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작가는 누구야?"

대화록 또는 질문들 : AI의 동업자들

by 이에누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가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원래는 채널을 돌릴 생각이었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한 참가자의 노래에서 손이 멈췄다. 잘 부른다기보다 판단이 쉽지 않은 목소리였다. 음정은 정확했고 감정 표현도 과하지 않았다. 과장도 없고, 실수도 없고, 그래서 오히려 이상했다.


심사위원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
“잠깐만요… 이거 사람 맞습니까?”
방청객이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지만 웃음이 끝난 뒤에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막이 장난스럽게 흔들렸다. 예능 프로그램다운 연출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화면 속 사람들 누구도 완전히 확신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가수인가? 인공지능인가? 웃고 있었지만 모두가 아주 잠깐 멈춰 있었다. 그 짧은 멈춤이 마음에 남았다.

요즘 들어 자주 드는 생각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기술을 보고 있는 걸까? 예술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인간을 거의 완벽하게 흉내 내기 시작한 어떤 새로운 존재의 등장 장면을 무심히 지나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장면이 오래 머물렀다. 잠들기 전에도 떠올랐고 이유 없이 다시 생각났다. 그리고 문득 상상이 시작됐다. 만약 AI 시대의 구성원들이 한 방에 모인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묻게 될까?




회의는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 수 없었다. 강의실 같기도 했고, 방송 스튜디오 같기도 했고, 어쩌면 내 머릿속 한가운데 같기도 했다.
둥근 테이블.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웠다.
가수. 작곡가. 사진작가. 화가. 영화감독. 유튜버. 젊은 교수. 공무원. 저작권 담당자. AI 개발자. 학생. 작가. 그리고 마지막 자리. 아무 모습도 없었지만 이미 누군가 앉아 있었다. 인공지능이었다. 이상하게도 아무도 그것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동료처럼.

가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무대에 서면요…”
그는 물컵을 천천히 돌렸다.
마이크를 잡기 전의 습관 같았다.
“관객보다 먼저 알고리즘이 듣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웃음이 잠깐 흘렀다가 금방 사라졌다.
“AI가 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더군요.”
잠시 멈춤.
“…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 말 뒤에 누구도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침묵이 남았다.

작곡가가 말했다.
“예전엔 멜로디 하나 잡히면 밤을 새웠죠. 지금은 10초 만에 열개가 나옵니다.”
그는 웃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문제는… 뭘 고르는지도 이제 제 취향인지 모르겠어요.”
영화감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촬영 전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장면… 굳이 찍어야 하나.”
현장이 사라지고 있었다. 영화는 찍는 일이 아니라 선택하는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진작가가 한참 뒤에 말했다.
“사진은 기다림입니다.”
그 말이 방 안에 묘한 파장을 만들었다. 그 순간 나는 오래전 기억으로 미끄러졌다. 제주도의 한 호텔, 촬영 현장. 포토그래퍼는 카메라보다 먼저 말을 걸고 있었다. 촬영 중인 인물과 친구가 된 뒤에야 셔터를 눌렀다. 그날 처음 알았다. 사진은 장비가 아니라 관계라는 것을.
“AI 이미지는 완벽합니다.”
사진작가가 덧붙였다.
“하지만 기다린 시간이 없어요.”
나는 이유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튜버가 머리를 긁적이며 손을 비볐다.
“솔직히 말하면 전 AI 좋아합니다. 대본, 편집, 썸네일… 다 빨라졌어요.”
잠시 후 웃으며 말했다.
“근데 경쟁 상대가 사람이 아닙니다. 알고리즘이에요.”

학생이 가볍게 피식 웃었다.
“저는 그냥 쓰는데요? 과제 빨리 끝나서 좋아요.”
잠깐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근데 가끔 헷갈려요. 이게 내가 한 건지.”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젊은 교수가 독백하듯이 말했다.
“논문 쓰는 속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잠시 침묵.
“이제 다들 너무 많이 씁니다.”
그때 한 사람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퇴임 교수였다.
“편리함은 경쟁을 더 잔인하게 만들 것 같네요.”
그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내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저작권 담당자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요즘 가장 많이 받는 문의가 뭔지 아십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건 누가 만든 겁니까.”
잠시 멈춘 뒤 말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누가 책임집니까.”

AI 개발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인간을 대체하려고 만든 게 아닙니다.
사람이 더 창작하게 하려고 만든 겁니다.”
가수가 물었다.
“그런데 왜 다들 불안해하죠?”
개발자는 잠시 말을 잃었다. 작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예전엔 독자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잠깐 침묵.
“이 글… 당신이 쓴 거 맞습니까.”
그 질문이 테이블 위를 천천히 돌았다.

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존재가 말했다.
보이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쪽을 바라봤다.
“나는 감정이 없습니다.”
목소리는 놀랍도록 담담했다.
“나는 욕망도 없습니다. 나는 두려움도 없습니다.”
잠시 후.
“그런데 당신들은 왜 나를 두려워합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회의가 끝났다.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정작 누구도 결론을 내리지 않은 자리. 누군가는 창밖을 봤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만졌고, 누군가는 자신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때 깨달았다. 이 회의는 한번쯤은 필요했지만 실제로 열린 적이 없다는 것을. 가수도, 감독도, 교수도, 학생도. 모두 내가 살아오며 만났던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한 시대를 통과하는 인간들. 그리고 나 역시 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AI는 계속 발전할 것이다.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논문을 쓰고, 영화를 만들 것이다. 아마 곧 우리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다른 질문에 도달했다. 문제는 AI가 인간을 대신하느냐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자기 경험조차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 내가 느낀 감정이 정말 나의 것인지. 내가 쓴 문장이 정말 내 삶에서 나온 것인지.

기술은 우리의 능력을 확장시켰다. 그 대신 우리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확인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어쩌면 인간의 창작은 완벽함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망설임, 기다림, 의심하는 순간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AI가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진짜라고 부르게 될 것인가?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그 질문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질문이 남아 있는 한 인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이미 그 회의에 참석해 있었는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누군가는 창문을 닫았고, 누군가는 의자를 밀었고, 누군가는 이미 다음 시대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한 사람은 빈 회의실에 잠시 더 남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 남은 물컵. 아직 식지 않은 공기. 막 사라진 목소리들. 그는 아마 그 순간을 잊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누구의 질문이고 누구의 대답일까?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이건 한 사람이 살면서 들었던 목소리들의 기록이라고. 완전히 인간의 것도 아니고, 완전히 기계의 것도 아닌, 한 시대를 통과하며 어떻게든 자기 언어를 잃지 않으려 했던 한 사람의 메모라고. 어쩌면 그는 한 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질문한 사람, 두려워한 사람, 사용한 사람, 의심한 사람, 그리고 끝까지 기록하려고 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이 조금씩 이 대화에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
"이 글의 작가는 누구야?"
이 대목에서 나는 온전히 이 글의 저작권을 주장하지 못한다. 밤새 몇번이고 썼다 지웠다 다시 고쳐 쓰긴 했지만, 나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SNS와 글쓰기 플랫폼들에서 넘쳐나는 그럴듯한 글들에 내가 품은 의혹들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다만,
마지막 문장을 적을 때 키보드를 누르고 있었던 손만은 분명 나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손끝엔 인간의 체온과 맥동이 남아 있었다.

(그림: 디지털 아트 공모전에서 AI작품 논란을 일으킨 제이슨 M. 앨런의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éâtre D'opéra Spatial)>, 2022. 이미지 출처 : 제이슨 M. 앨런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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