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힘

도봉뉴스에 실린 나의 글.

by 도레미파솔라시도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 여전히 들려오는 아이들의 투덕거림 소리에 내가 한없이 힘들어 한 날이었다. 한 숨을 끊임없이 쉬며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냈고 모든 게 버거운 그런 날이었다. 9살 7살, 2살 터울의 남매는 그렇게 엄마인 나를 매일 같이 시험하는 듯 보였다.


가끔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내가 행했던 선택들이 나를 옥죄어 오는 날들.

그날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 지나가며 들여다본 거울 속엔 눈살을 찌푸리고 생기 없이 서있는 38살의 한 여성이 보였다. 다른 이들도 이럴 것이라 스스로에게 위로하며 억지로 미소를 조금 머금는 여성이 말이다.

그런데 그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첫째 아이의 손에 학교 과제가 쥐어져 있었다.


‘예쁜 우리말’이라는 과제였는데 기역에서 히읗까지의 단어를 스스로 정하고 그 뜻을 적는 거였다. 스스로 과제를 한 딸아이가 자랑스럽게 하나씩 읽어주기 시작했는데, 짧은 글이 이렇게 위로가 될지 몰랐다. ㄱ(기역)은 감사. 엄마가 낳아 준 게 감사하다.로 첫 장을 시작했더란다. 그리고 ㄷ(디귿)은 동생이다. 엄마가 재미있는 동생을 낳아주어서 고맙다.라고 적어왔다.

다른 한 손에는 동생에게 전하는 편지도 있었다.

‘네가 태어나서 누나가 외롭지 않고 즐거워. 그래서 누나도 기분이 좋고 너도 기분이 좋을 거야 토요일, 일요일 재미있게 놀아줄게’라고.


철부지 같던 딸아이가 사실은 누구보다도 엄마와 동생을 생각하는 아이라는 걸 내가 잊은 것 같아 오히려 부끄러웠다. 남매의 투덕거림의 뜻은 서로에 대한 애정 이었을 텐데 철부지는 딸아이가 아닌 엄마인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투덕거리는 소리에 한숨 쉬며 아이들을 내보내기에 급급했던 나인데,

유치원생과 싸워대는 초등학생의 딸아이가 그저 철부지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철부지의 경계는 참 모호했고 이 날의 철부지는 결국은 나였다.


이상하게 그렇게 힘든 날이면, 보란 듯이 나를 뒤돌아보게 만드는 일이 일어난다. 꼭 머피의 법칙같이. 미국의 에드워드 머피대위는 정말 멋진 법칙을 만들었구나 싶다. 이럴 때 한 마디로 정할 수 있는 법칙이라니! 하지만 그 법칙은 반갑진 않으니 가끔씩만 와줬으면 한다.

나는 글이 좋다. 글은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글 속에 담긴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끝없는 해석들이 존재하고 그게 내 마음을 울린다. 이 날, 딸아이가 들고 온 과제와 편지를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딸아이의 글에는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마음이 숨겨져 있다.

가족을 생각하는 소중한 마음과 동생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가득하다. 한 번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끝없이 내 눈에는 그 마음이 담긴다. 이게 바로 글이 가진 힘이다.


그 이후에도 글을 쓰는 날이면 어김없이 우리 가족이 등장하는데 딸아이의 마음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족이 우선적으로 주제가 되는 9살 딸아이의 글은 아주 솔직하고 담백하다. 멋이 많이 부려진 글, 많은 뜻이 내포된 어려운 글보다 짧지만 솔직하고 담백한 아이의 글에서 오는 감동은 38살의 한 여성이 위로받기에 충분하다. 글을 읽으며 창문에 비친 나를 보니 어느덧 생기 없던 여성은 사라지고 자연스레 웃고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그게 바로 위로고 위안이지 않은가. 하루를 살아갈 힘이 그날 다시 돌아왔다. 작은 미소 그걸로 되었다.

그 이후 투덕거림은 여전하지만 아이들이 글에서 남긴 마음으로 힘을 얻고 하루를 보낸다. 글에서 오는 힘은 오히려 단단하고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힘이다. 그래서 감상하고 또 감상하게 된다. 하루를 살아갈 힘이 필요한 당신들에게, 그 힘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작지만 강하게 있을지도 모르니 조금씩 찾아보기를 권한다. 나에게 힘이 되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며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