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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강머리앤 Nov 29. 2024

아버지가 건네주신 빛

세상에서 가장 멋진 빛깔

  

 추억의 깊이와 색깔에 따라 우리가 만난 사람은 각인이 된다. 어떤 이는 파랑으로 남아있고 초록으로 남은 이도 있다. 어떤 사람과의 추억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어 남기도 한다. 그것이 기쁨의 빛깔을 띄기도 하고 아련한 통증의 빛깔을 띄기도 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도 고운 빛깔을 남겨주고 싶어서 무던히 애를 썼지만 상황에 따라 마음을 다잡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 다니던 학원을 고등학생이 되어 음악을  선택하기 전까지 다녔다. 숙제를 해오지 않는다거나 시험 성적이 떨어졌다고 여러 번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매번 비슷하게 답을 했다. 스스로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까지 기다리고 지켜보고 있으니 선생님도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고 매번 말했다. 선생님은 그런 어머니가 누군지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아들은 결국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단 한 가지 음악의 길을 걷고있다.


 내가 이땅을 지나는 동안 가장 강렬한 빛깔로 남아있는 이는 바로 아버지다. 그 빛깔은 너무 화사해서 눈이 부시기도 하고 그래서 오래오래 아프기도 하다.


 "아버지가 뭐든 밀어줄테니 도둑질만 빼고 다해봐" 그는 모든 상황을 초월해서 무조건 내편인 사람이었다.

자기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아도 나에게만큼은 하늘 여유를 모두 안겨주던 분이었다. 어떻게 그런 마음이 가능했는지 곱씹어 보아도 감동이 밀려올 때가 많다.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의 롤모델이 되어준 분이기도 하다.

살면서 나도 다른 이에게 줄 것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무어든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았다. 세상에 없는 그분에게 되돌려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은혜 갚는 방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분 이름에 누가 되지 않고 그 이름을 빛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시험이 내일로 다가왔는데 준비가 되지 않아서 마음이 너무 무겁고 힘들었다. 야간근무를 하고 있는 아버지 회사에 전화를 했다. 동네 안에 있는 아버지 회사에 잠시 후 도착했는데 사과봉지 꾸러미를 내게 건네셨다. "이거 먹고 차분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 한창 성적에 스트레스 받고  예민한 중학생이었다. "준비성도 없이 이 늦은 밤에 회사에 왜 찾아왔냐"고 꾸지람도 할만한데 그 따스한 사과꾸러미는 내게 평안과 위로가 되었다.


 평생을 살면서 그렇게 고운 사과 빛깔을 본 적이 없다. 어렵고 힘든 순간을 만날 때에도 퇴색되지 않는 그분의 격려와 사랑이 견디는 에너지와 힘을 주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좋은 가치관을 만드는 밑바탕은 그 무엇도 아닌 사랑의 격려였다. 사랑의 격려야말로 그 무엇에도 비유할 수 없는 가장 멋진 빛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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