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마음을 풀어주는 달콤함
삶이 온통 꼬여버린 것 같은 날이 있다.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복잡해지고, 생각의 실타래가 끝없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날. 그런 날엔 괜히 걷게 된다.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구불구불 이어진 공원을 따라 터벅터벅 걷다 보면 어디선가 훅 퍼지는 달콤한 냄새에 고개를 들게 된다.
얼마 전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작은 츄러스 가판대.
다가가보니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한 분이 방금 구운 츄러스를 노란 온열기안에 차곡차곡 진열하고 계셨다.
따뜻한 열기를 받으며 사이좋게 늘어선 츄러스를 보니 괜히 허기가 느껴져 주머니를 뒤졌다.
츄러스 할머니는 내 쪽을 흘깃 보시더니 갓 구운 츄러스를 집어 들어 내게 건넸다. 길게 쭉 뻗어있지만 어딘가 꼬불하게 꼬여 있는 그 모양이 마치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삭하게 튀겨진 겉면 위로 설탕이 반짝이며 내려앉았다.
손에 쥐자마자 전해지는 따뜻함이 어쩐지 마음까지 데웠다. 한입 베어 무니, 파삭 소리와 함께 버터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설탕 알갱이들이 혀끝에서 사르르 녹아내렸고, 계피의 향긋함은 코끝을 감쌌다. 그 달콤함 속에서 잠시나마 복잡했던 생각들이 설탕가루처럼 오소소 떨어져 내렸다.
나와 츄러스는 늘 특별한 순간을 함께했다.
놀이공원에서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한 입씩 베어 먹던 기억, 유럽의 겨울 축제에서 손을 호호 불며 초콜릿에 츄러스를 찍어먹던 기억, 유원지에서 동생과 대판 싸우고 엉엉 울며 먹었던 까끌까끌한 기억까지.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뜨던 그때의 웃음소리와 설렘이 알싸한 계피향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기억의 맛이란 참 묘한 것 같다.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만들고, 어릴 적 순수했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한다. 아마 그 속에 오래된 추억과 아직 오지 않은 설렘이 함께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츄러스 한 입에도 그런 힘이 있다.
내가 여태껏 살면서 먹은 수십 개의 츄러스는 단 한 번도 전문가에 의해 직접 반죽되고 튀겨진 것이 없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냉동반죽을 작은 가판대에서 튀겨내어 만든 한국식 츄러스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어쩌면 진짜 츄러스라고 할 수도 없는, 그저 투박하게 흉내 냈을 뿐인 단순한 간식. 하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따뜻하고 그리운 추억들이 소복이 잠들어 있었기에 나는 기억을 솔솔 뿌려 항상 맛있게 삼켜냈다.
우리는 가끔 인생이 너무 복잡하고 버거울 때가 있다.
츄러스는 길게 뻗은 모양만큼이나 그런 우리 삶의 여정을 닮아서, 일직선으로 곧은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굴곡들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때로는 거친 표면에 입천장이 까지기도 하고, 새하얀 설탕 가루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려 손이 온통 끈적끈적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고작 그것이 두려워 츄러스를 쓰레기통에 내팽개치지는 않는다.
삶도 그렇다. 일상에서의 굴곡이 아무리 깊게 파이고 나를 아프게 하더라도, 삶을 송두리째 내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꼭꼭 씹어 마지막 한 입까지 꿀꺽 삼켜내야 한다.
그런 굴곡진 여정 속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매일 눈을 맞추는 소중한 가족들, 나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반려동물, 어릴 적 쓴 일기장 몇 권과 따뜻한 추억들이 늘 삶의 깊은 굴곡 사이사이에 솔솔 묻어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베베 꼬인 길 위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삶이 때때로 츄러스처럼 꼬여버려도 괜찮다. 그 꼬임 속에는 달콤함이 숨어 있으니까.
나는 길게 뻗은 츄러스를 들고, 조금은 꼬여도 괜찮은 내 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거친 표면은 바삭하게 씹어내고, 날리는 설탕은 달콤하게 털어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