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의 시작

《쇼닥터》 11화

by 이에누

● 〈쇼닥터〉 1~10화 줄거리

서린대학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한성준은 한때 환자 곁에 오래 머무는 의사였다. 그러나 의료 환경은 빠르게 변했고, 병원은 더 이상 치료의 공간만이 아니라 자본과 미디어가 교차하는 시장이 되었다. 그 변화 속에서 성준은 조금씩 다른 역할을 맡기 시작한다.

그는 제약회사 세이프바이오의 자문을 맡으며 신약 홍보에 참여하고, 학회 발표와 언론 인터뷰, 그리고 홈쇼핑 방송을 통해 ‘전문가의 얼굴’을 제공한다. 그의 말은 의학적 판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케팅 전략의 일부였다.

처음에는 사소한 조정이었다. 논문의 표현을 조금 완화하고, 위험성을 확률의 문제로 설명하고, 언론 인터뷰에서 낙관적인 전망을 덧붙이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작은 조작들이 반복되면서 성준은 점점 의사라기보다 ‘의학을 설명하는 사람’, 다시 말해 ‘쇼닥터’가 되어간다. 그러면서 불안을 설계하고 중독의 굴레를 만들어가면서 암묵적인 피해자를 양산하는 공범들 중의 중심으로 끌려 들어간다.

세이프바이오가 개발한 신약은 시장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성준은 학회와 방송에서 그 약의 상징적인 얼굴이 된다. 병원에서는 그의 영향력이 커지고, 연구비와 외부 강연 요청이 이어진다. 그러나 병원 내부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신약을 복용한 일부 환자에게서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사례들은 처음에는 단순한 통계적 예외로 취급된다. 보고서는 수정되고, 기록은 보류되거나 다른 항목으로 분류된다. 의학의 언어는 언제나 애매한 표현을 허용했고, 그 애매함은 시스템을 보호하는 장치가 되었다.

하지만 몇몇 의사와 연구자들은 그 흐름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환자 기록이 설명 없이 수정되고, 특정 데이터가 연구에서 제외되며, 학회 발표에서 불편한 질문이 반복적으로 무시되는 상황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성준 역시 미묘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환자를 직접 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점점 숫자와 서사 속에서 의학을 설명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깨닫기 시작한다. 자신이 말하는 문장들이 환자를 위한 설명이 아니라 어떤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언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그렇듯이 진실과 그것을 말하는 양심은 늦게 도착한다. 균열은 아직 작지만 분명히 시작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다가올 것이다.

●주요인물 구도

1. 한성준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대사질환 클리닉센터장
세이프바이오 자문위원
학회와 언론에서 영향력 있는 전문가
점점 ‘의사 → 쇼닥터’로 이동

2. 서정훈


세이프바이오 마케팅 총괄임원
신약을 개발한 제약회사 소속.
공격적인 마케팅, 학회와 연구비를 통한 영향력 확대, 위험을 ‘관리 가능한 변수’로 취급

3. 병원 내부 인물들


병원장, 김세린(선임 연구원), 윤태진(데이터센터 소속).
데이터와 환자 사례를 직접 보는 위치, 신약 부작용을 가장 먼저 체감, 병원 행정·연구 시스템, 연구비, 학회 네트워크, 논문과 발표로 점차 균열 심화


4. 박지연과 PD


홈쇼핑 방송 쇼호스트

홈쇼핑 프로그램 담당


5. 정다운


약사. 여러 병원 의사, 제약사들과 유착 형성

6. 환자들


초반에는 이름 없는 사례로 등장.
닉네임:'평범한아빠49' 등의 구체적 피해자로 등장


《쇼닥터》 11화. 균열의 시작


방송 사고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았다. 그날 아침, 방송은 멈춘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끊겼다. 광고가 들어간 뒤, 성준은 다시 카메라 앞에 앉지 못했다.

PD가 말했다.
“교수님,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배려가 아니라 통보였다. 스튜디오를 나오는 길, 성준은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벽에 걸린 모니터에는 방금 전 방송이 편집된 하이라이트가 재생되고 있었다.
“모든 불안이 질병은 아닙니다.”
문장은 잘려 있었다. 대신 익숙한 멘트가 남아 있었다.
“놓치면 위험합니다.”
성준은 웃었다.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 시스템이 원하는 말만 남아 있었다.

그날 오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 병원장님이 잠깐 보자고 하십니다.”

병원장실. 유리창 너머로 도심이 보였다.
병원장은 말했다.
“요즘 방송에서 말이 좀 많더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병원장은 천천히 말을 골랐다.
“의사는 중립적이어야 합니다.”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교수님은 중립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경고였다.
“우리 병원은 제약사, 방송사, 보험사와 오래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병원장은 말했다.
“교수님이 한 말들이 그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준은 잠시 침묵했다.
“저는 사실만 말했습니다.”
병원장은 웃었다.
“교수님, 사실이 항상 말해도 되는 건 아닙니다.”
그 순간, 성준은 깨달았다. 이건 개인의 문제도, 방송사의 문제도 아니라는 걸. 병원까지 포함된 구조라는 걸.

그날 밤, 세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조심해.”
짧은 한 줄. 성준은 답장을 보내려다 멈췄다. 무슨 말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인터넷에 기사 하나가 떴다.
제목: “스타 의사 한성준, 과장 발언 논란… 전문가들 ‘혼란 초래’”
기사에는 그의 방송 발언이 편집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겁으로 돈을 법니다.”
그 문장은 맥락이 잘린 채 실려 있었다. 댓글이 달렸다.
“의사가 왜 정치질함?”
“방송 나와서 돈 벌더니 이제 와서 깨끗한 척?”
“쇼닥터가 쇼닥터 욕함ㅋㅋ”
성준은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환자가 된 기분을 느꼈다. 진단은 끝났고, 판결만 남은 상태.

그날 저녁, 세이프바이오에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회의실이 아니라 호텔이었다.
정훈은 와인잔을 들고 있었다.
“교수님, 요즘 많이 힘드시죠.”
성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훈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세상은 단순합니다.”
“뭐가 단순합니까?”
“누가 밥을 먹여주는지.”

정훈은 천천히 말했다.
“교수님이 지금 누가 밥을 먹여줬는지 잊고 계신 것 같아서요.”
그 말은 협박이 아니라 정확한 계산이었다. 정훈은 파일 하나를 내밀었다.
“교수님 계약서입니다.”
추가 출연 계약. 광고 모델 계약. 자문위원 위촉.
숫자는 이전보다 두 배였다.
“이거 사인하면,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죠.”
성준은 계약서를 보았다.
그 순간, 그는 알았다. 이건 보상도, 제안도 아니라는 것을. 입막음.

그날 밤, 성준은 잠을 자지 못했다. 창밖에서는 도시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만약 내가 사인하면, 나는 다시 안전해진다. 방송도, 병원도, 돈도.
대신, 나는 다시 공범이 된다.

그의 앞에는 낮에 받은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펜을 들고 한참 응시했다. 그리고... 사인하지 않았다.
짐작할 수 없었다. 자신이 어디까지 밀려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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