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 있잖아, 정용준
잘해 주기만 하면 돌멩이도 사랑했는 소년 이야기
말을 더듬는 한 소년. 소년이 말더듬을 고치기 위해 학원에 가면서 생기는 이야기이다.
외로움이란 무엇인지, 편견이란 어떤 것인지, 동료와 믿음이 무엇인지 읽다보면 그냥 느껴지게 된다. 한 소년이 역경을 이겨나가는 따뜻함과 그 소년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요즘은 스마트폰 보느라 통 생각할 기회가 없었는데...
누구도 그 소년을사랑하지 않는데, 그 소년은 자신에게 친절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항상 상처를 받는다. 나 혼자만 고립되어 존재한다는 그 느낌. 외로움. 손을 뻗어 닿을 곳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건,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떼어 잠시 맡길 사람이 없다는 건, 자신을 더 자신 안으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자신과 세상 사이에 벽을 쌓는다. 그들의 호의를 의심하고, 그들의 행동과 말을 의심하고... 외로움이란 어쩌면 자신이 주변에 다가가지 않는 것이다. 벽을 쌓고 상처받기를 거부하고...
말을 더듬는 다는 건 자신 안의 생각과 느낌이 바깥세상과 차단된 것일지도 모른다. 바깥세상 사람들이 고쳐주겠다며 자신을 마구 다그친다. 선생들은 책 읽으라고 강요하고, 이것저것 묻고는 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답을 해 버리기도 한다. 소년은 결국 세상과 차단된 삶을 참으며 하루 하루 살아간다. 소년이 하루하루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말더듬이 아닌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외부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더듬 친구에게 갖는 큰 편견이 있다. 그것은 그가 말을 못 하니, 듣지도, 생각지도,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 편견을 참고 견뎌야 한다. 실존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가야 한다. 소년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런 소년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엄마이다.
엄마는 술과 약을 먹지 않을 때,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소년은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소년은 그 사람과 동거하고 있다. 자신과 엄마를 때리고 욕하기도 하는 사람. 유일한 안식처인 엄마마저도 술과 약, 그리고 죽이고 싶을만큼 싫어하는 동거인에 둘러쌓여 있다. 소년은 왜 사는지 항상 궁금했을 것이다.
'왜 살아요?'
'돌하고 나무한테 왜 사냐고 묻는 거와 같아.'
'...'
'그냥 사는 거야.'
소년이 너무나 사랑하는 한 사람을 만난다. 책 속에 나오는 엄마처럼 항상 웃고, 믿고, 친절한 그 분에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이모는 답한다. 그냥 산다고.
갑자기 '왜 죽지 않아요?' 이 질문이 생각났다. 이 답도 책 어딘가에 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 다 뒈지니깐!
소년이 자신의 속마음을 떼어 잠시 맡길 사람들을 드디어 만나게 된다. 그곳은 바로 스프링이다. 말더듬을 고치는 학원이다.
학원장은 소년을 안아주며, 동료들에게 안내한다. 모두가 말을 더듬는다. 그리고 소년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매달 바뀌는 이름이 주어진다. 첫번째 이름은 무연이다. 무연중학교 다녀서 무연이다. 헐... 소년과 함께 한 소녀와 다른 소년이 한 팀이 된다. 이름이 바뀌는 설정에서 나는 잠시 책 읽기를 멈춘다. 내가 세상과 만나는 수단으로 가장 중요한 이름이 바뀐다니? 책도 복잡해지는 기분이다. 소년의 이름이었던 '24번'은 소녀의 이름이 되기도 한다. 24번 어떻게 지내냐고 사람들이 하도 물어서 이름이 24번이 되었다는 소녀는 그냥 자신의 이름을 받아들인다. 헐... 이름은 중요하지 않은 곳. 한 달에 한 번 바뀌는 이름을 정확하게 그 사람과 일치시킬 수 있는 곳. 그들의 관계는 이미 다른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된다. 그곳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있는 바로 그 공간. 스프링. 한 번 들어가면 안 떠날 것 같다.
소년은 단절되었던 세상을 향해 조금씩 문을 연다. 물론 스프링 사람들하고. 스프링 동료들은 소년을 지독히 괴롭히는 국어샘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국어샘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우고, 다리를 걸어 넘어트리고, 손과 발을 케이블타이로 묶어 혼내기로 각본을 짜는 모습이 귀여웠다. 소년의 동료들이 어떻게든 복수해 주겠다는 다짐은 소년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 결국 다른 방법이긴 하지만 국어샘에게 복수를 한다.
이 소설의 위기는 소년이 사람 많은 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말하기 보다는 기절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 그 압박의 순간을 소년은 이겨내는 듯 하다 도망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자신의 벽을 허무는 순간, 그 마음이 무너져 다시 더 큰 벽을 세우고 만다.
'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까?'
나는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책 어딘가에서 또 작가의 답을 찾는다. 참 세심하고 꼼꼼하게 여기저기 퍼즐처럼 답을 달아놓았다. 새 해 첫날 스프링에서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 아저씨를 만난 소년은 이렇게 묻는다.
'왜 말더듬을 고치려고 하세요?'
아저씨는 지갑속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 소년에게 보여준다.
'내 딸이 말을 더듬는데, 내가 고쳐야 내 딸도 고칠 수 있을 것 같아서...'
난 울 뻔 했다. 그 아빠의 마음이 나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나도 아빠라서 그런 거 같다.
왜 고치냐면 나 아닌 너 때문이다. 내 안에 갇혀 살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고치는 것이다. 사랑해서...
사랑해서...
카타르시스가 있다. 나에게 실제로 일어나지 않지만 간접체험을 통해 통쾌함을 느끼는 바로 그것. 배설을 시원하게 했을 때의 통쾌함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장소는 경찰서이다. 스프링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소년을 변호하는 순간이 온다. 통쾌함은 역시 이모의 몫이다. 소년이 너무나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
나에게도 이모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걸로도 좋고, 내가 이모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그걸로도 좋다. 설정이 너무 좋다. 이모. 엄마의 여자형제들. 엄마처럼 나를 사랑할 것 같은 호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