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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옥 Apr 12. 2017

최악의 하루에 당신은

김종관 감독 - 최악의 하루 (Worst Woman, 2016)

잠 못 이루는 어느 날이었다.

불안함에 뒤척이던 수많은 밤 중에 하루였는데 그날만은 유독 안 좋은 생각들로 가득한 밤이었다. 눈을 감아도 생각은 비워지지 않고 결국 몇 시간의 사투 끝에 '출근이고 뭐고' 잠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더랬다.

그날 '최악의 하루' 를 만났다.


중저음의 한 일본인의 목소리로 시작되는 영화. 그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의 목소리의 울림에서 전달되는 감정들은 느낄 수 있었다. 편안했다. 수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할 때면 오히려 누군가가 옆에서 조용히 떠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누군가가 지금의 이 남자라면 좋을 것 같다.



나는 훗카이도의 조용한 항구도시 루모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까지 살고 이후에는 도쿄에서 자랐다
어젯밤 고향 루모이의 꿈을 꾸었다
오래된 벽돌과 낡은 집들 틈에서 꽃들이 피어올랐다
인적 드문 황폐한 도시가 순식간에 꽃들로 메워졌다
여행지에서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이다
꿈 덕분에 이야기를 하나 생각했다
곤경에 처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의 첫 느낌은 '따스하다.'

수채화 같은 영상미로 서촌과 남산 일대를 배경으로 서울을 아름답게 담아냈다.

익숙한 아침 일상 풍경. 골목골목 담장에 비친 햇살들과 개 짖는 소리 그리고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

'최악의 하루'라는 제목치곤 평범한 그림들이다.


그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서촌의 한 골목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누가 봐도 이방인으로 보이는 듯한 한 남자가 걸어들어온다. 료헤이. 영화는 길을 찾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와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오늘 처음 본 남자, 지금 만나는 남자 

그리고 전에 만났던 남자


은희는 드라마에 출연 중인 남자친구 현오(권율)를

만나러 촬영지인 남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같은 시간, 한 때 은희와 잠깐 만났던 적이 있는 남자 운철(이희준)은 은희가 남산에서 올린 트위터 멘션을 보고 은희를 찾아 남산으로 온다.



바로 오늘 처음 본 남자, 지금 만나는 남자 그리고 전에 만났던 남자까지 하루에 세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사실 '최악의 하루'라고 하기에는 언젠가는 들통나게 될 은희의 거짓말로 인한 자업자득의 하루인 셈이다. 여기까지 보면 이 영화의 원제였던 <최악의 여자>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쯤, 엔딩을 마주해버렸다.


최악의 하루라도 괜찮아

<최악의 하루>의 '엔딩'은 나에게 수면유도제 같은 역할을 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잠이 들지 않을 때마다 혹은 불안할 때마다 챙겨 먹게 된다. 정말 스포를 하고 싶지만 감동이 떨어지기 때문에 말하지 않겠다. (엔딩만 따로 찍어서 핸드폰에 두고두고 볼 정도로... 따봉)


개인적으로 영화의 줄거리는 그저 그런 이야기였지만 하나하나 곱씹어볼 만한 대사들이 많다.

그리고 그 대사들이 엔딩에 다량 포진되어있다. 그저 그런 1시간 30분짜리 영화를 엔딩에서 모두 뒤엎을 만큼 잔잔하지만 큰 감동을 준다.

긴 긴 하루였어요
하느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안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쪽이 저한테 뭘 원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원하는 걸 드릴 수도 있지만, 그게 진짜는 아닐거에요
진짜라는게 뭘까요?
저는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최악의 하루라도 괜찮다. 우리는 그게 '하루'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된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고 했던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들로 잠을 뒤척이더라도 하룻밤 지나고나면 달라져있을 것이다.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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