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시평, 사진과 음악 사이에서...
외국 문학사를 평생 탐구해 온 사람으로서, 그는 단언했다. 가난하지 않고서 시인이 되기는 어렵다고.
가난은 시의 원료이고, 병고는 그 원료에 불을 붙이는 불씨이며, 사회에 대한 분노와 사랑은 시의 불길을 일으키는 바람이다. 이 셋이 한 사람 안에서 뒤섞일 때, 비로소 시인이 된다.
시평 하나가 페이스북에서 눈에 띄었다. 이름난 독어독문학자이자 소설가인 안삼환 선생님(서울대 명예교수)의 글이었다. 김수 시인의 첫 시집 『끝내 미안하다 말하지 못했다』(시학, 2025년 8월)에 대한 독후감을 이런 취지의 문장으로 시작했다.
그는 “김수의 시집을 읽고 나면, 시인의 삶에 가난,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랑과 분노, 병고가 어떤 순서로 찾아왔는지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썼다.
그러면서도 짐작하길, “그에게 가난이 먼저 숙명처럼 있었고, 이웃과 사회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뒤따랐으며, 그 결과 예민해진 심신에 큰 병이 찾아왔으리라”라고 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오래 멈춰 섰다.
가난은 한 개인의 결핍이 아니라 세계의 모서리를 느끼게 하는 감각이고, 병고는 그 모서리에 손끝이 베이는 순간이며, 분노는 피가 흐르는 감정의 증거다. 그 셋을 통과한 자만이 비로소 언어를 가진다. 나는 그런 의미로 에둘러 풀이했다.
그는 김수 시집에서 「겨울 숲」을 가장 먼저 꼽았다.
겨울 숲의 나무를 안아본 사람은 안다
잘난 채 웃자란 곧은 나무들과
못생기고 투박한 굽은 나무들이
따로 또 같이 살아가기 위해
햇빛과 바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시인은 숲을 ‘바라보다’가 ‘들어가 보고’, 마침내 ‘겨울 숲의 나무를 안아본다’.
곧은 나무와 굽은 나무가 따로 또 같이 살아간다는 그 깨달음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체험의 언어다.
그는 자신이 ‘못생기고 투박한 굽은 나무’ 편에 서 있음을 어렴풋이 드러내면서도, ‘곧게 자라 자신만의 자리를 지키는 나무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 살아갈 권리를 인정한다.
그게 달관의 시선이다. 그러나 그 달관은 체념이 아니라 희망이다.
꽃이 지는 건
봄날의 절망 아니야
열매 맺는 가을의 희망이야
짧은 시구지만, 이보다 더 단단한 언어가 또 있을까? 병고를 견뎌본 자, 상실을 품어본 자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다.
표제작 「끝내 미안하다 말하지 못했다」를 읽기 전까진, 이 시가 광주의 영령에게 바쳐진 노래일 거라 짐작되었다고 안교수는 고백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파 앞 이삿날”, 아내에게 바치는 시였다.
당신이 좋아하는 무등산을 바라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곳이냐며, 말하는 당신의 위로
‘남들처럼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고’, ‘세상살이 중요하다며 밖으로만 눈 돌리던 무능력자’의 고백.
시인이 병고를 이겨내고 ‘고요의 집 한 채’가 되었을 때, 비로소 부인을 ‘한울님’으로 부른다.
오늘
이른 아침
아내 출근길,
뒷모습 바라보며
ᆢ
남몰래 쓴다
'아내는 한울님이다'
이 짧은 시에서 평자(評者)는 해월 최시형의 ‘천주직포’ 일화를 떠올렸다. 아내가 신앙이 되고, 사랑이 곧 우주가 되는 순간. 삶의 끝자락에서 그는 마침내 좋은 남편이 되었고, 동시에 훌륭한 시인이 되었다고 했다.
김수 시인은 1980년 5월, 광주의 시간을 통과한 세대다. 젊은 날에는 ‘광주 젊은 벗들’ 동인으로 시를 썼고, 곧 현실의 격랑 속으로 몸을 던졌다. 노동·농민·평화운동에 앞장섰으며, 병마와 싸우며 삶의 경계를 몇 번이나 넘나들었다. 시의 길에 들어선 지 40년이 지나서야 첫 시집을 냈다.
그의 시를 읽으면, 시가 고통의 결과물이 아니라 고통과의 화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통은 시를 짓는 연료가 아니라, 인간이 언어를 배우는 장소다.
알퐁스 도데가 병상에서 『사포』를 썼고, 마르셀 프루스트가 천식으로 누운 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성했듯, 김수의 시 또한 육체의 고통과 시대의 상처 속에서 빚어진 언어의 결정체다.
나는 아직 그의 시집을 온전히 읽지 못했다.
간간히 온라인 미디어를 통해 시 몇 편을 접했을 뿐이다. 시인에 대한 지식도 없어 그의 세계와 연결되진 못했다.
그러나 안삼환 교수의 시평을 읽고 처음으로 김수의 시집을 제대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 이렇게 댓글을 남겼다.
“솔직히 김수 시인의 시집은 접하지 못했고, 편 편을 눈에 넣고 잔상으로 남겼는데 안 교수님의 시평을 통해 시로 다가가는 길이 열린 듯합니다.
시도 아름답겠지만, 시평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충격과 울림에 먹먹해져 있습니다.”
잠시 후, 또 한 사람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제일기획 시절의 후배이자 지금은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살아가는 현진현.
전문 포토그래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얼마 전 포토 에세이집 《완곡한 위로》를 펴냈다. ‘작은정원’이라는 이름의 1인출판사를 차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펴낸 그 책은 아름다웠다.
사진에 담긴 서정과 하이쿠 느낌의 산문은 시집으로도 손색없었다. 카메라의 눈을 빌어 피사체에 던지는 핍진한 시선. 우리 시대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정겨운 편지 같은 그림책이었다.
요즘 그의 글과 사진 속엔 약간의 쓸쓸함이 묻어난다. 때론 염세와 허무가 어른거리기도 하지만, 그 속엔 투지가 함께 깃들어 있다. 이 글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나는 결국 한마디 댓글을 남겼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행간의 분위기가 좋습니다.
예술가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시는 더더욱 모르겠고 음악은 아득하고 멀고 높고…
머릿속에 온통 글만 있다는 얘긴 온통 진심인 것 같고…
뭔가 기록하는 거, 그게 다이기 위해 LP를 뒤집는다는 말도 어렴풋하게 잡히네요.
그냥 그렇다는 느낌입니다.”
현 작가는 “선배님 댓글이 너무 좋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그 짧은 댓글엔 묘한 온기가 느껴졌다.
댓글 한 문장이 시처럼 인정받은 순간, 나는 잠시 시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 또 한마디 덧붙였다.
“고마워요, 후배. 현 시인의 글에 얼핏 페시미즘, 아나키즘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듯해 안타깝지만, 어쩌면 쓸데없는 동병상련일지도 모르겠네요.
오늘 안삼환 교수님의 김수 시인 시평에서 ‘시인의 가난과 분노, 병고가 시의 자양분’이라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이렇게라도 위안과 응원 삼아 정진합시다요.”
우연히 시평을 읽다가, 어떤 독백에 ‘완곡한 위로’를 전하려다 댓글이 쓰였다. 굳이 말하자면, 원로 교수님의 후배 문인을 향한 애정과 응원을 닮아 있었다.
그러다 문장의 모양새를 갖추려는 욕심을 부리게 되었다.
시에 대해 잠시 생각하는 시간도 되었다.
시는 화려한 언어가 아니라, 삶의 균열 속에서 흘러나온 숨결일까? 시인은 말하지 못한 것을 끝내 쓰는 사람 아닐까?
김수의 시는 병상의 창문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고, 가난과 분노와 병고를 딛고 여전히 “낮은 곳 낮은 데서 푸른 시간을 꿈꾸는” 희망의 언어일 것이다.
그가 “끝내 미안하다 말하지 못했다”라고 고백했을 때, 그 말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말이었다.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 버텨낸 자의 연민, 그리고 다시 살아보려는 의지일지도 모른다.
안삼환 교수의 시평은 시만큼이나 아름다웠고, 현진현 작가의 글은 어떤 시보다 진솔했다.
두 사람 사이의 공간에서 나는, 시도 잘 모르고 예술가도 아닌 사람으로서 그냥 ‘글을 쓰는 사람’ 임을 되새겼다.
현 작가는 이렇게 썼다.
“그게 다다. 그게 다이기 위해서 LP를 뒤집는다.”
그 문장은 긴 여운을 남겼다.
나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글은 긴 음악처럼 쓰여 갈 것이다.
천천히, 오래...
그와 나는 그렇게 각자의 글쓰기 루틴을 이어갈 것이다.
* 이 글에 언급된 분들의 시와 평문, 그리고 글을 인용하며 제 나름의 감상을 덧붙였습니다. 또한 이런저런 자료들을 참고해서 시인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제 해석이 부족하거나 뜻과 다르게 읽혔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문학자(文學者)에서 문학가(文學家)로 변신한 안교수님, 카피라이터에서 시인, 포토그래퍼로 거듭난 현 작가와 김수 시인의 건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