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발행한 글인데, 그 사이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누가 악마인지 모르겠네요.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밤입니다.
영화 곡성에 등장하는 악의 형상은 아주 독특합니다. 악마이지만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여권이 있습니다. 그는 시장에서 흥정을 합니다. 위기에 몰리면 울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기도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 아닙니다. 귀신입니다.
여권을 가진 악마. 정말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여권이란 무엇입니까. 국가가 발급한, 개인의 신원에 관한 공적 증명입니다. 악마는 경찰 공무원인 주인공에게 태연히 여권을 제시합니다. 이를 통하여 자신이 실존하고, 사회 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한술 더 떠서 악마는 시장에 가서 제사에 사용할 닭을 삽니다. 가격을 흥정하는 악마에게 시장의 상인도 혀를 내두릅니다. 닭을 구입한 악마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악마는, 시장과 대중교통으로 대변되는 현대 지역 사회의 일부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 깊은산속에서 주인공 일행에게 쫓기는 악마를 되새겨 봅니다. 악마는 나무 밑에 숨어서 두려움에 떱니다. 불안함과 공포에 눈물도 흘립니다. 다구리 앞에 장사 없다고, 한국 시골 아재들의 몽둥이질과 악다구니는 악마도 울게 만듭니다.
동네 아저씨들의 몽둥이 찜질에 달아나는 악마라니요
그리고 악마는 밤새 제사를 드립니다. 닭을 잡고, 피를 뿌리며, 춤을 추고, 경전을 외우며, 어떤 종교적 의식을 합니다. 그런데 대체 악마는 누구에게 제사를 드리는 걸까요? 누구에게 기도를 하는 걸까요? 초자연적 존재가 다른 초자연적 존재에게 기도를 하는 이 장면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이 영화에서 사람의 몸을 입은 악마의 형상을 봅니다. 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온 예수의 행적에 대한 정확한 영화적 안티테제입니다. 예수가 사람들과 어울린 것처럼, 악마도 시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예수가 눈물 흘린 것처럼, 악마도 눈물 흘리며, 예수가 기도하는 것처럼, 악마도 기도를 합니다.
즉 영화 곡성은, 만약 의도와 정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악이, 인간의 육신을 입어 세상에 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도는 영화의 다른 장면에서도 드러납니다. 영화에서 악마를 상징하는 외지인은 한국에서 거주하는 일본인입니다. 그가 집에 만들어 놓은 제단은 서양에서 흔히 악마의 상징으로 통하는 염소의 머리 모양입니다. 그런데 티베트의 샤머니즘의 방식으로 제사를 지냅니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모습은 머리에는 뿔이 나고, 온몸은 검으며, 손톱은 뾰족한, 전형적인 서구권 악마의 모습입니다. 즉, 근원을 종잡을 수 없는 악의 형상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 초자연적인 존재인 악마가 어떤 지역적 특성이나 문화권에 종속되는 외관을 한다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어떤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 곡성이, 악마로서의 외지인의 형상과 행태에, 다양한 문화권의 요소를 반영한 것은 매우 예리한 판단입니다. 전지구적으로 존재하는 악의 형상을 가장 잘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