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곡성이 개봉한 지 벌써 8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원래 영화를 보면서 무섭다고 느꼈던 적이 거의 없던 사람인데, 곡성은 정말이지, 극장에서 보고 돌아오는 내내 무서웠던 생각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제 영화 인생에서 가장 무서웠던 작품으로 곡성을 이야기합니다.
제게 영화 곡성이 유난히 무섭게 다가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곡성이 제가 평소 생각하던 악의 실체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곡성에 등장하는 악은 외지인이라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외지인은 주인공과 그가 아끼는 모든 존재들을 파멸로 이끌고 가지만, '왜' 파멸로 이끌고 가는지는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그리고 외지인이 누구인지도 정확히 묘사되질 않습니다. 그저 생명을 파괴하려고 하는 집요한 악의만 묘사됩니다. 주인공과 그의 주변 인물들은 그 악의에 어떻게든 맞서보려고 하지만 중과부적입니다. 그저 악의 연출에 놀아나듯 허둥지둥 대다가 하나같이 비참한 결과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유도 모르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순전한 악. 이러한 악의를 묘사한 영화를 전 아직까지 본 적 없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악이 가질법한 다양한 특성도 영화 전반을 통하여 제시합니다. 먼저 영화의 캐치프레이즈 "현혹되지 말아라." 기독교에서 악을 묘사하는 대표적인 표현 중 하나가 바로 "거짓의 영"입니다. 기독교의 악의 본질이 바로 거짓말입니다. 창세기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타락 역시 선악과에 관한 거짓말에서 시작됩니다. 영화의 캐치프레이즈답게, 주인공은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속고, 또 속으며 갈팡질팡 합니다.
이 장면에서 천우희가 입고 있는 옷 자체가 현혹의 수단이 됩니다.
그런데 영화 속 주인공만 현혹되는 게 아닙니다. 영화의 구조 자체가 관객들을 현혹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판단을 흐리게 할 만한 단서들을 영화 여기저기에 뿌려 놓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관객들도 갈팡질팡 현혹되게 만듭니다. 영화라는 장르는 어떻게 보면 감독이 퀴즈를 던지고, 관객들이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게임이기도 한데, 곡성에서 나홍진 감독은 관객들을 속이기 위하여 진실이 은폐된 정보를 반복적으로 제시합니다. 즉, 게임의 구조를 감독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제가 보기에 나홍진 감독은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 상영 중에 진행되는 인터뷰 등에서도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정보들을 언론에 제공하여 이 게임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즉, 영화 곡성은 영화에 등장하는 악의 세력뿐만 아니라, 영화의 구조 자체가 악의 상징인 현혹과 거짓을 콘셉트로 하고 있고, 이러한 콘셉트는 영화 외적인 감독 인터뷰, 포스터 등을 통해서 일관되게 구현되었다는 것을 특징으로 합니다.
영화사에서 이렇게 치밀하게 악을 묘사하려 했던 작품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사실 전 잘 모르겠고, 이러한 점에서 다른 영화와 달리 무서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다음 화에는 다른 측면에서 영화 곡성이 악을 묘사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