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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굽은 큰언니의 위엄있는 삶

중년여성성장기-4부4장

by 지식농부

엄마같은 큰언니, 이십 년의 나이차


생의 거리는 때로 시간의 단층으로 나타나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다. 나에게 큰언니는 언니라기보다 어머니의 실루엣에 가까운 존재였다. 큰언니와 나 사이에는 이십 년이라는 아득한 세월의 골짜기가 가로놓여 있다. 그 깊은 골짜기 때문에 우리는 단 한 번도 친정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같이 살아본 적이 없다. 내가 이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리기 훨씬 전 언니는 이미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있었고 한 아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내가 흙장난을 하며 자라날 때 언니는 이미 삶의 한복판에서 거친 풍랑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비친 언니의 모습은 늘 멀리 있는 풍경 같았다. 명절이나 집안의 큰일이 있을 때만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귀한 손님 같기도 했다. 언니는 결혼 후 평생을 한 마을에서 떠나지 않고 살아왔다. 그 마을의 흙을 밟고 그 마을의 바람을 맞으며 언니의 청춘과 중년이 고스란히 그 땅에 스며들었다. 이십 년의 차이는 단순히 숫자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세대가 겪어야 했던 가난과 희생 그리고 인내의 무게가 고스란히 한 사람의 어깨 위에 지워졌음을 의미했다.


나는 언니가 겪었을 그 세월의 갈증을 다 알지 못한다. 내가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며 세상을 배워갈 때 언니는 호미를 쥐고 밭을 일구며 가족의 생계를 일구었다. 친정이라는 뿌리에서 같이 자라났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계절을 살았던 셈이다. 이십 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우리 사이를 가깝고도 먼 평행선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내가 중년의 고개를 넘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그 평행선이 만나는 지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자의 일생이라는 공통의 이름이었다.


낡은 수레 같은 몸에 박힌 철심


언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활처럼 휘어진 등이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등이 굽었다는 말은 수식어가 아니라 언니의 육체가 증명하는 가슴 아픈 기록이다. 언니의 등은 평생 땅을 향해 있었다.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수확을 하는 그 모든 과정에서 언니의 시선은 늘 낮은 곳을 향했다. 그 낮은 시선들이 겹겹이 쌓여 언니의 척추를 서서히 구부러뜨렸다.


십 년 전 자식들의 간곡한 권유로 언니는 도시의 척추 전문 병원을 찾았다. 뒤늦게나마 굽은 허리를 펴보겠다고 결심한 언니의 수술은 다행히 잘 되었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언니의 척추에는 단단한 철심이 박혔다. 이제는 남들처럼 꼿꼿하게 서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수술보다 무서운 것은 평생을 지탱해온 습관의 힘이었다. 시골로 돌아간 언니는 다시 밭으로 나갔고 다시 허리를 숙였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언니의 몸은 철심보다 먼저 일의 부름에 응답했다.


대열반경에서 노쇠한 부처님은 자신의 몸을 낡은 수레에 비유했다.

"아난다여 나는 노쇠했다 나이가 이미 팔순 아니냐 낡은 수레는 가죽끈으로 얽어맴으로써 겨우 움직일 수 있거니와 내 몸도 또한 가죽끈으로 얽어매인 수레 같으니라."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나는 언니의 척추에 박힌 철심을 떠올린다. 부처님의 수레에 얽어매인 가죽끈처럼 언니의 철심은 쇠락해가는 육신을 간신히 지탱하는 마지막 고리였다. 철심 수술까지 무력화시키는 그 지독한 노동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가죽끈이다. 자식들을 키워내고 집안을 건사하며 살아온 세월이 언니의 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것이다.


이미 마음이 땅을 향해 있고 손발이 흙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기에 언니의 허리는 다시 굽어졌다. 얼굴 성형을 한 후에도 오장육부가 바뀌지 않으면 얼굴이 다시 제 모습대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언니의 인생도 그러했다. 수술로 뼈를 바로잡았을지언정 평생을 노동으로 일구어온 삶의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낡은 수레가 삐걱거리며 길을 가듯 언니의 몸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굽은 허리로 밭을 매는 언니의 뒷모습에서 나는 낡은 수레를 끌고 묵묵히 길을 가는 고독한 수행자의 모습을 본다.


조르바의 상처와 아문 자리의 미학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속 조르바는 자신의 심장이 이미 구멍이 숭숭 뚫리고 상처투성이가 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상처를 입었다가 아물었으니 상처 자국이 새삼스럽게 보이지는 않는 것이며 내 몸은 상처가 아문 자리투성이기에 제법 잘 견디어 내는지 모른다고 했다. 큰언니를 볼 때마다 나는 이 조르바의 상처 자국을 떠올린다. 언니의 굽은 등과 거친 손마디는 그 자체로 상처가 아문 자리들이다. 고된 시집살이의 상처, 가난을 이겨내느라 생긴 마음의 구멍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며 닳아버린 뼈마디가 모두 그 상처의 흔적이다.


하지만 언니는 그 상처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처들이 아물어 딱딱한 굳은살이 되었기에 언니는 풍파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상처 자국이 새삼스럽지 않다는 조르바의 말처럼 언니에게 고통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였다. 굽은 등으로 다시 밭을 향해 걸어가는 언니의 뒷모습은 그 어떤 성공한 이의 뒷모습보다 당당하고 위대했다.


나 역시 28년이라는 긴 시간을 전업주부로 살며 나의 경험을 자산으로 일구어왔다. 하지만 언니처럼 온몸으로 생의 파도를 받아낸 사람의 내공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 언니는 철심 수술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노동의 힘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언니의 삶은 화려한 수식어가 필요 없는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다. 나는 그 텍스트를 읽어내며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를 반성한다. 언니의 굽은 등은 나에게 삶이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것임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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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 쌓아 올린 장녀의 위엄


큰언니는 체구가 작고 허리는 굽었지만 그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시어머니를 오십 년 동안 모시며 살아온 공력과 친정집의 맏딸로서 보낸 세월은 언니에게 형언할 수 없는 권위와 위엄을 부여했다. 그 위엄은 화려한 옷차림이나 높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묵직한 침묵에서 나온다.


언니의 위엄은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평범한 시골 아낙의 모습으로 조용히 자기 일을 해나갈 뿐이다. 하지만 집안에 큰일이 닥칠 때 그 힘은 여지없이 발휘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그랬다. 모두가 슬픔과 혼란에 빠져 갈 우왕좌왕할 때 언니는 흔들리지 않는 중심축이었다. 형제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고 갈등이 싹틀 조짐이 보일 때 언니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성격이 순하고 조용하지만 성실한 삶을 살아왔기에 언니의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집안의 화목과 대의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그 한 마디에 형제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해졌다. 그것은 힘에 의한 억압이 아니라 언니가 살아온 삶에 대한 예우였다. 살아가는 모습이 세속적으로 보면 아무 권위도 없고 시골의 평범한 범부이지만 그 말에 힘이 있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언니의 위엄은 곧 언니의 정직한 삶 그 자체였다.


어머니의 요양원 그리고 거대한 결정


어머니의 노쇠함이 깊어지면서 요양원 입소 문제는 우리 형제들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어머니를 타인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죄책감과 현실적인 비용 문제 사이에서 형제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갈등했다. 누구 하나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을 때 결국 교통정리를 한 사람은 큰언니였다.


언니는 어머니의 요양원 비용 문제가 나왔을 때 형제들 중 한 사람에게 치우치지 않도록 의견을 조정했다. 언니의 제안은 합리적이었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품위를 지키는 방향이었다. 그 결정 과정에서 언니는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지 않았다. 맏딸로서 겪어야 했던 어머니와의 수많은 갈등과 화해의 시간을 뒤로하고 오직 현재의 최선을 선택했다.


언니의 한 마디에 소란스럽던 형제들은 잠잠해졌다. 그것은 언니의 의견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언니가 보여준 공정함과 책임감 때문이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언니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설득력이 있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한 날 언니는 남몰래 눈물을 훔쳤지만 동생들 앞에서는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그 뒷모습에서 나는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 배웠다. 언니의 삶이 곧 형제들에게는 하나의 기준점이 된 것이다.


굽은 등, 위엄있는 생의 자산


큰언니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면 그 제목은 아마 굽은 등 위에 핀 꽃이 될 것이다. 언니의 굽은 등은 고통의 흔적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준 대지의 모습과 닮아 있다. 20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내가 이제야 언니의 허리를 똑바로 응시할 수 있게 된 것은 나 역시 누군가의 어머니로 아내로 그리고 작가로 살아가며 삶의 무게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니는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칭하지 않지만 세상의 그 어떤 철학자보다 깊은 통찰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철심 수술로도 펴지지 않는 그 허리가 바로 언니가 세상을 정직하게 대면한 증거다. 세속적인 명예나 부는 없지만 형제들 사이에서 발휘되는 그 위엄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생의 자산이다. 나는 언니를 보며 지행일치의 삶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오늘도 언니는 굽은 등으로 밭에 나가 흙을 만질 것이다. 철심이 박힌 척추가 삐걱거려도 언니는 그 고통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웃을 것이다. 언니의 삶은 나에게 묻는다. 너는 네 삶의 무게를 얼마나 정직하게 짊어지고 있느냐고. 언니의 굽은 등은 더 이상 서글픈 장애가 아니라 한 여자가 자신의 생을 다해 일구어낸 가장 아름다운 곡선이다. 그 곡선이 있기에 우리 형제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곧게 서 있을 수 있었다.


오늘의 성찰 질문

Q1: 내 삶에서 굽은 등처럼 지울 수 없는 흔적이나 훈장이 된 경험은 무엇인가요?


Q2:낡은 수레를 지탱하는 가죽끈처럼 내가 고통 속에서도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Q3:내가 타인에게 혹은 가족에게 보여주는 위엄은 나의 어떤 성실함에서 비롯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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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 작가. OK지식나눔연구소 소장, 은퇴, 퇴직강사. 분노조절강사, 꽃차강사 중년 여성의 건강, 경제 자립, 정신적 자유를 찾는 여정을 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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