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의 굴레 2.

《쇼닥터》 6화

by 이에누

성준은 반박하지 못했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가 방송에서 던진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밤을 뒤흔들고, 카드를 긁게 만들고, 다음 검색으로 이어진다는 걸.

중독의 공식은 단순했다. 강한 자극. 즉각적인 반응. 짧은 안도감. 그리고 더 큰 자극. 불안은 쾌락이 아니었다. 하지만 안도는 쾌락이었다.

‘검사 결과 정상입니다.’
그 한 문장을 듣기 위해 사람들은 반복해서 불안을 소비했다.

그날 밤, 성준은 혼자 술을 마셨다. TV를 켜자, 다른 방송사의 건강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낯익은 얼굴. 다른 교수. 낯익은 멘트.
“놓치면 위험합니다.”
성준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 교수도, 그 PD도, 그 쇼호스트도 모두 같은 문장을, 다른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의사가 타락해서 생긴 일도 아니다. 이건 플랫폼의 구조였다. 시청률이라는 도파민, 매출이라는 보상, 댓글과 조회 수라는 즉각적 강화. 마치 스마트폰 알림처럼.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확인하면 잠시 안도하고, 곧 다시 공허해지는. 그는 자신의 하루를 떠올렸다.

아침 – 매출 확인
점심 – 검색량 체크
저녁 – 경쟁 프로그램 모니터링
새벽 – 다음 아이템 선정
환자의 맥박보다 그래프의 진폭에 더 민감해진 자신.
그 역시 굴레 안의 중독자였다.

성준은 휴대폰을 켰다. 검색창에 입력했다.
“혈관 위험 증상.”
검색 결과는 끝이 없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자신의 방송에서 나온 문장이었다.
복제된 경고, 확장된 공포, 정제되지 않은 인용.

불안은 이제 자가 증식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화면을 끄며 생각했다. 나는 의사인가, 아니면 불안의 딜러인가. 그리고 더 무서운 질문. 만약 내가 멈추면, 이 시스템도 멈출까?

이미 답은 알고 있었다. 아니.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앉고, 누군가는 더 자극적인 문장을 고르고,
누군가는 더 급박한 그래프를 흔들 것이다. 그 사실이 그를 더 깊이 끌어당겼다. 죄책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내가 아니어도 된다, 그렇다면 계속해도 된다. 중독은 언제나 그렇게 합리화된다.

그는 천천히 화면을 껐다. 나는 의사인가. 아니면 불안의 딜러인가. 의사는 병을 치료한다. 딜러는 결핍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팔고 있는지 생각했다. 약이 아니라, 확신이 아니라, ‘혹시’라는 단어. 그리고 더 무서운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멈추면, 이 시스템도 멈출까? 아니. 누군가는 그 자리에 앉을 것이다. 조금 더 젊은 얼굴로, 조금 더 강한 어조로, 조금 더 자극적인 통계를 들고. 그 사실이 오히려 그를 안심시켰다. 내가 아니어도 병원은 돌아간다. 그러니 방송일은 더 계속해도 된다. 중독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합리화로, 필연처럼 보이는 논리로.

성준은 빈 잔을 내려놓았다. 이건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하나의 생태계다. 불안을 생산하고, 안도를 판매하고, 다시 불안을 재고로 쌓아두는 구조. 그 굴레 한가운데, 자신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 내려올 생각이 없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마치 중독처럼.

그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는 척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도박처럼. 스마트폰처럼. 알림이 울리면 확인하고, 확인하면 잠시 안도하고, 곧 다시 초조해지는 중독의 굴레. 불안은 고통이지만, 안도는 쾌락이었다.

성준은 중독을 오래 다뤄왔다. 알코올 중독 환자의 손을 붙잡고 금단 발작을 지켜본 적이 있다. 땀에 젖은 환자가 침대 난간을 붙들고 “한 모금만”을 중얼거리던 밤. 진정제를 올리면서도, 그가 진짜 갈망하는 건 약이 아니라 안도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약물 의존 환자의 동공이 확장되는 순간도 보았다.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도 복도 끝 흡연실을 서성이는 환자들. 그들은 다들 말했다.
“끊고 싶어요.”
그러나 몸은 다른 선택을 했다.

도박 중독자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확률을 설명했고, 게임 중독 청소년은 밤새도록 이어진 레벨 업의 쾌감을 이야기했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직장인은 알림이 울리지 않아도 화면을 켜보는 자신의 손가락을 부끄러워했다.

SNS 과몰입 환자는 타인의 삶을 훑다 스스로를 잃었고, 쇼핑 중독 환자는 택배 상자를 뜯는 순간만큼은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성준은 그들을 치료했다. 학회에서 최신 치료 프로토콜을 발표했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협진하며 ‘행동 중독의 보상 회로’에 대해 설명했다. 뇌의 보상 체계, 도파민의 분비, 내성, 금단, 재발.

그는 구조를 알고 있었다. 중독은 쾌락을 좇는 병이 아니라, 고통을 피하려는 반복이라는 것을.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구조가 자신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처음은 가벼웠다. 방송 출연 제안이 왔을 때, 그는 단지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의사의 책임. 공공의 역할.

그러나 첫 방송 후 포털 메인에 걸린 자신의 얼굴을 본 날, 그는 설명하기 어려운 전율을 느꼈다. 수술이 성공했을 때와는 다른 감각. 학회 발표를 마쳤을 때와도 다른 감각. 더 빠르고, 더 즉각적이며, 더 중독적인.

창밖의 도시 불빛이 흔들렸다. 성준은 잔을 비웠다. 불안을 생산하고, 안도를 판매하고, 다시 불안을 재고로 쌓아두는 시스템. 그 안에서 그는 더 이상 외부자가 아니었다. 이미 깊이 들어와 있었다. 빠져나갈 수 있을지 묻지 않은 채, 다음 방송 아이템을 떠올리고 있었다.
마치, 다음 자극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이에누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광고회사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고 지금은 여러 매체에 기고하면서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이 글들은 일과 놀이,체험과 생각들의 틈새 세상참견이고 생존 보고서이기도 합니다.

1,45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9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