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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by 김세환

2015년 11월에 방영된 '응답하라 1988'이라는 20부작 드라마를 한국 사람이라면 기억하고 있는 있을 것이다. 덕선, 정환, 선우, 동룡, 택이 다섯 친구들은 꼬마시절부터 쌍문동에서 같이 자라면서 일어나는 따뜻한 가족 이야기이다. 덕선보다 2살 많은 당시 대학 1학년인 88학번 보라는 나와 같은 나이다. 오랜만에 유튜브를 열었는데 첫 화면에 다섯 친구들의 반찬 돌리기가 등장했다. 당시 주택복권으로 대박이난 정환 엄마는 아래에 세 들어 사는 덕선이네 가서 '밥 한 공기 좀 얻어오라'라고 한다. 밥 한 공기는 그 집 방문에 대한 예의이지 사실은 만든 샐러드를 덕선 엄마에게 주고 싶었을 것이다. 정환은 못마땅하지만 샐러드를 들고 덕선네로 간다. 덕선네는 샐러드를 받고 밥 한 공기 내준다. 막 담근 깍두기가 이미 정환손에 있다. 밥 한 공기와 깍두기를 갖고 온 정환이는 불고기가 들려져 또 어디론가 나가지만, 정환집으로 카레를 들고 찾아온 선우와 마주친다. 그렇게 귤이, 카레가, 불고기가, 김이, 상추는 아이들의 손에서 손으로 정처 없이 떠다니고, 마침내 홀아비와 바둑천재 택이네 집에 된장찌개, 김치, 밥만 차려진 초라한 저녁상에 풍성히 모인다. 손에 모두 한 가지씩을 들린 친구들은 그들의 놀이 골목에서 만난다. 정환이는 "이럴 거면 다 같이 먹어."라고 말하면서 반찬 돌리기의 장면은 끝난다.

장충 국민학교 -당시에는 초등학교를 그렇게 불렀다-, 서울 신당동 한 골목에서도 똑같은 장면이 있었다. 어머니들은 장남과 막내를 시키지 않았다. 서러운 둘째는 언제나 집안의 심부름꾼이었다. 방음 안된 집에서 싸우는 소리는 다음날 아침이면 아버지와 아이들을 보내놓고 어머니들만 말없이 모이는 이유이기도 했다. 화장실도 재래식이었다. 대문옆이 화장실이었는 데, 좀약 냄새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냉장고가 귀한 시절 -뭐 있어도 전기가 자주 나가서 제구실을 못했지만-에 커다란 아이스박스가 집집마다 있었다. 그래서인지 톱으로 썰어주는 얼음집은 동네마다 하나씩 꼭 있었다. 하교 후 가방을 벗어던지고 나온 시끌벅적한 골목은 언제나 아이들의 차지였다. 닭싸움, 잣치기, 망까기,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타기 등 끊임없는 놀이들이 아비 때의 것을 이어나갔다. 어머니의 '밥 먹어'는 안타까운 헤어짐의 신호였다. 이때부터 둘째들은 반찬을 이집저집 날라야 했다. 이때부터 반찬 탐색전이 펼쳐졌고, 어묵을 나르는 집에는 이미 몇 명의 친구가 앉아 있었다. 같이 앉으려면 선점한 친구들의 눈짓이 있어야 했다. 이것을 무시하고 아줌마의 '같이 먹고 가'를 듣고 앉았다면, 다음 날 나는 혼자 놀아야 했다. 그래도 2일을 넘기지는 않았다. 언제나 다시 받아주는 친구들이었고 우린 넉넉했다. 하얀 목련이 떨어질 때면 제비들이 날아들었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기지개를 켰다. 뜨거운 여름 장충단 공원까지 걸어간 우리는 쏟아지는 분수대에 몸을 맡겼다. 길가의 떨어진 은행을 피해 다니다가 늦가을 연탄을 가득 실은 트럭이 골목에 들어오면 김장을 해야 하는 시기였다. 이렇게 1년이란 시간은 어렸던 우리에게는 느리게 흘렀지만, 어머니들은 '벌써'라고 한숨을 쉬셨다. 누군가 틀어놓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시그널 음악이 흐르면 벽사이로 같이 -우리 집엔 라디오가 없었다- 들을 수 있었다. 어쩌면 친구들과 막힌 벽들의 진동과 호흡을 느끼며 내일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는 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혼자 외로워서 죽었다'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다.

나는 오늘날의 닭장에 산다. 초등학교 시절, 골목크기의 한 동에 100세대가 산다. 바로 앞에 102동이 붙여지며 또 다른 100세대가 이렇게 우리는 1,000세대를 이룬다. 그 사이사이 3개의 어린이 놀이터가 있지만, 아이는 없고 집에서 피신 나온 아비들의 담배 피우는 공간으로 변한 지 오래다. 어린이 놀이터에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면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간다. 아이들을 위해 지어진 공간에서 어른들의 이기심의 아이러니를 아이들은 보고 자란다. 아이들은 집에서도 뛰어놀 수가 없다. 아래층, 옆층, 위층 어디에서 올지 모르는 경비실 전화에 어미들은 아이들의 숨을 죽이고 있다. 우리가 놀았던 아비들의 놀이는 이제 안녕을 말해야 한다. 핸드폰과 태블릿 게임으로 대체되고 아이들은 사이버 세계에서 사이버 아이들과 그들의 놀이를 전수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한 단지 1,000세대, 3명씩만 잡아도 3,000명이나 된다. 그런데 내가 옆집과 이야기 한 번 못하고 벌써 3개월을 지내고 있다. 복도에서 서로 마주치면 외면하고, 말 시키기를 부담스러워한다. 엘리베이터에서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내려가 버린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도 부모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한다. 사람은 많아지고 있지만 군중 속에서 홀로 고독을 외친다. 어쩜 이 고독은 누군가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년 가을, 배우고 있는 '오보에, 작은 음악회'라도 시도해 봐야겠다. 오보에 소리를 나누고, 홀로 고독을 외치고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과 잠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이 따뜻해질 것 같다. 어쩌면 나를 결코 따돌리지 않았던 친구들과 같이 막힌 벽들의 진동과 호흡을 느끼며 '응답하라 2025'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다. 내일부터는 만나는 모든 사람과 따뜻하게 인사부터 해야겠다.

사람들이 듣건 말건.... 인사를 받건 말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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