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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AS보장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by myn


당신은 누군가의 고장을 고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기계와 인간, 둘의 경계를 허무는 상상은 SF 영화의 주된 테마로 자리잡아 왔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이러한 상상을 존재의 본질이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미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미쳐야 이해할 수 있는 사랑과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군은 자신이 싸이보그라고 생각한다. 싸이보그는 밥을 먹지 않는다. 전기를 얻기 위해 손목에 전선을 넣고 양 손가락 끝으로 배터리를 짚어 연료를 얻는다. 그러나 영군은 당연히 싸이보그가 아닌 사람이다. 남들 눈에 영군은 손목을 그어 자살시도를 한 거식증 환자다. 정신병원에서 날개를 단 채 밥 대신 건전지를 혀에 대며 에너지를 충전하려는 그녀의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슬프다. 그녀의 세계는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비논리적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일순은 자신의 존재가 점으로 소멸해 버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소멸하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특징을 훔친다. 훔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몇 날 며칠이고 살펴본 후, 훔치고 싶은 것이 생길 때 훔친다. 일명 훔치심.


이는 고장 난 마음과 불완전한 존재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영군은 스스로를 기계라 믿지만, 사실 그녀가 잃은 것은 인간으로서의 목적이다. 그녀의 목적은 어릴 적 할머니와의 기억 속에서 형성되었고, 그 목적이 무너졌을 때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렸다. 일순은 그런 영군을 향해 말한다. 네가 싸이보그라면 내가 너의 고장난 부품을 고쳐 줄게. 이는 단순한 구애의 표현이 아니다. 일순의 사랑은 상대방의 결함을 부정하지 않고그 결함을 품으면서 존재를 보장해 주는 사랑이다. 그의 사랑은 소모품처럼 버려지지 않기를 약속하며, 영군이 잃어버린 목적의 실마리를 찾아주려는 사려 깊은 수리공의 역할을 한다.


영군과 일순의 이야기는 존재의 목적이 곧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부품들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계처럼 메뉴얼도 없고, 고장 나면 스스로 고칠 수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우리의 고장난 부분을 인정하고 함께 고쳐 나가겠다고 말할 때, 우리는 비로소 존재의 목적을 다시 찾는다.


감독은 묻는다. 인간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장난 상태에서도 서로를 고쳐 주며 살아남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마치 영화 속 "평생 AS 보장"처럼, 끝나지 않을 사랑과 연대의 약속 속에서 실현된다.


나는 끝까지 영군과 일순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얘네가 이대로 번개 맞아 죽는 건 아닌지 마음 졸이며 보다가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무척이나 뜬끔없는 엔딩을 맞이하고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영군과 일순은 우리가 잊고 있던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한다. 그 사랑은 '미친' 사랑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목적화시키는 사랑이다. 그리고 그것은, 평생 AS 보장이 약속된 세상에서만 가능하다. 우리 모두가 결국 누군가에게AS를 약속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결함으로 가득하지만, 그 결함을 채워주는 연대를 통해 삶의 목적은 조금씩 선명해진다. 박찬욱 감독이 말했듯, 우리네는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인간”이기에, 우리가 타인의 존재를 이해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의 존재 이유도 완성될 것이다. 삶이란 끝없이 수리되고 수리하는 과정이라면, “평생 AS 보장”은 그 과정에서 우리가 품어야 할 가장 중요한 다짐이자 약속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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