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구덩이

위기의식

by 정수윤세

하루하루 고단한 하루를 살아내려 애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음구덩이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전혀 의도하지도 않았고 생각해 보지도 못한 사이에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새 차가운 얼음구덩이 한가운데 있다. 아무리 얕은 구덩이라고 할지라도 처음 경험하는 구덩이는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 마치 눈이 자주 오지 않는 지방에 갑작스러운 폭설이 내리면 사람들이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사고가 발생하게 되는 이치와 비슷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탈출할 방법이 보인다. 주변에 도움을 줄 사람이 없어서 아무런 계책이 없이 몸으로 부딪히게 되면 기력이 떨어져 도움의 손길마저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얼음구덩이에 의도하지 않아도 빠져드는 이유는 각자가 살아가는 방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열심히 노력해서 공부했으나 원하는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서, 누군가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인정받지 못해서,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비수 같은 말이나 행동에 상처받아서 같이 특정 지어서 어떤 상황에 결부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공통적인 상황은 충격을 받고 잠시 집중력을 잃은 사이 불상의 힘에 의해 차가운 얼음구덩이의 중간으로 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생존의 본능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상황을 자각하는 즉시 위에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손과 발로 안간힘을 써서 빠져나가려 애쓸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에너지는 소모되고 얼음구덩이는 깊게만 느껴질 것이며 심지어는 눈에 보이는 위험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자신을 더 자책할지도 모른다.


사람의 인생이란 탐험하듯 걷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함정에 빠져 얼음구덩이에 빠지기도 한다.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먼저 빠져본 사람이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다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겠지만 냉혹한 얼음벌판에서 도움을 줄 사람을 찾기란 여간 쉽지 않다. 오히려 곰이나 호랑이 같은 야생동물에게 발견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처음 빠져본 사람은 당연히 빠져나올 방법을 모른다. 그러나 이미 경험해 본 사람들은 무표정으로 툭툭 털고 일어나 얼음구덩이를 빠져나올 것이다. 얼음구덩이는 막무가내로 달려들어서는 계속 미끌림에 의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만 한다. 힘을 분산시켜서 빠져나와야 한다. 얼음구덩이를 원심력을 이용해 빙빙 돌면서 조금씩 올라와서 탈출하는 방법과 좌우 혹은 상하 방향으로 왔다 갔다 하며 빠져나오는 방법이 있다. 그도 아니면 타인이 던져주는 로프에 의지해 빠져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의 경우에는 이미 타인이 없다는 전제를 두었으니 제외시키고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데 처음 빠져본 사람이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어 있는 힘껏 에너지를 쏟아내는 일은 바보 같은 행위다. 혹시라도 운이 좋아서 한 번은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 사람은 부작용이 따른다. 함정에서는 나왔어도 걸음을 옮겨야 할 에너지가 없을 수 있고 다음에 조금이라도 더 깊은 구덩이에 빠진다면 두 번은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 다 빠지는 심연의 얼음구덩이는 처음 빠졌을 때가 가장 중요하다. 빨리 방법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도 없다. 이미 밝혀진 두 가지의 방법 이외의 또 다른 창의적인 방법을 개발해 낼지도 모른다. 탈출 방법이 밝혀진 이유는 이미 선행해 봤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사람들에 의해서 방법이 구전된 것이다. 만약 이 얼음구덩이가 물리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는 구덩이라고 한다면 남들이 빠져나왔던 방식을 통해 빠져나오면 된다. 그렇지만 심연의 얼음구덩이는 그렇지가 않다. 사람마다 깊이도 모양도 생김새도 너무 다르다. 탈출할 수 있는 일련의 방법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타인의 도움도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도움을 주려던 타인까지 같은 위험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다. 과연 심연의 얼음구덩이를 빠져나오는 효과적인 방법은 그럼 무엇일까?


열쇠는 마음속에 있다. 심연의 얼음구덩이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밖으로 향하는 탈출구가 하나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수없이 드나드는 방문이나 화장실 문이 닫히는 지점에 완충재가 들어있는데 건축을 현업에서 하고 있지 않은 분들이라면 그런 디테일을 쉽게 알아채기조차 힘들다. 유심히 관찰해야 보인다. 심연의 얼음구덩이도 똑같다.


자신의 마음을 유심히 관찰해야 길이 보이고 문이 보이며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도 생긴다. 다른 사람이 구해주기만을 바라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간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다. 자신의 생존권을 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만 빼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같은 방식으로 살고자 애쓴다면 그것은 자신의 방법이 아니기에 다시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특별하든 특별하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자신만의 비법이어야만 위험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시간이 굉장히 많이 소요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한 번 찾아 놓은 마음의 마스터키는 다음 위험에 빠져도 손쉽게 빠져나올 방법을 갖게 된다.

다만 타인의 위험까진 구해주지 못한다. 자신의 마스터키가 아무리 많은 위험을 빠져나왔다고 하더라도 하다못해 쌍둥이라고 할지라도 각자 고유의 특성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동물에게는 타인의 마스터키는 그저 나만의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당연히 위험에 빠지면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지고 안간힘을 쓰는 게 인간의 특성이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시야를 넓히고 자신의 마음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관찰자의 자리에서 바라보면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나이도 중요하지 않다. 상황도 중요하지 않다. 이겨내려는 자신의 의도만이 중요하다. 사람이 못 하는 일은 없다. 아무리 큰 역경이 불어닥쳐도 지구에 뿌리내리고 생존 방식을 개발하고, 적응하며 살아온 건 사람이다.


마음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수전증에 걸린 환자가 바늘구멍에 실을 꿰어 넣는 것처럼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고 어쩌면 평생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하겠지만 조금만 쉽게 생각하면 어렵지 않다.


처음 하는 일이라 어려운 것이다. 살면서 처음 하는데 쉬운 게 어디 있었는가? 아기 때는 밥을 먹으려 수저를 드는 것부터 힘들었다. 학교 다닐 때에는 공부가 제일 쉬웠을까? 다수의 사람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운전은 누구나 처음부터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좋아해서 마음이 통해 연애를 하더라도 상대가 내 마음 같지 않아 속 썩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이처럼 처음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어렵고 서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위기를 빠져나갈 방법이 어디엔가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리 손이 떨려도 언젠가 바늘구멍에 실을 꿰어 낼 것이며 아무리 어려운 고난도 지나면 아련한 추억이 된다.

위험에 빠졌다고 당장 온 힘을 쏟아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마스터키를 찾기 위해, 심연의 얼음구덩이를 지혜롭게 헤쳐 나갈 방법을 고심해야만 하는 이유다.


2026년의 시작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요한 물이 세상을 적신다

정수윤세(靜水潤世)

작가의 이전글인간의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