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광장이란?
시에나로 돌아오니 4시 50분. 1시간 이내에 시에나를 돌아보고 6시 버스를 타야 한다. 시에나 역사 지구는 12~15세기에 걸쳐 조성된 성곽으로 된 전형적인 중세도시이다. 주위 도시들과 여러 번 전쟁을 치르면서 구축한 튼튼한 성벽들과 성문들이 지금도 온전히 잘 보존되어 있다. 버스를 내리자마자 먼저 시에나의 상징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부터 서둘러 찾아 나선다. 성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멀리서부터 캄포 광장의 만자 탑(Torre del Mangia)과 두오모 성당이 시야에 들어온다. 성문(Porta Pontebranda)을 지나니 갑자기 길이 좁아진다. 골목길들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이고 있고 중세도시의 숨결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지도에서 보는 시에나 첸트로(Centro)는 Y자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Y자의 한가운데에 캄포 광장이 위치해 있다. 캄포 광장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길 표지를 따라 걸으니 갑자기 넓은 광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 일 캄포(Il Campo)라고도 불리는 광장.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중세 광장이고 광장 중의 광장이다. 붉은색 벽돌의 시청사 건물인 팔라조 푸부리코(Palazzo Pubblico)와 102m 높이의 만자 탑(Torre del Manjia)이 7백여 년 광장의 역사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중세 시대 번영을 누리며 피렌체(Firenze)와 세력을 다투던 시에나(Siena) 공화국의 자부심이자 인류의 귀중한 유산이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의 아래에는 카페와 식당들이 빼곡히 자리해 광장의 분위기를 한층 돋운다. 바닥 역시 붉은 벽돌인데 자세히 보니 생선뼈 형상을 하고 있다. 광장은 9개의 기다란 삼각형이 이어진 조가비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당시 공화국을 다스리던 9인 위원회(Noveschi)를 의미한단다. 광장은 널따란 교회와 같다고 했다. 남녀노소, 빈부 귀천 구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하지만 오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베페 세베르니니(Beppe Severgnini)는 그의 책 <La bella figura>에서 이탈리아 광장을 그 기능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한다. 상업적 광장, 정치적 광장, 업무적 광장, 사회적 광장, 그리고 힐링 광장. 캄포 광장은 어떤 광장일까? 고달픈 일상에서의 잠깐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 아름다움과 볼거리들이 늘상 있는 곳. 서로에게 미소를 주고받으며 행복해지는 곳. 그래서 마음의 위안과 힐링을 얻는 곳. 이곳에는 팔리오(Palio) 경주도 열리고 소싸움, 놀이, 행진 등, 이벤트가 늘 벌어지곤 했다. 카페가 있고 식당도 있다. 사람들은 모여 웃고 즐기고 행복해한다. 바로 이탈리아인들의 꿈이 실현된 대표적인 힐링 광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광장은 어떠한가? 광화문 광장과 시청 앞 광장, 여의도 광장들은 어떤 광장일까? 오로지 정치적 목적으로 모여드는 곳, 정치적 이념으로 편이 갈리고 매일매일 고성과 분노와 증오가 넘쳐나는 곳인 것만 같아 안타갑기만 하다. 우리의 광장도 언젠가 캄포 광장처럼 사람들이 모여 웃고 즐기고 행복해하는 광장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우리는 광장을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한 채 시간에 쫓겨 두오모 광장으로 발길을 급히 돌린다. 멀리서 본 대로 두오모 성당은 아름답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화려한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하얀 대리석의 성당은 그 아름다움에서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Santa Maria del Fiore 성당)에 비해 손색이 없다. 당초에 시에나(Siena)는 라이벌 도시 피렌체를 의식해서 이 성당을 세계 최대 규모로 지으려 했단다. 하지만 페스트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주는 바람에 계획이 수정되고 말았지만.
400년 역사의 시에나 공화국은 1,555년 피렌체와의 패권 전쟁에서 패해 이탈리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만다. 오늘날 화려한 피렌체의 역사는 기억해도 시에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편이니까. 그나마 시에나는 그들의 영화롭던 시대의 자취나마 고스란히 후대에 남겨주어 얼마나 다행인가? 시에나는 피렌체에 못지않게 쟁쟁한 예술가들의 배출한 중세도시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에 쫓겨 교회당 안에는 발도 들여보지 못한 채 황급히 버스 정거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남은 시간은 30분, 중간에 길을 잘못 들기도 하여 헤매다가 거의 뛰다시피 해서 정거장에 겨우 도착하니 버스 출발 딱 2분 전. 숨도 돌리기 전에 버스는 출발한다. 남부 버스는 10~20분 연발이 예사였는데 이곳에서는 1분도 지체하지 않는다. 같은 이탈리아 맞아?
숨 가쁜 하루였다. 이탈리아에 와서 오늘처럼 바쁘고 여유 없는 여행은 처음이다. 그래도 뿌듯하고 즐겁다. 꼭 가고 싶던 중세도시 두 곳을 보았으니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본거지만. 페루자에 도착해서 우리는 식당대신 호텔 앞의 동네 식품점엘 들린다. 점심도 제대로 못 먹어 허기진 배를 황급히 채우기 위해서이다. 구면인 식품점 주인아줌마는 프로슈토, 운 에토(Un etto,100그람)를 주문하는 우리를 보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이탈리아어 잘한다고 막 비행기를 태운다. 아줌마! 가게 들어오기 전에 살짝 사전 본 거 몰랐지?
질기긴 하지만 씹을수록 구수한 페루자빵과 프로슈토, 치즈, 토마토와 살라드거리, + 오르비에토 산 화이트 와인 한 병.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배고플 때 이 이상의 성찬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호텔 방에서 숨 가빴던 하루의 피로를 풀고 노인네 두 사람의 근 한달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무사히 마침을 자축한다. Boun Appeti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