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 너머에 있는 강인한 사람들의 삶
어제, 2월 3일 오후. 입춘을 지났지만 날은 다시 추워지기 시작한다. 저녁을 지나 영하 6도, 7도.. 오히려 오후를 거쳐 집에 갈 시간이면 좀 일해볼 만한 날씨여야 하는데 추워진다.
그렇지. 내일은 다시 한파가 온다. 영하 12도, 체감온도 영하 19도의 한파가 예상된 다한다. 내일의 날씨를 예감이라도 하듯 바람 끝이 차가워지고 쇠로 된 밑창 위 발이 조금씩 얼기 시작한다.
같이 일하는 형님은 구수한 말투로 물으신다.
"내일 일이 되긋냐, 안되긋냐?"
구수한 말투로 물으시니 구수한 말투로 대답해야지.
"쉽지는 않겠지만, 가봐야 알겠쥬, 그렇지 않겠어유?"
참 우리는 날씨에 민감한 사람이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기상청에서 일하는 지인의 말이, 비가 오는 날 예보가 틀리면 아침 한대가리 공치고 돌아온 건설노동자들이 왜 비 예보 틀렸냐며 항의전화를 무지 많이 한다고. 그분께는 기상청은 고대로 치면 하늘의 뜻을 알리는 이들이니 너무나 힘든 일이라 위로했지만, 그만큼 한대가리 하냐 못하냐에 삶이 달려있는 우리네의 팍팍한 삶이 담긴 푸념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밤은 지나 다시 2월 4일 출근의 시간이 되었다. 역시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팀원들의 출근보고 카톡방에는 어젯밤부터 밑밥을 깔고 일이 있어 못 나오겠다는 이들부터.. 하나, 둘, 셋, 넷... 꽤 많은 분들이 추운 날 쉬겠다고 올라온다. 아무리 일당쟁이여도 근태가 생명이겠지만, 일당쟁이인 현실이 우리를 옥죄는 것인지, 추운 날은 추운 날대로, 더운 날은 더운 날대로 가끔 회사가 집에 가라고 하면 출근한 값도 받지 못하고 집에 가는 날도 종종 있기 때문에 이런 날엔 오히려 노동의욕이 떨어지고 안 나오게 되는 것도 현실이다. 우리 현장도 지난 한파에 소수가 출근하려고 왔다가 추워서 일 안된다며 사람들을 돌려보내기도.
아무튼 이러저래 했지만 출근했고, 대다수 출근한 이들의 이유는 뭘까.
벌어야 하는 돈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고생하는데 나오는 것이겠지.
결국 어제 일이 되긋냐, 안되긋냐를 여쭈셨던 형님은 나오지 않으셨다.
새벽길은 추워. 변함없이 출근하면 똑같이 하는 대로, 가서 옷 갈아입고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준비하고. 그러던 와중에 영하 12도보다 낮은 기온이어서 아침조회를 8시에 한다는 소식이! 그렇게 한 시간을 기다리며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8시가 되었는데 지난번과는 다르게 오늘은 일을 하네? 다행히 팀장님은 이런 날은 안 다치고 버티며 해보자며 사람들을 다독여주시고, 뒤늦게 발팩을 장착하고 연장을 챙겨 슬라브 위로 올라가 본다.
오늘의 나의 업무는 슬라브 위에 단열재를 까는 일이다. 지하주차장 부분의 거푸집을 만들다가, 윗 층에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나오면 당연히 지하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으러 단열재를 넣어줘야겠죠? 단열재가 들어가는 구간에 거푸집을 단열재 치수에 맞춰 보와 슬라브 크기를 조정하고, 단열재를 선시공하고 철근이 들어가고 타설을 할 때까지 터지지 않고 잘 시공하는 것이 우리의 일. 깔아야 할 단열재 치수에 맞춰 자르고 나르고 하다 보니 오히려 등이 땀에 젖었다. 8시에 일을 시작해서 그런가. 내가 현장에서 만난 형님들은 일 좀 늦게 시작하면 '많이 해줘야지'이런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많았는데, 나도 어느새 그런 마음을 보고 배웠는지, 오늘 중간에 쉬지도 않고 열일했네.
세상 사람들은 이 추위에 밖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모르겠지. 나도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몰랐으니까.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삶처럼, 때로는 돈을 벌기 위해, 자기의 업이니까, 동료들과 함께 짊어진 하루의 무게, 책임. 여러 이유로 우리는 이 추운 날을 밖에서 버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냥 이런 날을 견디다 보면 깊어지는 건, 어떤 조건에도 살아남는 우리의 강인함을 존경하게 되는 나의 마음 인 걸.
아무튼 누가 일 안된데. 시작하면 일은 되는걸.
스티로폼 가루 범벅인 채로, 그리고 콧물이 뚝뚝 떨어지는 하루지만 오늘도 하루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