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맹렬한 자본의 산화와 제국의 규범

by 연구소장

조나라 한단성의 외곽, 태행산맥이 거칠게 뻗어 내린 험준한 암벽 지대.


평소라면 산짐승의 울음소리만이 공허하게 메아리쳤을 이 삭막한 협곡은, 작금에 이르러 수천 명의 인간이 뿜어내는 열기와 형언할 수 없는 굉음으로 말미암아 거대한 화산의 분화구처럼 들끓고 있었다.


"화력을 더욱 끌어올려라! 목재를 아끼지 마라! 맹화가 저 거대한 암벽의 심장부까지 하얗게 달굴 때까지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하늘을 찌를 듯 위압적으로 솟아오른 기암괴석 아래에서, 깡마른 체구의 사내가 광기에 휩싸인 음성으로 포효하고 있었다. 불과 수일 전 뒷골목에서 도박 빚에 쫓기다 강무의 안목에 발탁된 천하 상회의 최고 개발 책임자, 천재 수리 공학자 정국이었다.


그의 진두지휘 아래 이천 명의 인부들이 군집한 개미 떼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거대한 화로에 쉴 새 없이 장작을 투척했다. 화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맹렬한 열기가 주변의 대기를 기괴하게 일그러뜨렸고, 억겁의 세월을 버텨온 화강암 암벽은 수일 밤낮을 구워진 연유로 시뻘겋게 달아올라 맥동하고 있었다.


"수문을 개방하라! 바로 지금이다! 빙장처럼 차가운 강물을 일거에 쏟아부어라!"


정국의 깃발이 허공을 가르고 날카롭게 하강하자, 산등성이에 임시로 축조해둔 거대한 댐의 수문이 일제히 개방되었다. 압도적인 수압을 머금은 강물이 천지를 진동시키는 굉음을 발산하며 폭포수처럼 쇄도하여, 맹화로 벌겋게 달궈진 암벽 위를 무자비하게 타격했다.


치이이이익!


창공을 가리는 거대한 수증기 기둥과 함께,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파열음이 협곡을 유린했다.


콰가가각! 쿠궁!


극심한 온도 차이를 견디지 못한 수백 톤의 육중한 화강암 암벽이 거미줄처럼 균열을 일으키며 산산조각 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고대의 화약이 발명되기 전, 불의 열팽창과 물의 수축 작용을 극한으로 활용해 가장 거대한 암반을 분쇄하는 경이로운 채굴 공법이었다.


토사가 무너져 내린 암벽의 잔해 속으로, 거대한 지하 동굴의 입구가 그 시커먼 심연을 드러냈다. 정국은 자욱한 수증기를 뚫고 진입하며 도면을 펼쳐 들었다.


"훌륭하다! 수로의 굴절 각도를 삼 도 더 비틀어 남은 물길을 동굴의 가장 깊은 내전으로 유도해라! 저 심층부에 강물의 수압을 동력원으로 삼아 회전할 거대한 청동 톱니바퀴의 안치소를 천공해야 한다! 방수용 역청과 석회석은 얼마나 조달되었느냐!"


정국은 진흙과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마치 무당이 작두를 타듯 공사 현장을 횡행했다. 그의 뇌리에는 이미 산맥의 복부를 관통하고 강물을 조종하여 축조해낼, 절대 누수가 발생하지 않으며 여하한 외적의 침탈도 불허하는 완벽한 지하 요새가 정교하게 구축되어 있었다.


허나 그 광활하고 위압적인 토목 공사 현장의 한구석에서, 혈색이 완전히 탈각된 안면으로 무거운 장부를 부둥켜안고 전율하는 사내가 있었다. 최고 재무 책임자 공손룡이었다.


"경악을 금치 못하겠군. 저자는 천재가 아니라 우리 상회의 근간을 파멸시킬 괴물이 틀림없어."


공손룡의 수족이 파르르 떨렸다. 붓을 거머쥔 그의 손가락 사이로 검은 묵즙이 뚝뚝 떨어져 장부의 붉은 적자 선을 더욱 선명하고 불길하게 채색하고 있었다.


그는 붕괴된 암석을 운반하기 위해 동원된 수백 마리의 우마차와, 거대한 청동 기어를 주조하기 위해 불가마 속으로 맹렬히 투입되는 막대한 구리 더미를 목도하며 극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저 모든 물리적 질량이 곧 자본이었다. 천하통보를 주조하여 민초들로부터 거둬들인, 천하 상회의 핏방울과도 같은 유동 자산이었다.


공손룡은 당장 마차를 징발하여 한단성 중심부에 위치한 천하 상회 본장으로 질주했다.


집무실의 문을 박차고 진입한 공손룡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강무의 서탁 위에 육중한 장부를 패대기쳤다.


"주군! 공사를 당장 중단시켜야 하오! 아니면 저 광인 정국의 목을 베어 내든가 하시오!"


강무는 다기를 들어 작설차의 향을 음미하며 지극히 평온한 자태로 고개를 들었다.


"축성 작업이 매우 순조롭게 진척되고 있다고 보고를 받았습니다만. 작일에는 산의 외벽을 관통하고 강물을 성공적으로 인입했다지요? 정국 선생의 공기 단축 능력은 내 예상을 아득히 상회합니다."


"산의 복부를 관통하는 데 소모된 목재와 이천 명 인부들의 식대, 그리고 청동 기어를 주조하기 위해 제나라에서 매입한 구리의 대금이 도합 얼마인지 짐작이나 하시오? 지난 열흘 동안 무려 은화 오만 냥이 허공으로 산화했소! 오만 냥 말이오!"


공손룡은 경동맥을 붉게 부풀리며 포효했다.


"우리 상회가 백설 소금과 염장육 시장을 과점하며 창출해내는 일일 순이익을 아득히 초월하는, 그야말로 자본을 통째로 용광로에 쳐넣는 망동이란 말이오! 내 회계 장부의 대변과 차변이 이토록 무참하게 붕괴된 적은 내 회계사 인생을 통틀어 전무후무하오!"


강무는 서늘한 안광으로 장부를 묵묵히 훑어보았다. 확실히 정국의 공사에 투입되는 자본의 팽창 속도는 춘추전국시대의 거시 경제적 상식을 철저히 파괴하고 있었다. 웬만한 제후국의 일 년 치 국방 예산이 단 열흘 만에 산맥 하나를 천공하는 데 연소된 것이다.


하지만 강무의 표정에는 한 치의 동요나 파문도 일지 않았다. 그는 붓을 들어 장부의 붉은 결손 선 옆에 새로운 회계 계정을 정서해 넣었다.


"공손 선생. 자본이 타들어 가는 속도, 즉 현금 연소율이 우리의 상정을 뛰어넘을 만큼 가파르다는 점은 본인 역시 통감합니다. 허나 재무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한 번 소진되고 증발하는 매몰 비용과 달리, 이것은 우리 상회의 영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필연적인 자본적 지출입니다."


"무가치한 돌무더기에 황금을 쏟아붓는 행위가 어찌 자산의 축적이란 말이오!"


"그 거대한 금고가 완공되어야만 우리는 비로소 허구의 종이표에 불과한 천하통보에 영원불멸한 신용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여불위가 수만 명의 자객을 파견해도, 곽개가 정규군을 동원하여 공성전을 벌여도 절대 함락되지 않는 물리적인 방패. 그 압도적인 인프라가 구축되는 찰나, 우리 상회의 기업 가치는 저 은화 오만 냥의 수백 배로 폭등할 것입니다."


강무는 서탁 위로 상체를 기울이며 공손룡의 동공을 꿰뚫어 보듯 응시했다.


"그 금고가 준공되기 전에 우리 상회의 유동 자금이 먼저 고갈될 것이오! 현금 흐름의 동맥이 끊어지면 상회는 그날로 흑자 도산이라는 참극을 맞이하게 된단 말이오!"


"하여 자금의 회전율을 극대화할 새로운 금융 상품과 채권 발행을 기획 중입니다. 조만간 공손 선생의 그 경이로운 두뇌가 수면을 취할 여유조차 없이 혹사당하게 될 터이니 과도한 염려는 거두어 두십시오."


강무의 흔들림 없는 태도와 태산 같은 배포에 공손룡은 쥘부채를 신경질적으로 접으며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이 사내의 시야는 금전의 굴레에 얽매인 시정잡배의 것이 아니라, 천하의 판도를 재편하려는 제왕의 통찰력을 품고 있었다.


"주군의 담력 하나만큼은 칠국을 통틀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구려. 내 항복하리다.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나라와 연나라의 귀족들을 농락하여 선수금을 유치하든, 어음의 만기를 연장하든 장부의 출혈을 지혈해 보겠소. 허나 내 인내의 임계점도 저 현금이 바닥을 드러내는 석 달이 한계요."


원망 어린 투덜거림을 남기며 집무실을 퇴장하는 공손룡의 뒷모습을 관조하며 강무는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자본이 맹렬히 연소되는 인프라 구축 현장을 점검했으니, 이제 그 막대한 자본과 인프라를 수호할 배타적 무력을 시찰할 차례였다.


강무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본장 뒤편의 부지를 대거 매입하여 조성한 거대한 연병장이었다.


연병장 상공으로는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수일 전 위나라의 정규군이라는 명예를 벗어던지고 천하 상회의 사설 용병단으로 소속을 전향한 이천 명의 병사들이 혹독한 군사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단상 위에는 상회의 최고 보안 사령관으로 부임한 위무기가 매의 눈초리로 병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굽어보고 있었다. 과거 조국을 위해 검을 쥐었던 낭만적인 왕족의 허울은 완벽히 탈각되고, 오직 피와 철로 주조된 군사 기업의 냉혹한 사령관의 얼굴만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었다.


"창끝이 둔탁하다! 너희는 이제 군주의 체면을 위해 산화하는 소모품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너희의 목숨은 왕의 소유물이 아니라, 상회의 막대한 투자가 집약된 소중한 핵심 자산이다! 단 한 치의 오차도, 단 한 번의 빈틈도 상회의 치명적인 재무적 손실로 직결됨을 명심하라!"


위무기의 사자후에 병사들은 탁한 기합을 내지르며 병기를 휘둘렀다. 병사들이 내뿜는 살기는 장평대전이라는 지옥도를 관통하며 살아남은 자들답게 지극히 매섭고 실전적이었다.


하지만 먼발치에서 그 군상을 관찰하던 강무의 예리한 시선에는, 병사들의 기계적인 움직임 속에 내포된 미세한 균열이 포착되었다. 그들의 창끝은 날카로웠으나, 동공의 깊은 곳에는 지독한 공허함과 정체성의 혼란이 착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평생을 대위나라의 깃발 아래 맹목적인 애국심과 군주에 대한 충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어 살아온 그들에게, 장사꾼의 재화를 수호하는 용병이라는 새로운 신분은 견디기 힘든 수치스럽고 모멸적인 굴레였다. 명분이라는 윤활유가 증발한 칼날은 결국 내부에서부터 부식되기 마련이다.


강무는 최고 법무 책임자 한비와 함께 연병장 단상으로 천천히 올랐다.


"훈련의 강도가 가히 살인적이군요, 위무기 장군."


위무기가 검을 거두며 강무를 영접했다. 그의 안면에는 짙은 고뇌가 서려 있었다.


"기초 체력과 실전 기량은 흠잡을 데 없는 최정예 베테랑들입니다. 다만 동기부여의 결여가 심각한 위협 요인입니다. 대행수. 이전에 이들은 조국과 가문의 명예라는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졌습니다. 허나 지금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피를 흘려야 하는지, 그 투쟁의 명분을 상실한 채 껍데기만 움직이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천한 장사꾼의 번견이라 자조하며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는 자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군대의 가장 치명적인 무기인 사기가 밑바닥을 배회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맹목적인 애국심이나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제할 수 없는 사기업 용병단의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강무는 곁에 조용히 도열한 한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선생. 우리가 기안한 해결책을 시현해 주시지요."


한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에서 수십 개의 죽간이 피끈으로 단단하게 엮인 두툼한 보따리를 풀어 단상 위에 안치했다. 그리고 이천 명의 병사들을 향해, 어눌하지만 뼈대가 굵은 음성으로 포효했다.


"제군들. 일체 병기를 거두고, 본관의 말에 주목하라."


이천 명의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동작을 정지하고 단상을 주시했다.


한비는 죽간의 첫머리를 촤라락 펼쳐 들었다.


"항시 주림에 시달리며, 여하한 보상도 없이 일방적인 희생과 충성만을 강요받던 야만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이것은 너희 개개인과 천하 상회가 완벽히 동등한 권리 주체로서 체결하는, 공식적인 고용 계약서다."


병사들의 대열 사이로 불규칙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장군과 졸병 사이에 일방적인 상명하복의 명령이 아닌 상호 합의에 기반한 계약서의 존재는, 고대 봉건 사회의 뇌 구조로는 도저히 용납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개념이었다.


한비는 대열의 술렁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죽간에 명시된 파격적인 조항들을 또박또박 낭독해 내려갔다.


"제1조. 천하 상회의 사설 경비대원은 매월 은화 두 냥의 기본급을 확정적으로 보장받는다. 이는 타 제후국의 정규군이 수령하는 군자금의 무려 세 배에 달하는 거액이다."


"세 배라고?"


"매월 은화 두 냥을 한 치의 어김없이 지급한단 말인가! 왕실의 친위대조차 반년에 한 번 만져볼까 말까 한 재물을!"


병사들 사이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거센 동요가 일었다. 고향에 방치해 둔 노모와 굶주린 처자식을 배불리 먹이고도 가산을 일굴 수 있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한비의 낭독은 멈추지 않았다.


"제2조. 훈련과 실전에서 탁월한 무공을 세우거나, 상회의 핵심 자산을 완벽하게 방어해낸 자에게는 연말 결산 시 기본급의 최대 열 배에 달하는 성과급을 현찰로 즉각 지급한다."


병사들의 동공이 찢어질 듯 팽창했다. 적장의 수급을 베어와도 귀족 출신의 장군들이 그 전공을 가로채고 훈장과 영지를 독식하던 썩어빠진 정규군 시절과 대조되는 선언이었다. 자신의 피와 땀, 그리고 극한의 무력이 철저하게 자본으로 환산되어 내 주머니로 직행한다는 명료한 사실은, 그들의 척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생존 본능과 말초신경을 강렬하게 타격했다.


"제3조. 임무 수행 중 전사하거나 회복 불능의 불구 판정을 받은 자의 유가족에게는, 은화 백 냥의 사망 보상금을 일시불로 즉각 지급하며, 그 유자녀가 성인으로 독립할 때까지 천하 상회가 생계와 학업을 완벽하게 책임진다."


이 세 번째 조항이 허공을 가르자, 거대한 연병장에는 스치는 바람 소리조차 멎은 듯한 숨 막히는 정적이 도래했다.


전쟁터에서 사지가 절단되고 창자가 쏟아져도 거적때기에 말려 구덩이에 유기되던 이름 없는 하급 병사들이었다. 기껏해야 충의라는 허울 좋은 수식어 하나 남길 뿐, 남겨진 처자식들은 극심한 부채에 시달리다 아사하거나 귀족들의 노비로 전락하는 것이 비참한 시대의 섭리였다.


그런데 일개 장사꾼들이 자신들의 비루한 죽음에 정확하고 막대한 금전적 가치를 부여해주고, 내 목숨보다 소중한 피붙이의 미래를 끝까지 담보해 주겠다는 파격적인 약속을 내걸었다.


쓰다 버려지는 가축만도 못한 취급을 감내해온 병사들이,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존엄성을 거대한 자본의 형태로 확고하게 보장받은 것이다.


병사들의 거칠던 호흡이 점차 뜨거운 열기로 변해갔다. 조국과 군주를 향한 맹목적이고 공허한 충성심이 증발한 자리에, 내 가족을 윤택하게 먹여 살리고 나의 투쟁을 정당한 가치로 보상해 주는 압도적인 자본주의의 룰이 그들의 혈관을 끓게 만들고 있었다.


"계약서의 본문은 이상과 같다. 이 조건에 동의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할 자는, 지금 대열에서 이탈하여 단상으로 나아와 죽간에 지장을 찍어라."


한비의 낭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최전열에 도열해 있던 흉터 가득한 십인장 하나가 쥐고 있던 창을 흙바닥에 내던져버리고 단상으로 미친 듯이 질주했다. 그는 경련하는 손으로 붉은 인주를 듬뿍 취하여 죽간에 자신의 지장을 뼈가 으스러지도록 깊게 날인했다.


"나 조충! 위나라의 버려진 번견의 사슬을 끊고, 오늘부로 내 가족의 생존과 밥줄을 위해 천하 상회에 이 한 목숨을 기꺼이 투신하겠습니다!"


그의 처절하고 진실된 절규를 기폭제로 하여, 거대한 댐이 붕괴하듯 이천 명의 병사들이 단상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연병장은 지장을 찍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병사들이 내지르는 함성과 맹수 같은 열기로 가득 찼다.


위무기는 그 경이로운 광경을 목도하며 짙은 탄식과 함께 복잡다단한 미소를 지었다.


"전율이 이는군요, 대행수. 위나라의 군주가 십 년 세월을 세뇌하고 형벌로 다스려도 결코 쟁취할 수 없었던 병사들의 저 광기 어린 충성심을, 당신은 단 한 장의 문서와 은화 더미로 단숨에 매수해버리다니. 명분이나 신분 질서보다 강력한 것이 자본의 적나라한 폭력성이라는 사실을 오늘 뼈저리게 통감합니다."


"자본주의의 요체는 이기심의 전면적인 긍정에 기인합니다, 장군. 저 병사들이 우리 상회를 목숨 걸고 수호하려는 것은 대행수인 저의 인품을 흠모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상회가 번영해야만 자신의 가족이 막대한 은화를 수령하고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절박한 생존 욕구 때문이지요. 개개인의 사적 이기심이 거대한 조직의 목표와 완벽하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릴 때, 그 조직은 천하에서 가장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집단으로 변모합니다."


강무는 살기로 서늘하게 번뜩이는 병사들의 안광을 주시하며 확신했다. 이제 천하 상회의 사설 용병단은 제후들의 굶주린 정규군을 압도하고도 남을, 자본주의의 논리로 완벽하게 중무장한 최초의 기업 군대로 재탄생했다.


연병장 외곽에 우뚝 솟은 거대한 느티나무 위.


최고 보안 책임자 형가는 무성한 나뭇가지에 비스듬히 몸을 뉘인 채, 호리병의 독주를 훌쩍이며 그 일련의 과정을 나른한 동공으로 관조하고 있었다.


"군집하여 창칼을 휘두르는 훈련을 백날 받아봐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내 단검 일격필살이면 모가지가 분리될 놈들인데. 그래도 화살받이 노릇을 할 든든한 고기 방패들은 충원되었군."


형가는 하품을 늘어지게 내뱉으며 나무에서 표범처럼 가볍게 도약하여, 상회의 본장 쪽으로 나른한 걸음을 옮겼다.


수일 뒤, 천하 상회의 최고 경영진 회의가 긴급히 소집되었다.


강무를 위시하여, 공손룡, 한비, 형가, 위무기, 그리고 아직 흙먼지를 털어내지 못한 정국까지 상회의 모든 수뇌부가 원탁에 배석했다.


마지막으로 집무실의 문을 열고 진입한 향희의 안색이 심상치 않았다. 항시 매혹적인 미소를 흘리던 그녀의 안면은 차갑게 경직되어 있었고, 그녀의 섬섬옥수에는 진나라의 심장부 함양에서 비둘기를 통해 날아온 붉은 인장의 밀서가 쥐여 있었다.


"선생. 여불위가 마침내 다음 패를 꺼내 들었습니다. 무력과 자본력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자, 지극히 교활하고 치명적인 전술을 채택했어요."


향희가 밀서를 원탁 중앙에 거칠게 펼쳤다.


"작일 새벽, 진나라 도읍 함양의 남문 광장에 수십 장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가벽이 축조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장벽에는 수십만 자의 문자가 빼곡히 기록된 방대한 서책의 본문이 방으로 나붙었습니다. 진나라 승상 여불위가 수년의 세월 동안 자신의 식객 삼천 명을 동원하여 편찬한 필생의 역작, 그 이름은 바로..."


"여씨춘추로군요."


강무가 나직이 읊조렸다. 필연적으로 도래할 위협이었다. 역사 속에서 장사꾼 출신의 여불위라는 인물을 가장 위대한 정치가이자 사상가의 반열로 격상시켰던 바로 그 거대한 학술 프로젝트.


향희가 마른침을 삼키며 보고를 속행했다.


"여불위는 방대한 서책을 편찬한 것에 그치지 않고, 함양성 성문 누각 위에 천 냥의 황금을 매달아 놓고 천하를 향해 이리 포고했습니다. '누구든 이 여씨춘추의 본문에서 단 한 글자라도 가감할 수 있는 논리를 제시하는 자가 있다면, 이 천금을 즉각 하사하겠다!' 이른바 일자천금의 오만한 선언입니다."


공손룡이 조소 섞인 콧방귀를 내뿜었다.


"졸부 장사치 놈이 세상을 향해 되지도 않는 허세를 부리는구려. 책 한 권 엮어냈다고 글자 하나에 천금을 건다니. 천한 상인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절단하고 자기가 천하의 위대한 성인군자라도 된 양 기만하려는 얄팍한 수작에 불과하오."


정국 역시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손톱의 때를 튕겨내며 첨언했다.


"종이 쪼가리에 활자 몇 개 적어놓은 것이 무에 대수요? 내가 직조하는 지하 요새를 구성하는 화강암 돌덩이 하나가 천하의 사상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실체적인 가치가 있소이다."


하지만 원탁의 가장자리에 침묵하고 있던 한비의 안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법가 사상의 천재이자 인간의 권력욕을 가장 예리하게 통찰하는 그는, 떨리는 수지로 밀서의 문맥을 더듬더듬 짚어 내려갔다.


"공손 선생의 분석은 빗나갔습니다. 이것은 얄팍한 명예욕의 발로에 그치지 않습니다. 여불위는 지금 책을 집필한 행위를 넘어, 천하를 지배할 절대적인 규범을, 이데올로기의 율법을 선포하려는 것입니다."


강무가 무겁게 턱을 끄덕이며 한비의 통찰에 동의를 표했다.


"한비 선생의 통찰이 꿰뚫어 보았습니다. 서책 편찬을 빙자한, 암살단의 무력과 곡물 매점매석의 자본력으로 우리를 멸살하지 못한 여불위가 꺼내 든 가장 치명적이고 거시적인 '표준'의 전쟁입니다."


강무는 서탁 위의 찻잔을 들어 올리며 좌중의 시선을 모았다.


"제현들. 길이를 측량하는 척도와 질량을 재는 저울, 계절의 순환을 관측하는 역법, 그리고 상거래를 규율하는 관습법. 작금에 이르기까지 칠국은 저마다 상이한 기준을 통용해 왔습니다. 제자백가의 철학자들 역시 각자의 학파를 세워 탁상공론만 일삼았지, 천하를 하나로 관통하는 절대적인 진리나 보편적 기준은 창출하지 못했습니다."


강무는 찻잔을 원탁 중앙에 강하게 내리꽂았다. 둔탁한 파열음이 회의실의 공기를 찢었다.


"여불위는 그 기준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려는 흉계입니다. 여씨춘추라는 틀 안에 천문, 지리, 통치 철학, 농본주의, 그리고 상업의 모든 잣대를 교묘하게 집대성해 놓고, 황금 천 냥이라는 압도적인 자본의 권위를 차용하여 그것을 완벽하여 단 한 글자도 반박할 수 없는 절대 진리로 신격화한 것입니다. 천하의 지식인들과 거상들은 이제 앞다투어 진나라 함양으로 집결하여 그 책을 필사하고 교조적으로 숭배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씨춘추가 제시한 이데올로기를 상거래와 법률의 보편적 척도로 삼게 되겠지요."


위무기가 미간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반문했다.


"그 뜬구름 잡는 사상이 우리 상회의 실물 자산과 무슨 직결된 상관이란 말이오? 우리는 튼튼한 금고와 일당백의 정예 군대를 보유하고 있소."


"영향력이 지대하지요, 장군. 만약 저 여씨춘추의 상업편 논리에 '종이표는 실질 가치가 내재되지 않은 허구이므로 화폐로 인정할 수 없으며, 이를 남발하는 자는 천하의 경제 질서를 교란하는 극악무도한 적폐다'라는 식의 문장이 단 한 줄이라도 삽입되면 어찌 되겠습니까? 진나라가 그 책을 근거로 국제 무역의 법률을 강제한다면? 천하의 지식인들이 그 텍스트를 성전처럼 받들며 우리를 이단으로 마녀사냥한다면?"


강무의 서늘하고 정곡을 찌르는 언사에 임원진들의 척수를 타고 오싹한 한기가 흘러내렸다.


"이 거대한 지식의 플랫폼 독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플랫폼의 규칙을 장악한 자는 굳이 군대라는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도 경쟁자를 합법적으로 고사시킬 수 있습니다. 여불위는 여씨춘추라는 거대한 사상의 생태계를 구축하여 진나라를 천하의 이데올로기적 중심으로 격상시키고, 자신이 창조한 프레임 안에서 우리 천하 상회의 천하통보를 불법이자 이단으로 규정해 숨통을 끊어놓으려는 수작입니다."


공손룡이 탈색된 안면으로 쥐고 있던 쥘부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창칼의 위협도 아니고 황금의 압박도 아니라, 형체 없는 사상과 문자로 우리의 목줄을 죈단 말이오? 그 무형의 폭력을 대체 무슨 수단으로 방어한단 말이오! 우리도 지금 당장 수천 명의 학자들을 징발하여 대항 논리를 담은 서책을 편찬해야 하오? 저 여씨춘추를 압도할 더 방대하고 위대한 백과사전을 집필해야 한단 말이오!"


"대항 서적을 집필할 필요는 없습니다."


강무가 쐐기를 박는 일성으로 공손룡의 제안을 일축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대한 백과사전의 무겁고 둔중한 권위는, 더 무거운 책이 아니라 가장 기민하고 파괴적인 정보의 산포로 해체해야 합니다."


강무는 등 뒤에 그림자처럼 도열해 있던 수석 엔지니어 모소를 호출했다. 공성 병기와 기계 장치를 전담하던 모소는 최근 수일 동안 강무의 은밀한 특별 지시를 하달받고 공방의 가장 깊은 내실에 칩거하며 새로운 기물을 주조하고 있었다.


"모소. 본관이 지시한 기물은 완성되었느냐?"


"예, 대행수 어른. 여기 지참하였습니다."


모소가 조심스럽게 오동나무 함을 개방하고 원탁 위에 늘어놓은 것은, 성인 남성의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찰흙 조각 수백 개였다. 그 조각들의 윗면에는 각각 독립된 한자가 돋을새김으로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고, 고온의 가마에서 구워져 화강암처럼 단단한 강도를 띠고 있었다.


그 이질적인 물체를 목도한 임원들은 의혹이 가득한 시선을 교환했다.


"이게 무어요? 도장이오? 이깟 진흙 도장 몇 개로 여불위의 거대한 사상을 타파한단 말이오?"


"유사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십시오."


강무는 모소가 지참한 네모난 목재 조판틀 안에 그 찰흙 활자들을 퍼즐을 맞추듯 기민하게 끼워 넣기 시작했다. 강, 무, 천, 하, 일, 보. 순식간에 하나의 완결된 문장이 조판틀 안에 구성되었다.


강무는 그 위에 진득한 묵즙을 빈틈없이 도포한 뒤, 천하통보를 주조할 때 사용하는 최고급 닥나무 제지를 덮고 균일한 압력으로 탁본하듯 눌러냈다.


종이를 조심스럽게 걷어내자, 선명한 묵향과 함께 흠결 없는 문장이 단숨에 복제되어 시야에 현현했다.


"활판 인쇄술의 총아입니다."


강무가 창조해낸 기적 같은 장치에 임원들의 호흡이 일순간 멎었다. 당시는 거대한 나무판 하나를 통째로 조각하는 원시적인 목판 인쇄나, 필사생들이 죽간에 일일이 붓으로 필사해야만 서책을 유통할 수 있는 비효율적인 시대였다. 그런데 독립된 낱개의 글자들을 재조합하여 무한대의 문장을 동시다발적으로 복제해내는 기술을 목격한 것이다.


"여불위의 여씨춘추는 그 방대한 분량을 편찬하고 유통하는 데 천문학적인 매몰 비용과 물리적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위압적이나 지극히 둔중한 공룡에 불과합니다."


강무는 방금 찍어낸 닥나무 종이를 허공을 향해 치켜들었다.


"우리는 이 기동성 있는 활판 인쇄술을 활용해, 매일 일출과 함께 새로운 정보의 파편들을 수만 장씩 찍어내어 천하의 혈관인 저잣거리와 상단망에 강제 주입할 것입니다. 타국 곡물 시장의 선물 시세, 위나라 왕실의 내밀한 정경유착 스캔들, 진나라 상단들의 불투명한 자금 흐름, 그리고 여씨춘추가 주창하는 사상의 치명적인 논리적 오류와 위선들까지 인쇄하여 배포할 것입니다."


강무의 시선이 향희를 향했다.


"향희 낭자. 낭자는 제나라 왕실의 복마전 속에서 성장하며 열국의 역학 관계와 귀족들의 추악한 탐욕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통찰하고 있지요. 오늘부로 낭자는 천하 상회가 발행할 최초의 언론, 천하일보의 초대 편집장입니다."


향희의 호선을 그린 붉은 입술 위로 매혹적이면서도 오싹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화려한 쥘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치명적인 미소를 지었다.


"무형의 활자로 적군의 심장부를 도륙하는 펜 끝의 율법이로군요. 여불위의 그 절대 진리를, 매일 아침 저잣거리에 흩뿌려지는 속물적인 황색언론의 찌라시로 해체해버리겠다는 발상. 제 혈관을 끓어오르게 합니다."


"정확합니다. 여불위가 둔중한 진리라는 무거운 철퇴를 치켜들었다면, 우리는 시시각각 변동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무너뜨리는 팩트 체크와 교묘하게 교직된 가짜 뉴스의 비수로 그 철퇴의 손잡이를 조각낼 것입니다. 지식의 독점은 정보의 파괴적 민주화 앞에서 철저히 와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손룡과 한비, 위무기와 정국, 그리고 형가까지. 천하 상회의 최고 경영진은 강무가 제시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비대칭 전력에 전율을 금치 못했다.


막대한 자본의 방패와 용병단이라는 무력의 칼을 거머쥔 천하 상회가, 이제는 시대를 수백 년 앞서간 미디어 플랫폼이라는 신무기를 장착하고 천하의 뇌수를 지배할 만반의 채비를 마친 것이다.


진나라 함양성의 거대한 석조 성벽을 내려다보며 여불위가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조나라 한단의 지하 공방에서는 역사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전복시킬 윤전기의 태엽이 치명적인 굉음을 내며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정보 전쟁의 서막이었다.


18화 끝


용어 설명


현금 연소율 Burn Rate


기업이 영업 활동이나 투자를 위해 보유한 유동 자금을 소진하는 속도. 정국의 거대 지하 요새 공사로 인해 천하 상회의 자본이 맹렬한 속도로 고갈되고 있음을 공손룡이 경고한 재무적 지표이다.


자본적 지출 CAPEX


기업이 미래의 이윤을 창출하거나 가치를 보존하고, 장기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물리적 자산을 획득하는 데 투입하는 막대한 비용. 정국의 금고 건설은 한 번 소진되는 매몰 비용과 달리, 상회의 영속을 위한 필수적인 투자 활동이다.


성과급 Performance Bonus


조직원의 업무 성과나 기여도에 따라 기본급 외에 추가로 차등 지급하는 금전적 보상. 한비가 기안한 이 제도는 사설 용병단 병사들이 조국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아닌, 철저한 자본의 논리에 입각해 목숨을 투신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플랫폼 독점 Platform Monopoly


특정 기업이나 세력이 시장의 기반이 되는 시스템이나 규칙을 장악하여, 타 경쟁자들이 그 체제에 종속되도록 옭아매는 전략. 여불위가 여씨춘추를 통해 천하의 사상과 상업의 잣대를 진나라 중심으로 획일화하려 한 지식 공정이다.


사실상 표준 De facto Standard


공식적인 국가 기관이나 국제기구가 인준하지 않았음에도,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과 영향력을 확보하여 자연스럽게 업계의 보편적 기준으로 통용되는 상태. 여씨춘추의 학술적 권위가 도량형과 상거래의 절대적 척도가 될 것을 강무는 경계했다.


활판 인쇄술 Movable Type Printing


낱개로 주조된 활자를 결합하여 판을 짜고 문서를 대량 복제하는 혁신적 기술. 강무는 모소가 구현해 낸 이 파괴적 혁신을 동력 삼아, 여씨춘추라는 무거운 지식 독점 체제를 천하일보라는 기민한 정보의 산포로 붕괴시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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