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숙제

by 향글

이번 여행에서는 푸꾸옥의 남부 3개 섬으로 스노클링을 하러 갔다. 무려 나 혼자. 물을 좋아하지 않는 남표니는 절대로 동참할 일이 없고, 여행 초기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일이라 나 혼자 가기로 했다. 아침 7시부터 숙소를 나서서 항구에서 배를 타기 위해 자동차로 이동했다. 항구로 가는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걸렸지만 도착해서 배를 타고 이동한 시간은 20~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뱃멀미를 했다는 후기가 있어서 약간 긴장을 하고 배를 탔는데 그날은 뱃멀미는커녕, 얼음판 위로 스케이트 미끄러지듯이 매끄럽게 순항했다. 선상이 3층까지 되어 있는 제법 큰 배였다. 여행 비수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배에는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대부분 가족과 친구 위주라 나는 혼자 뻘쭘하게 사람들 틈에서 빨리 섬에 도착하기 만을 기다렸다.


섬에 도착하면 스노클링 교육을 받을 거라 예상했는데, 배가 멈추자 사람들은 알아서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나는 처음에는 구명조끼 없이 입수하려다가 사람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고 얼른 돌아서 구명조끼를 챙겨 입었다. 수영이라면 어느 정도 자신은 있지만 짠 바닷물에서 처음 하는 스노클링인 데다 동행 없이 혼자라 의지할 곳이라고는 구명조끼뿐이었다. 물에 들어가면 발아래 물고기 떼와 산호초가 가득하다는 사실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고글과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물에 들어가긴 했지만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할지 몰라서 쓰디쓴 바닷물을 두 어번 삼키고 나서야 마우스피스 쓰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렇게 몸으로 체득을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물속에서 숨 쉬는 것도 편해지기 시작했다. 일부 사람들은 구명조끼 없이 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스노클링 초짜인 나는, 감히 구명조끼를 벗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45분간 스노클링을 하는데 장비에 적응하는데 10여분을 쓰고 조금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둥둥 떠다니며 바닷속 세상을 관람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갔다. 관광지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은 사람들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도망가지도 않고 사람들과 함께 수영을 하며 가끔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 손을 뻗으면 잡히기라도 할 것 같이 물고기들과 함께 수영도 하고 눈도 마주치는 생경한 경험은 한 번쯤은 해 볼 만하다.


물도 따뜻하고 맑아서 둥둥 떠다니기엔 안성맞춤이었지만, 산호초가 거대해서 자칫 잘 못 하면 팔다리에 닿을 것 같았고, 산호초에 붙어서 자라나는 각종 해조류와 말미잘들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산호초 위를 지나갈 때마다 미지의 생명체가 나를 확! 잡아채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바닷속에서 바다를 보는 경험은 처음에는 신기하고 경이롭지만, 시간이 지나면 약간은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예전에 제트스키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 섰을 때도 새까만 물 밑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심을 느꼈던 것처럼, 바다는 항상 나를 빨아들일 것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럴 일은 없다고 나를 안심시키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공포심이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도 조류에 몸을 싣고 수면에 둥둥 떠다니는 것은 좋았는지 90분 시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더 깊이 들어가 바닷속을 제대로 촬영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한번 내가 얼마나 소심한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무언가 새로운 도전이 있을 때마다 마음속으로는 불끈불끈 의욕이 솟구치지만 머릿속으로 내가 적응해야 할 상황을 전개하면서 점점 더 두렵고 귀챦아진다. 내가 바라던 상황을 만나도 ‘아, 내가 상상했던 것이 아니다, 이건 너무 힘들고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라는 소용돌이가 일면서 나를 주저앉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원하던 상황 속에 있어도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의 행복감 또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스노클링이 끝나고 항구로 돌아가는 배에서, 반 나체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일광욕을 하는 여성들을 보며 참 여행을 즐기고 있구나 싶었다.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뱃머리에 아무 옷이나 깔고 드러누워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까지 햇볕과 바람을 오롯이 느끼고 있었다. 그 햇살과 바람은 그 자리에서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납작한 사진 한 장으로만 남을 한 조각의 시간이다. 마음 한구석에는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결코 나 자신에게는 허용할 수 없는 자유분방함을 시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별것 아닌 이야기도 모르는 사람들과 즐겁게 떠드는 여행객들 옆에서, 얼마든지 끼어들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나를 보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길게 이어지지도 않는 짤막 짤막한 대화를 나누며 ‘소통했어’라는 기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친구 하나 만들지 못하는 나의 소심함을 자책하며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헤어지면서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재회를 기약하는 그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재회를 원하는 것인지를 깊이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가지지도 않을 것을 나는 왜 욕심을 내는 것인지.


그 언어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였어도 나는 수다에 동참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도 않을 성격이 괜히 그런 모습을 부러워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친화력 좋고 수다스러운 남편과 부부가 되었다는 것에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외향적인 남편을 보며 그렇게 하는 것을 배우라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 수줍어서, 귀챦아서 잠자코 있는 나의 소심함을 한 번씩 들춰보고 작은 걸음이라도 내디뎌 보라는 숙제일지도 모른다.


PS: 혼자 찍은 사진을 보고 측은했는지, 다음 번에는 남표니 같이 가주기로 했다. 다음에는 더 자신감 있게 물속으로 들어가 멋진 영상을 남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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