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라 한단성의 가장 깊은 지하, 천하 상회의 은밀한 인쇄 공방.
기름 냄새와 짙은 묵향이 진동하는 그곳에서는 수십 대의 목재 윤전기가 밤을 잊은 채 치명적인 굉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조판의 간격을 1푼만 더 좁혀라! 종이의 여백은 곧 자본의 낭비다! 닥나무 제지가 찢어지지 않도록 프레스의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해!"
초대 편집장으로 임명된 향희는 치맛자락을 질끈 묶은 채 공방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었다. 평소의 고혹적인 미소는 사라지고, 완벽한 활자의 배열을 향한 지독한 집착만이 그녀의 붉은 눈동자 속에서 번뜩였다.
그녀의 감독 아래, 수만 장의 얇은 닥나무 종이 위로 칠국의 기득권층을 파멸시킬 흑색 화약 같은 문장들이 무서운 속도로 인쇄되어 쏟아져 나왔다.
집무실에서 그 경이로운 생산 공정을 지켜보던 강무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대행수. 활판 인쇄술의 위력이 이 정도일 줄은 짐작도 못 했소. 하지만 고작 이 종이 쪼가리 몇만 장으로, 진나라 함양성에 세워진 황금 천 냥짜리 여씨춘추의 권위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확신하시오?"
최고 재무 책임자 공손룡이 인쇄된 『천하일보』 창간호를 매만지며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강무는 탁자 위에 놓인 식은 찻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여불위가 빼어 든 '여씨춘추'라는 사상의 무기가 하늘에 기대어 천하를 호령하는 의천검(倚天劍)과 같다면, 우리가 오늘 밤 찍어내는 이 '천하일보'는 그 오만한 검을 단숨에 두 동강 내버릴 도룡도(屠龍刀)가 될 것입니다."
"의천검을 부러뜨릴 도룡도라..."
"그렇습니다. 여불위의 검은 무겁고 거대하여 한 번 휘두르는 데 수십 년이 걸리지만, 우리의 칼날은 매일 아침 새롭게 벼려져 적의 가장 취약한 급소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고 공손 선생, 선생께서는 이 칼날이 시장의 심장을 찌르는 그 찰나의 순간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강무의 매서운 시선에 공손룡은 부채를 탁 접으며 입맛을 다셨다.
"내 역할은 이미 완벽하게 준비해 두었소. 정보가 시장의 공포를 조장하는 순간, 그 공포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내 특기 아니겠소."
공손룡은 품에서 두툼한 장부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나는 오늘 자정부터 새벽 닭이 울기 전까지, 한단성 내의 모든 전당포와 전장(錢莊)을 돌며 진나라 거상들이 발행한 곡물 어음과 채권을 닥치는 대로 빌릴 참이오."
공손룡의 눈빛이 탐욕과 살기로 기괴하게 빛났다.
"빌린 어음들은 동이 트기 무섭게 헐값에라도 시장에 내다 팔아 전부 현찰로 바꿔둘 것이오. 그리고 해가 중천에 떠서 대행수의 그 '천하일보'가 진나라 상단들의 신용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나면... 폭락하여 휴지 조각이 된 진나라 놈들의 어음을 바닥에서 쓸어 담아, 내가 빌렸던 전당포에 갚아버릴 작정이오."
"완벽한 공매도(Short Selling)로군요. 그 차익만으로도 정국 선생이 파 내려가고 있는 지하 요새의 건설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강무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사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은 자본의 탐욕을, 더 지독한 자본주의의 논리로 심판할 시간입니다. 가시지요, 공손 선생. 전당포 문을 두드릴 시간입니다."
그날 밤, 한단성의 고요한 어둠 속에서 거대한 부의 이동을 위한 치명적인 작전이 두 갈래로 나뉘어 전개되었다.
한쪽에서는 향희가 이끄는 수천 명의 정보원과 배달원들이 인쇄된 삼만 장의 천하일보를 달구지에 싣고 칠국으로 뻗어나가는 교역로와 한단성의 모든 객잔, 저잣거리로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공손룡이 막대한 보증금을 미끼로 전당포 주인들을 탐욕에 눈멀게 하여 진나라 상단들의 어음을 무차별적으로 차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동이 텄다.
"호외요! 호외! 천하일보 창간호가 나왔소이다! 진나라 상인들의 충격적인 비밀이 담겨 있소!"
아침 햇살이 한단성을 비추기가 무섭게, 뒷골목의 부랑아들과 짐꾼들이 거리 곳곳을 누비며 종이 뭉치를 허공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시장 바닥에서 나물을 팔던 노파도, 객잔에서 조찬을 즐기던 귀족도, 비단가게를 운영하던 상인도 하늘에서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얇은 닥나무 종이를 주워 들었다.
처음에는 낙서 취급을 받던 종이였지만, 활자를 해독할 줄 아는 식자층의 입을 통해 그 내용이 낭독되자 시장의 공기는 일순간 차갑게 얼어붙었다.
[단독 폭로! 함양의 자본으로 무장한 진나라 대형 상단, 한단의 백성들에게 유통하는 쌀에 삼 할의 모래와 묵은쌀을 섞어 부당 이득을 챙기다!]
자극적이고 직설적인 표제 아래에는, 진나라 상단들이 각 제후국에서 밀을 매입하는 원가와 한단에서 판매하는 소매가가 적나라한 도표로 인쇄되어 있었다. 정보 비대칭성의 장벽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이... 이럴 수가! 우리가 진나라 놈들에게 쌀 한 말당 무려 사 할이나 눈탱이를 맞고 있었단 말이냐!"
"여씨춘추인지 뭔지 하는 책에서는 상인의 고결한 도리를 읊어대더니, 정작 여불위의 뒷배를 믿고 설치는 진나라 상단들은 뒤에서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고 있었단 말이냐!"
분노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었고, 활자는 그 분노에 논리적인 명분을 제공하는 완벽한 불쏘시개였다.
그 아래에 실린 향희의 날카로운 팩트 체크 기사는 진나라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했다.
[여씨춘추가 제안하는 도량형의 숨겨진 진실. 진나라의 척도는 타국보다 짧고, 저울의 추는 무겁다. 천하의 기준을 통일하겠다는 핑계로 합법적인 갈취를 제도화하려는 여불위 승상의 기만술을 고발한다.]
절대 진리로 추앙받으려던 여씨춘추의 권위가, 하루아침에 대중을 기만하는 사기극의 매뉴얼로 둔갑해버렸다. 활자라는 매개체를 만난 여론은 단 반나절 만에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산불로 번져나갔다.
"진나라 상단 놈들을 몰아내라!"
"모래가 섞인 쌀을 당장 환불해 내라!"
백성들과 조나라 상인들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진나라 상인들이 운영하는 곡물 창고와 전장으로 몰려가 폭동을 일으켰다. 불매 운동을 넘어선 물리적인 위협이 가해지자, 진나라 상인들과 거래를 맺고 있던 타국의 중소 상인들은 부실 거래의 오명을 뒤집어쓸까 두려워 일제히 거래를 끊고 납품 계약을 파기해 버렸다.
신용이 생명인 시장 생태계에서 '사기꾼'이라는 꼬리표가 활자로 박제되어 천하에 까발려지자, 진나라 상단들의 신용 등급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수직 낙하했다.
바로 그 혼돈의 정점, 한단성 중앙의 어음 교환소 앞.
진나라 상인들이 발행했던 어음과 교환권을 현금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몰려들며 투매(Dumping)가 시작되었다.
"진나라 상단 어음 은화 백 냥짜리! 팔십 냥에 팔겠소! 아니, 오십 냥! 오십 냥에라도 당장 사가시오!"
시장에 공포와 불확실성(FUD)이 극에 달하자 어음의 가치는 한나절 만에 휴지 조각 수준으로 폭락해 버렸다.
그 교환소의 이층 발코니에서, 공손룡은 손톱을 물어뜯는 상인들을 내려다보며 킬킬거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궤짝 가득 쏟아지는 현찰이 쌓이고 있었다.
"보시오, 주군! 은화 백 냥짜리 어음이 고작 은화 십 냥에 거래되고 있소이다! 오늘 새벽에 저놈들의 어음을 빌려다가 백 냥에 팔아치웠는데, 이제 십 냥만 주고 다시 사들여 전당포에 갚으면 무려 구십 냥이 온전히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셈이오!"
강무 역시 차분한 눈빛으로 아비규환이 된 시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투자 대비 수익률(ROI)이 가히 천문학적이군요. 여불위가 여씨춘추를 편찬하는 데 들인 수백만 냥의 자본이, 고작 닥나무 종이 삼만 장에 인쇄된 활자 앞에서 무참히 박살 나고 있습니다."
"하하하! 대행수가 창조한 이 언론이라는 무기는 그야말로 악마의 발명품이오! 총칼로 찌르지 않고도 수만 명의 목줄을 한 번에 끊어버리다니!"
공손룡은 즉각 하수인들을 풀어 바닥까지 폭락한 진나라 상단의 어음들을 먼지 털듯 쓸어 담아 사들였다. 그리고 빌렸던 전당포에 휴지 조각이 된 어음으로 고스란히 빚을 청산했다.
진나라 거상들은 하루아침에 자금줄이 막혀 줄도산을 선언했고, 천하 상회의 창고에는 그들의 피눈물이 서린 막대한 공매도 차익이 황금빛으로 쌓여갔다.
같은 시각. 수천 리 떨어진 진나라의 도읍 함양, 승상부.
수십 명의 식객들이 사색이 된 얼굴로 대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여불위의 거친 숨소리만이 텅 빈 대전을 섬뜩하게 울렸다.
여불위의 손에는 한단에서 비둘기 전서로 급히 날아온 작고 얇은 종이 한 장, 『천하일보』의 사본이 들려 있었다.
"이... 이따위 얇은 종이 쪼가리 하나 때문에... 내가 삼천 명의 학자를 동원해 십 년을 공들여 세운 여씨춘추의 권위가 조롱거리가 되었단 말이냐!"
여불위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들고 있던 옥잔을 기둥에 집어 던졌다. 쨍그랑! 옥잔이 산산조각 났다.
수석 식객이 식은땀을 흘리며 더듬거렸다.
"승, 승상 어른. 조나라뿐만 아니라 위나라와 제나라에 파견된 우리 상단들이 연쇄 부도를 맞고 있습니다. 강무 그놈이 퍼뜨린 찌라시 때문에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어음 결제가 모조리 거부당하고 있사옵니다!"
"찌라시라니! 이것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다!"
여불위는 종이를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당대 최고의 두뇌를 가진 그조차도 이 활판 인쇄술이 지닌 정보 전파의 속도와 기동성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황금 천 냥을 걸어 한 글자도 고치지 못하게 만든 그 무거운 권위를... 놈은 매일같이 시세표와 스캔들을 찍어내어 수만 명의 백성들에게 직접 던져주는 가벼움으로 박살 낸 것이다. 백성들은 고고한 진리보다, 당장 내 밥그릇을 위협하는 모래 섞인 쌀 이야기에 분노하는 법이지..."
여불위의 눈동자에 짙은 살기와 함께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스쳤다.
자신은 지식의 거대한 성벽을 쌓아 시장의 룰을 독점하려 했다. 하지만 강무는 그 성벽 위로 수만 개의 불화살(정보)을 동시다발적으로 쏘아 올려 성벽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자본의 물리력, 사상의 독점. 자신이 동원한 모든 패러다임이 강무의 역발상 앞에서 처참하게 분쇄되고 있었다.
"강무... 너는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이 시대의 인간이 맞긴 한 것이냐."
여불위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서탁 위에 놓인 진나라의 군사 지도를 응시했다.
경제전과 정보전에서 연전연패를 당했다면, 남은 것은 가장 원초적이고 폭력적인 수단뿐이었다. 합법적인 자본과 지식의 플랫폼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 플랫폼 자체가 존재하는 대륙을 물리적인 병력으로 짓밟아버리는 것.
여불위의 시선이 진나라 최정예 백만 대군을 움직일 수 있는 호부(병부)를 향해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화폐에서 시작되어 사상의 충돌로 번진 자본의 전쟁이, 마침내 피와 철이 격돌하는 진짜 전쟁의 뇌관을 건드리기 직전이었다.
(19화 끝)
[용어 설명]
공매도 (Short Selling): 주식이나 채권(어음)의 가격이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 소유하지 않은 자산을 타인에게 빌려서 먼저 비싸게 판 뒤, 실제로 가격이 폭락하면 헐값에 되사서 빌린 자산을 갚아 막대한 차익을 남기는 투자 기법. 공손룡이 천하일보 발행 시점에 맞춰 진나라 상단을 파산시킨 결정적 한 방이다.
FUD (Fear, Uncertainty, Doubt): 대중과 시장에 공포, 불확실성, 의심을 고의로 조장하여 경쟁사의 신용을 떨어뜨리고 자산 가치를 폭락시키는 여론 조작 기법. 천하일보의 자극적인 보도가 이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다.
투매 (Dumping): 공포 심리에 휩싸인 투자자들이 자산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물량을 시장에 마구잡이로 내다 파는 현상. 진나라 상단의 어음이 투매 현상으로 인해 휴지 조각이 되었다.
투자 대비 수익률 (ROI - Return on Investment): 투입한 자본 대비 얼마만큼의 순이익을 거두었는지를 나타내는 재무 지표. 닥나무 종이와 먹물이라는 적은 비용으로 진나라 거상들을 연쇄 부도에 빠뜨린 천하일보의 ROI는 측정 불가 수준이었다.
정보 비대칭성 (Information Asymmetry): 거래 당사자 중 한쪽(진나라 거상)이 다른 쪽(백성)보다 가격 책정이나 물건의 품질에 대해 월등히 많은 정보를 독점하여 초과 이익을 취하는 상태. 천하일보가 시세표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이 비대칭성의 벽을 허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