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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의 존재

영화 <가여운 것들>

by myn Feb 02. 2025

모든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가엾다. 우리를 둘러싼 규칙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고, 그 안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기도 전에 우리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길들여진다. <가여운 것들>은 이 익숙한 세계를 전복시킨다. 가엾음은 더 이상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탐험할 용기를 품은 자들의 특권이 된다. 벨라 백스터는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난 후 세상에 던져진다. 그녀는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아이의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곧 주어진 규칙을 거부하고 자신의 욕망과 지식을 향해 나아간다. 그녀가 보여 주는 것은 단순한 성장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도덕과 관습에 의문을 던지며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혁명적 발걸음이다.  

벨라가 추구하는 자유는 단순히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가엾음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자유다. 세상이 강요하는 틀을 거부한 채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그녀는, 삶이란 스스로의 결함과 불완전함을 껴안으며 살아가는 용기라고 말한다.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일지라도 벨라는 결코 초라하지 않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과 결핍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당당히 드러내며 삶을 탐험한다. 우리가 흔히 ‘가여운 것’이라고 여기는 존재들은 그녀의 시선 아래에서 더 이상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누구보다 자유롭고 아름답다.  

<가여운 것들>의 세계는 숨을 쉬며, 화면 속 모든 요소가 벨라의 여정을 따라 춤춘다. 기괴하면서도 황홀한 미장센은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언어다. 벨라라는 인물이 추구하는 자유와 탐험, 그리고 규칙 없는 삶을 완벽히 시각화한다. 영화 속 공간들은 마치 벨라를 위해 특별히 디자인된 듯한 독창성을 자랑한다. 낡고 비현실적인 저택, 황량한 광장, 파스텔빛 하늘, 그리고 생경한 도시의 풍경들은 그녀의 내면 세계와 절묘하게 연결된다. 이러한 공간들은 단순히 이야기를 담는 배경이 아니라, 벨라의 존재 자체를 투영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이 영화의 미장센은 단순히 아름답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기존의 아름다움의 정의를 파괴하고, 새로운 형태의 미를 제시한다. 완벽하지 않은 선과 일그러진 구도, 불편하게 마주치는 색감들은 모두 기존의 틀을 거부하는 벨라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미장센은 단순히 장식이 아니라,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의 또 다른 층위다. 카메라는 종종 과장된 원근법과 찌그러진 시야를 통해 현실에서 벗어난 꿈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마치 벨라가 경험하는 세상의 낯섦과 경이를 관객도 함께 느끼도록 유도한다. 이국적인 도시들과 초현실적인 풍경들은 동화와 같은 동시에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만큼 괴기스럽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오히려 우리의 익숙한 시각적 경험을 흔들어 깨우며,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영화 속 색채는 이야기만큼이나 과감하다. 눈부시게 화려한 원색들은 벨라의 내면 세계를 비추는 거울처럼 기능한다. 그녀가 욕망과 충동을 발견할 때, 화면은 충돌하는 색의 향연으로 폭발한다. 반면 그녀가 혼란과 절망 속에 빠질 때는 음울하고 차가운 색조가 그녀를 감싼다. 이러한 색의 변주는 벨라의 심리와 감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그녀의 여정에 감정적으로 더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가여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약자에게 붙는 낙인에 불과한가, 아니면 스스로를 정의할 수 없는 불완전한 상태를 뜻하는가? 벨라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몸소 보여 주었다. 가엾다는 것은 약점이 아니다. 그것은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다.  그녀는 자신의 ‘가여운’ 정체성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무기로 삼아 세상의 규범을 비웃고,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녀가 구축한 세계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철저히 그녀만의 것이다.  

단순히 기괴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가진 가여운 면을 직시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우리 또한 벨라처럼 세상에 던져진 불완전한 존재다. 하지만 벨라의 이야기 속 가여움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영화는 단순히 관습을 비판하거나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모든 틀을 해체하며, 관객들에게 묻는다. 너는 네 삶의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가여움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향한 첫 걸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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