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된 사람

《쇼닥터》 12화

by 이에누

성준의 이름이 방송에서 사라진 건 생각보다 조용한 일이었다. 어떤 공지도 없었고, 어떤 설명도 없었다. 그가 맡던 코너에는 새로운 의사가 앉아 있었다. 서른 중반쯤 되어 보였다. 단정한 외모, 부드러운 목소리.
“요즘 이런 증상, 그냥 넘기시면 안 됩니다.”

성준이 수없이 했던 말이었다. 문장도, 어조도, 고개를 끄덕이는 타이밍까지 비슷했다. 성준은 리모컨을 들고 있었지만 TV를 끄지 못했다. 자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장만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 잔혹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진료 일정이 줄어들었고,연구 과제에서 이름이 빠졌다. 행정팀 직원이 말했다.
“교수님, 요즘 이미지가 좀…”
그 말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문제 있는 사람.

그날 밤, 세린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연구소 자료, 누군가가 외부로 넘긴 흔적 있어.”
성준은 물었다.
“누가?”
세린은 잠시 침묵했다.
“너 말고는 없어.”
그 말은 사실이 아니라 은밀하게 설계된 올가미였다. 이 시스템에서는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했다. 가장 적당한 표적은 이미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 사람이었다.

동네 근처 카페에서 세린과 마주 앉았다.
“이거, 너 때문 아니지?”
세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우리가 만든 구조 때문이야.”
스스로 말했지만, 성준은 처음으로 그 말을 완벽히 이해했다.

사건의 시작은 병원 앞 약국이었다. 정문 맞은편 정다운 약국. 처방전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모였고 환자들은 아무 의심 없이 그 약국으로 들어갔다. 정다운은 단순한 약사가 아니었다. 병원 사무장과도 가까웠고 몇몇 교수들과는 오래된 관계였고 제약회사 사람들과도 자주 만났다. 처방이 미묘하게 바뀌는 날도 있었고 특정 약이 유난히 많이 나가는 날도 있었다.

그 흐름을 처음 이상하게 본 사람은 윤태진이었다. 임상시험센터 코디네이터. 데이터를 정리하던 그는 특정 신약 처방이 이상하게 한 약국으로 집중되는 패턴을 발견했다. 그 약은 세프바이오가 밀고 있는 약이었다.

태진은 내부에 문제를 알렸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료 일부를 정리해 외부에 제보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병원 연구소 서버에 접속했다. 문제는 그 기록이 다른 이름으로 남았다는 것이었다. 한성준.

그날 밤 세린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연구소 서버 로그 확인했어.”
성준은 바로 물었다.
“그래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너야?”
성준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세린은 그의 침묵을 듣고 있었다.
“성준.”
그녀가 다시 말했다.
“진짜 너 아니지?”
성준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시스템에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잖아.”
그 말은 대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부정도 아니었다. 세린은 더 묻지 않았다.

며칠 뒤 기사가 나왔다. 검찰이 아니라 기자들이 먼저 움직였다.
제목: “한성준 교수, 제약사 자료 유출 의혹”
성준은 기사를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유출? 그는 아무것도 유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이 유출된 것처럼 보이는 순간, 누군가는 범인이 필요했다. 한성준이 범인이라는이야기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다운은 태진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세프바이오는 손해배상 검토에 들어갔다. 그리고 병원은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징계는 빨랐다.
연구 정지. 대외 활동 중단. 직무 배제.
공식적인 표현은 부드러웠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그는 더 이상 병원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날 밤 성준은 병원 옥상에 다시 올라갔다. 도시는 여전히 밝았다. 방송도 계속되고 있었고 병원도 평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사라진 것은 사람들뿐이었다. 데이터에서 지워진 환자들. 기록에서 빠진 이름들. 그리고 화면에서 사라진 의사.

성준은 난간에 기대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의사도 아니고, 방송인도 아니고, 폭로자도 아닌 상태. 이 시스템에서 가장 위험한 위치.이 시스템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대신 지운다. 그리고 그렇게 또 몇 명의 사람들이 사라진다. 아무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