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각, 가로등 하나만이 노랗게 길을 비추는 좁은 골목에 형광색 조끼와 하얀색 헬멧을 쓴 남자가 서 있다. 그는 골목에 버려진 종량제 봉투를 잠시 바라본 후 리어카에 싣고선 유유히 빠져나간다. 리어카의 덜그덕거리는 소리만이 동네에 조용히 울려퍼진다.
오늘은 주석이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를 통보받은 지 6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그에게 회사는 구조조정을 이유로 그의 시간을 정리하고자 했다. 회사의 부당한 해고에 대한 항의를 해보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권고사직이었다. 그날 이후 주석은 한동안 그의 침대에 누워 멍하니 휴대폰만 바라보며 살았다. 보다 못한 주변 사람들은 주석에게 이참에 해보고 싶던 것들을 해보라며 조언했지만, 조용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주석의 휴대폰 속 사람들은 하나 같이 여행을 떠나고, 맛집을 탐방하며 그들의 화려한 일상을 공유했지만, 그는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올려줄 뿐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하기 위해 떠나지는 않았다. 고요함만이 방안을 맴돌았다.
주석이 처음으로 환경미화원이라는 직업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느 날의 새벽이었다. 잠에 들지 못한 새벽, 어김없이 편의점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고요하던 평소와는 다르게 골목에서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났고, 주석은 소리를 따라 골목으로 향했다. 소리를 따라간 곳에는 노란색 리어카와 함께 형광색 조끼를 입은 사내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많이 시끄러웠죠?”
“아닙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냥 소리가 나길래 와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거의 다 마무리됐습니다.”
“이 동네를 선생님 혼자 다 담당하시나요?”
“아뇨. 그건 아닌데, 아무래도 골목이다 보니 차가 들어올 수는 없어서요. 그래서 한 명씩 리어카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오는 거죠. 이 동네는 골목이 많아서 이 녀석 없으면 일을 못해요.”
남자는 리어카를 두드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약간의 침묵이 감쌌고, 사내가 리어카를 다시 끌려는 순간, 주석이 입을 열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사내는 걸음을 멈춘 후 잠시 주석을 바라보다가, 짧게 웃었다.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이 일하고 있으면 잡생각이 안 들어서 좋아요. 동네도 조용하고.”
“그렇군요.”
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잡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인데 힘내세요. 내가 오래 살진 않았지만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더라고요.”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덜그덕거리는 리어카를 끌고서 골목을 벗어났다. 주석은 사내가 떠나간 골목 가로등 아래 멍하니 서 있었다. 사내의 말이 주석의 마음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