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로 걸어가는 중.

서두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자세

by 도레미파솔라시도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종종 걱정된 눈빛을 보낸다.

“그런 생각은 너무 우울한 거 아니냐”라고,

“뭔가 다시 시작해 보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허무는 그런 게 아니다.

그건 포기나 절망이 아니라,

조금씩 내려놓고 바라볼 줄 아는 시선에 더 가깝다.

예전에는 의미 없는 하루를 견디지 못했다.

매일 비슷한 일상 속에서 허무가 밀려오면

무언가를 바꾸고 싶었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허무는 내 삶이 비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채우는 걸 멈추고 잠시 멈춰야 한다는 신호라는 것을.

삶은 언젠가부터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의미 있게 살아야만 한다는

보이지 않는 강박을 내 안에 심어놓았다.

그러다 보니

천천히 걷는 것조차 불안했고,

잠시 머무는 시간마저도 죄책감으로 덮이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허무는 두려운 게 아니라

오히려 삶이 조용히 손을 내미는 방식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돌아와 조용한 집 안에 앉아 있을 때,

도서관에서 천천히 책을 꽂으며 숨을 고를 때,

그런 순간들 속에서 문득

삶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허무함을 피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을 때 드러나는 것 같다.

누군가는 질문한다.

“그렇게 느슨하게 살아도 되느냐”라고.

나는 조용히 웃는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날들이 있다”라고.

나는 지금, 허무의 인생으로 걸어가고 있다.

무언가를 이루기보다,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쪽으로.

나를 정의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감정과 계절 속에 서 있으려 한다.


어쩌면 그렇게 사는 것이

더 솔직하고, 더 단단하고, 더 정직한 삶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 끝엔 아마도,

비어 있음 속에 깃든 평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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