 가서 녀석이 남겨놓은 제육볶음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따뜻하게 조리하여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더 맛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매장에서 ‘콰광’하며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야! 뭐냐? 뭔 일 있냐?”
나는 놀라서 매장으로 뛰어 나갔다. 매장에서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배를 움켜쥐고 쭈그리고 앉아있는 녀석의 모습이었다.
“왜? 무슨 일이야? 어디 아프냐?”
“혀.. 어.. 엉”
녀석은 숨을 몰아 쉬며 서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며 힘겹게 날 불렀다. 녀석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당황하여 녀석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키려 하였다.
“야! 왜 그래? 일어나 봐. 어디 아파? 배 아파?”
그때 녀석이 꽉 쥐고 있던 손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와 매장의 하얀 타일 위에 ‘툭툭’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피를 본 순간 나는 패닉에 빠져버렸다. 덜덜 떨리는 양손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른 체 그저 안절부절못하고만 있었다. 그때 녀석이 힘겹게 ‘119’를 외쳤다. 그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허겁지겁 꺼내 들었다. 간신히 다이얼을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을 때 선반 건너편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자 웬 낯선 사람이 선반을 마구 뒤지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그곳은 문구류가 있는 곳이었다. 순간 나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커터 칼이었다. 편의점에 상품 중에 무기로 쓸만한 것은 그것 밖에는 없다. 아니나 다를까? 범인은 커터 칼을 거칠게 매대에서 뜯어낼 듯이 잡아 채 힘으로 포장을 뜯고 있었다. 나는 아직 끊기지 않은 핸드폰에 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아직 아직 범인이 여기 있어요. 도와주세요. 내 동생 죽어요.”
“네? 바로 경찰에도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버텨 주세요.”
통화의 내용을 들어서 인지 아니면 내 목소리가 거슬렸던 것 때문인지 범인은 포장이 잘 뜯기지 않는 커터 칼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냉장고에서 맥주병을 꺼내 손에 쥐고 내 쪽으로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범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나는 주변을 급하게 살펴보았다. 무기로 쓸만한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만 좌우로 돌리며 허둥거리고 있을 때 한 가지 상품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의 참치 캔이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손부터 앞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품에 한가득 캔을 집어 들었다. 앞을 볼 틈도 없이 하나씩 범인이 달려오고 있는 방향으로 집어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각종 상품에 맞는 소리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 그래도 참치 캔을 던지는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범인은 주춤하며 그 자리에 멈췄고 팔을 들어 얼굴과 머리를 보호하며 웅크렸다. 범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나는 고개를 들어 범인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범인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계속해서 참치 캔을 던졌다. 멀지 않은 거리여서 캔은 정확하게 범인의 팔과 몸에 적중하였다. 그 덕에 범인은 몸을 웅크린 채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였다. 캔이 이제 두 개 밖에 남지 않았다.
옆의 매대를 슬쩍 보았으나 그곳에도 캔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결심을 해야만 했다. 남은 캔을 하나 던지고 범인을 향해 달려갔다. 범인의 2m 앞에서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며 몸을 날렸다. 발 끝에 묵직한 느낌이 났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범인은 뒤로 허우적대며 뒤로 넘어졌다. 번개같이 일어나 쓰러져있는 전 타임 담당자에게 달려가서 녀석을 일으켜 세웠다. 녀석의 몸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지만 그것을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 황급히 녀석을 끌고 편의점 정문 밖으로 나갔다. 나는 정신없이 편의점 문 옆에 놓여있던 빗자루를 문 손잡이에 가로로 걸어버렸다.
편의점 정문 바닥에 쓰러진 녀석이 걱정되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편의점 정문이 크게 휘청거렸다. 정신 차린 범인이 발로 문을 차고 있었다. 유리지만 제법 두꺼운 강화유리라서 범인의 발차기 정도는 버텨줄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유리문에 바짝 붙어 힘으로 막아섰다. 서너 차례 발로 유리문을 차던 범인은 문이 열리지 않을 것 같자 소주와 맥주병을 가져와 문에 던졌다. ‘퍽퍽’하는 소리와 함께 등에 전해지는 병이 부딪쳐오는 힘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그럼에도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경찰이 오기 전까지 무조건 버텨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손에 든 병을 다 던져버린 범인이 다시 냉장고로 갔을 때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살면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119 구급대도 동시에 도착하였다. 나는 급한 목소리로 범인이 아직 편의점 안에 있다고 말했다. 경찰 한 명이 편의점 안을 조심스럽게 주시하며 문에 끼어져 있는 빗자루를 꺼냈다. 문이 열리고 두 명의 경찰이 스턴건을 꺼내 앞을 겨누며 앞의 경찰을 따라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범인이 병을 양손에 들고 문 쪽으로 걸어오다 경찰을 보더니 주춤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경찰은 스턴건을 앞으로 내밀고 왼손을 펴서 범인에게 흔들며 진정시키려고 했다.
“자! 진정하시고 병을 내려놓으세요. 우리는 경찰입니다. 병을 내려놓지 않으시면 이걸 쏠 수밖에 없습니다. 자! 천천히 병을 내려놓으세요.”
“우리... “
“네? 뭐라고요?”
“우리... 아들.... 두 명.... 데리고... 와야... 하는”
“병 내려놓으시고 두 팔 위로 드세요. 안 그러면 쏩니다.”
“우리... 아... 들..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