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43살의 여성입니다. 혼기를 놓쳐도 한참을 놓쳤지요. 이제 예쁠 나이도 지났고, 출산할 나이도 지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말의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염두에 두고 고민해 왔습니다. 어쩌면 저도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말입니다. 대학원을 진학한다거나,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갔을 때 등 큰 결정을 내릴 때마다 혹시 내가 결혼을 하거나 출산을 하게 돼서 중간에 학업을 그만둔다거나 다시 이사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까 걱정되었습니다. 저축을 계획할 때도 혹시 결혼으로 인해 중간에 목돈이 필요할까 봐 연금을 붓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지금 와 돌이켜 보면 참 쓸데없는 걱정이었지 말입니다.
이십 대 이후로 저를 떠나지 않던 고민이 바로 '결혼과 출산'이었지요. 결혼은 아무리 생각해도 제 적성에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나 너무 사랑하는 남자가 생겨서 결혼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있었어요. 저는 제 삶을 온전히 저 자신을 위해 살고 싶은데 혹시 저에게 아이가 생겨서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의 이 끝없는 고민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니 바로 'ADHD와 조울증'입니다. 저는 아마 정신과 약을 장기간 복용하게 될 것입니다. 조울증 같은 경우는 단약을 하고 나서 재발할 경우 더 예후가 안 좋다고 하니 어쩌면 평생을 먹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평생 정신과약을 먹어야 하는 여자를 반려자로 맞이하고 싶은 남자는 없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남자라면 결혼이 망설여질 것 같습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과 함께 하고 싶거든요. 누군가에게 이런 저를 진정으로 사랑해 달라며 떼쓸 생각은 없습니다. 저를 낳아준 부모조차도 저를 온전히 수용해주지 못하는걸요.
그리고 만약 제가 여차저차 임신한다 하더라도 ADHD와 조울증은 유전의 영향이 강하기에 아이는 저의 영향을 받아 저처럼 평생 약을 먹으며 살아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적어도 50%의 확률을 갖게 되겠지요. ADHD와 조울증 환자라고 해서 태어나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살아갈 이유가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한 남자가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아내와 아이를 갖게 할 수는 없어요. 설령 저보다도 더 정신 나간 남자가 있어 "내 애를 낳아도"라며 매달린다 해도, 저는 절대로 그 남자를 그렇게 살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살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홀가분합니다. 결혼과 비혼 사이에서의 오랜 고민과 방황을 끝내고 안락한 동굴로 돌아온 기분이에요. 이제야 비로소, 오롯이 홀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라도 남은 생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이제야 제 인생에서 완전히 배제했습니다. 저는 혼자 살 겁니다. 죽을 때까지요. 외롭지 않냐고요? 조금은 외롭고 쓸쓸한 기분입니다. 고독은 저의 운명이었나 봅니다. 배우자를 만나 아이들을 낳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왜 저는 그렇게 살 수 없는지, 가끔은 슬픕니다. 그저 타고난 저의 운명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억울하기도 하네요. 저는 못되거나 나쁘게 살아오지 않았는데, 착하게 살아온 쪽에 가까운데 어째서 저는 형벌 같은 고독과 외로움을 받아야 할까요.
아무튼 그냥 혼자 살기로 했습니다. 이제 혼자서도 재밌게 잘 살 궁리를 좀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