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허무의 시간을 유연하게.
'나'라는 존재
막연했던 나의 인생 허무의 시간이 금방 다가왔다.
지금까지 살며 맞닥뜨린 많은 시련들을 겨우겨우 이겨내며 모래 늪으로 빨려 들어갈 때면 어딘가에 있을 나의 동아줄을 찾아 헤매었다. 나는 그래야 한다고 그냥 믿고 살았다. 여느 엄마들과 다르지 않다.
그냥 참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새벽 무렵 잠을 잘 자지 않던 아이를 안으며 울기를 여러 번 했다.
나는 엄마가 처음이었고 내 나이는 갓 서른 살이 된 아직은 무르익지 않은 나이였다.
그렇게 무르익지 않은 나에게 더 무르익지 않은 아이 둘이 생겼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은 커갔다.
그리고 내 나이는 어느덧 서른여덟.
아이들은 이제 내 말을 어느 정도 수용할 줄 아는 어린이로 성장했다.
그리고 찾아왔다. 인생허무의 시간이.
하지만 오히려 좋았다. 인생허무의 시간이.
온전히 나를 되돌아볼 시간이.
그동안은 나를 되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뉴스에서 인터넷에서 떠도는 그 흔한 경력단절의 여성이었고 아이들을 키워 내는 것도 버거운 그런 삶이었다. 나 또한 경력단절의 여성으로 결혼을 하며 하던 일을 그만뒀다. 그리고 사실 두 살 터울의 아이를 키워 내다보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틈이 생기면 그저 쉬고 싶고 자고 싶고 눕고만 싶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안으로 조금씩 더 안으로 움츠려 들며 작아져만 갔다.
이제는 열정은 없다. 취업을 목표로 하나씩 커리어를 쌓아가던 20대의 찬란했던 나는 없다.
나는 그런 것들은 뒷전이 되었고 눈앞에 놓인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내는 것에 정성을 쏟았다.
그게 당연했고 그게 편했다. 그렇게 결혼 10년 차가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문득 찾아왔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나의 인생 허무의 시간이 오니 스스로에게 질문이 많아지고 '나'라는 인격체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지금 바로 도전할 수 있는 것.
그렇게 점점 나를 되돌아보았고 마침내 나는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야기라는 것에 점점 매료되어 갔다.
하나씩 문장을 만들어 채우는 기쁨이란!
나는 이제 나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그 한 번쯤은 겪는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까라는 고민은
여전히 하는 중이고 그에 대한 해답을 천천히 글로 찾아 표현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