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소개로 소개팅을 나갔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처음 만나는 자리가 그렇듯 의례적인 대화들을 이어갔다. 취미는 무엇인지, 음식 취향은 어떻게 되는지와 같은 그렇고 그런 질문들. 4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날을 끝으로 만남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였는데, 아무튼 만약 그 사람과 잘돼서 연인관계로 발전되었다면 이 질문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언제 처음 했어?
남자친구가 생기면 공통적으로 던지는 질문 하나가 있다. 바로, 첫 성관계 시기가 어떻게 되는지! 나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 이 친구는 언제부터 그 세계에 발을 들였는지가 말이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에 의한 질문이었고 훗날엔 습관처럼 묻다 보니 나만의 단골 질문이 되었다. 물론 질문의 수위가 있는 만큼 관계가 무르익었을 때만 해당되는 사안이지만. 그리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구남친들의 수도 덩달아 늘어나게 됐고 괄목(?)할만한 데이터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름하야 <구남친들의 첫 경험 시작 연령 시기> 두둥.
거짓으로 말한 게 아니라면 나의 구남친들의 첫 경험 즉, 섹스를 시작한 나이는 평균적으로 18세 정도였다. 18세라면 고등학교 2학년, 개인적으로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필자는 21살이다.) 하지만 그중 남들보다 한 발 앞서 나간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의 첫 경험 시기는 중학교 2학년 즉, 15살이었다. 와우!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걸. 내가 섹스의 시옷자도 모르던 조무래기 시절에 누군가는 어디서 선행학습(?)을 실천하고 있었다니...!
※ TMI : 다행히 피임을 했다고 합니다.
하긴 실제로 요즘 아이들의 성관계 시작 연령이 13.6세라고 하던데, 어쩌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기가 어찌 됐건 결국 내가 정말로 궁금한 것은 첫 경험의 기억은 어떠한가라는 것이다. 오랜만에 떠올려보는 첫 섹스의 기억. 윽, 나는 첫 경험의 기억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날밤. 이 날을 위해 나의 순결을 아끼고 아껴뒀었는데 안타깝게도 나의 현실은 사랑은 없고 욕정만 가득했던 섹스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날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당시에는 큰 슬픔으로 다가왔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야 '섹스에 꼭 사랑이 동반될 필요는 없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흠, 이거 좀 씁쓸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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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험. 말 그대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내 인생의 첫 경험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이 분명 있다. 첫사랑, 첫 키스, 첫 섹스 그리고 첫 대장내시경. 듣기만 해도 흥분되지 않는가. 사실 지금 되돌아보면 섹스에서 만큼은 첫 번째 섹스라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게 없는데, 단순히 처음이란 이유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 섹스는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이 나질 않으니 말이다(웃음). 참,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될 일이라면 아름답게 마무리됐으면 좋았을 텐데,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으니 어쩌겠나.
그렇다면 첫 경험은 왜 중요한 걸까. 물론 어느 일에서건 첫 경험이 좋지 못하면 그다음이 어려워지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린 이를 타파할 방법을 알고 있다. 무책임하지만 확실한 방법. 바로,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 첫 경험은 말 그대로 처음 했다라는 것 말고는 힘이 없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면 번호를 매기는 일이 무의미해질뿐더러 기억도 잘 나지않기 때문이다.
살면서 우리는 이미 숱한 만남과 이별,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때문에 더 이상 첫 경험이 아닌, 단 한 번의 잊지 못할 N번째 경험을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잠자리에서도 오선생(오르가슴)을 만나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긴 여정 끝에 도달한 오선생과의 조우는 분명, 첫 경험보다 강렬하고 짜릿할 것이다. 그러니 그 순간을 다시 만끽하기 위해 우린 앞으로 있을 수많은 첫 경험들을 똑바로 마주하고 부단히 부딪혀야 할 것이다. 미숙했던 과거의 첫 경험보다 셀 수 없는 수많은 경험들 끝에 현재 어떤 모습으로 서있는지가 중요할 테니 말이다.
섹스만큼은 처음이 아니라 다행이야, 이제 즐길 일만 남았으니 :-)
이제 창밖으로 봄바람이 불어온다. 무언가시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 그게 사랑이 됐든 일이됐든, 당신의 모든 첫 경험을 응원하겠다. 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