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영어.
영국 국적을 가졌으나 캐나다에서 17년을 살고, 한국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스페인계 영국인 J와 두 번째 영어 수업을 가졌다. 그의 아파트에 들어가니 그는 한국인 여학생 한 명과 밀크티를 마시며 프리토킹 중이었다. 그 여학생은 일본어를 잘하는데, 회사 업무에서는 영어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는 거라고 나중에 J가 알려줬다.
내년에 미국의 교환 교수(FACES프로그램)를 신청하고, 2027년부터는 미국에서 근무를 시작하려고 생각 중이다. 나이도 있고 해서 마냥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대체 어떻게 해야 영어로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릴 수 있는 건지 답답하기만 하다. 영어만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교환 교수를 신청했을 것이다. 올해 많이 뽑는다는 특수교사 임용고시를 과감하게 내려놓았는데 미국에 나갈 수 없게 된다면 좌절과 상실이 클 것 같다. 사실 특수교사 임용에 미련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이다. 가지 않은 길에는 늘 미련과 회한이 남기 마련이다.
J의 수업은 총 두 시간이다. <side by side>라는 교재로 한 개의 챕터를 공부한 후, J가 만든 짤막한 대화를 연습하면 한 시간 정도가 지난다. 나머지 한 시간은 프리토킹으로 진행한다. 이러한 수업 방식이 나쁘지는 않다. 사실 교재야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는 것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원어민과의 프리토킹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프리토킹 시간의 99.9%가 한국어로 진행되는 이상한 상황이 펼쳐진다. 다른 학생들은 J가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실조차 모른다고 하니 아마 다른 학생들과는 영어로만 진행하는 듯하다.
교재 수업을 마친 그는 주방으로 가서 반죽을 탁탁 치대더니 커다란 팬에 굽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매콤한 냄새가 나길래 떡볶이 만드냐고 물었더니 그가 웃으며, '토르티야' 라고 답했다. 내가 생각한 토르티야는 길쭉한 롤 형태였는데, 그가 만든 토르티야는 부침개 크기의 둥글넓적한 빵이었다. 그 빵을 손으로 작게 뜯어 내어 양념된 고기를 떠 넣은 후 함께 먹는 방식이었다. 썰어낸 생오이를 곁들이니 정말 맛있었다. 빵은 쫄깃하면서 담백한 건강빵이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맛과 식감이 훌륭했다. 그의 요리를 칭찬하니 그는 신이 나서 자신이 만들었다는 쿠키 사진을 보여 주었다. 마치 판매하는 것처럼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확실히 요리에 특기가 있어 보였다. 토르티야를 먹다가 고기의 기름이 뚝뚝 흘러 내 치마에 묻었다. 난 원래 이렇게 맨날 흘리면서 먹는다고 하자 그는 "My baby~"라며, 물티슈를 가져와 손수 치마의 얼룩을 닦아 주었다.
선입견이나 편견일 수도 있겠으나, 서구권 남자들이 한국 남자들보다 가정적이고 스위트하며 로맨틱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민을 생각하는 요즘, 국제 결혼의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다. 솔직히 영주권자 내지는 시민권자와 결혼하는 것이 영주권을 얻는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교환 교수로 미국에 나가면 J비자로 가는 것인데, J비자는 영주권을 신청 하기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 J비자로 미국에 있을 수 있는 기간은 최대 5년이며, 더 있으려면 한국에 돌아가서 2년이 지난 후에 다시 되돌아가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 나로서는 영주권자와의 결혼이 가장 확실한 신분 보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국제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일단 언어라는 장벽이 가장 클 테고, 서로 살아온 문화가 달라 공유할 수 있는 감성이 한국인과는 다를 것 같아서였다. 정서적 교류와 대화를 소중히 여기는 나로서는 국제 결혼이라는 선택지는 생각해 본 적 조차 없었다. 그렇게 확고하던 생각도 이렇게 달라지는 걸 보면,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J와의 수업 시간은 금요일 오후 5:30 ~ 7:30. 딱 저녁 식사 시간이니, 이렇게 맛있는 영어 수업이 아마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토르티야는 맛있었지만, 한국어로 이어지는 프리토킹 시간 내내, 내 속은 타들어 갔다. 나는 언제 말문이 트일 것인가? 무슨 무당이 신내림 받는 것도 아닌데, 입이 이렇게 안 열려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