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곳에서 온 스파이(1965) 이야기

by 조성현

https://youtu.be/FRntBOQsNYc?si=FuVkZpP9ov4Yk1Cw

<Portishead - Biscuit>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편적인 첩보물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서정적인 피아노 반주로 영화는 시작한다. 어느덧 첩보물의 바이블이 되어버린 <007> 시리즈, 혹은 대단원에 막을 내린 <미션임파서블> 시리즈의 그 박진감 넘치는 음악은 영화에서 흘러나오지 않는다. 이 서정적인 곡조는 주인공인 리머스가 동독과 서독의 경계에 서있는 동안, 정보원 뱃시를 기다리기 위해 그 주변을 서성거릴 때에 등장하는 트래킹 숏에서도 사용된다. 이는 우아하고 멋들어진 외형의 제임스 본드보다는 찬바람을 맞으며 쓸쓸하게 거리를 거니는 한 우울한 남성의 모습에 가까워보인다.


이 도입부에서 암시하다시피 영화는 뜨거운 두뇌싸움, 혹은 치밀한 정보전을 중점적으로 풀어나가지 않는다. 리머스가 콘트롤을 만나는 순간을 들여다보자. 콘트롤은 그에게 마치 선심을 쓰듯, 따듯한 내근직으로서의 전환을 넌지시 권한다. 그러나 리머스 본인은 추운 곳에 남기를 선언한다. 이 추운 곳이라함은 Cold War, 즉 냉전이 진행되는 서슬퍼런 시대의 광야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현장요원으로써의 자부심이 드러나지만 동시에 그가 속해있는 곳이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서늘한 곳임을 드러낸다.


콘트롤은 그와 대화를 하는 도중 카메라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해온다. 일순간, 콘트롤의 모습은 카메라에 크게 잡히고 리머스는 그에 비해 작은 모습으로 카메라에 전신이 드러난다. 콘트롤이라는 존재를 이데올로기, 그 중에서도 자본주의 진영의 관료주의 체계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보면, 이 거대한 존재가 리머스를 이미 하나의 말로써 이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스파이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도서관에 잠입하고 '낸'이라는 이름의 여인을 만난다. 그녀와의 대화에서 그가 내뱉는 하나의 에피소드는 이 잔혹한 냉전의 정체성을 함축적으로 설명한다. 두 대의 화물차, 그리고 그 사이에 끼인 한 대의 승용차. 그것을 바라보고 낄낄거리는 외부의 사람들은 리머스 본인이 처해있는 상황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들이 화물차로서 작용해 가운데 끼어있는 존재들을 우악스럽게 깔아뭉게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두 대의 화물차가 서로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과정에서 사이에 끼인 승용차에 타있는 커플의 애정이 얼마나 애틋한지는 중요치 않다. 한 편의 멜로드라마, 혹은 서정적인 신파로써 여겨질 수는 있겠으나, 이데올로기의 실현이라는 거대한 대의 앞에서는 얼마든지 무시되어도 좋은 것이다. 아니, 정확히 그 애정이라는 것은 그 승용차를 움직이는 수단 정도로는 여겨질 수 있겠다. 그렇게 냉전은 인간의 애정에 냉소를 던진다.


낸과 리머스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으나, 냉전은 이들의 사랑을 이어줄 생각이 없다. 낸은 공산주의자요, 리머스는 자본주의 진영의 요원이므로. 보편적으로 인간사에서 드러나는 애정에서 배반과 치정극이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요소이지만, 배신의 주체가 정부 그 자체인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조국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했던 리머스를 향해, 정부는 그의 연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리머스는 이 비정함에 상처입는다.


결국 그는 그의 연인이 죽은, 적성국의 경계로 넘어가 스스로 죽기를 택한다. 추운 곳에서 온 스파이는 그 바람이 가장 강한, 가장 추운 곳에서 그의 연인과 운명을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이미 쓰러진 낸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그의 몸은 쓰러지고 그렇게 죽은 두 연인은 마주보지 못 한채 엔딩 크레딧은 올라간다. 으르렁거리는 두 체제의, 거대한 두 대의 화물차가 서로를 향해 윽박지르는 싸움을 할 때 승용차에 탑승해있던 두 커플은 그렇게 찢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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