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기다리는 사람
정확히는 굳이 하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왠지 다가가기 어려운 벽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으면 웃음이 난다. 말이 없는 사람이 무섭다니 그저 할 말이 없었을 뿐인데.
침묵이 참음은 아니다. 미덕도 아니고 그저 귀찮은 거다. 말을 얹어봐야 좋을 일이 없을 때가 많으니까.
그렇게 조용히 있다 보면 가끔 신기한 일이 생긴다. 모임에서 누군가 내 말을 끊고 목소리를 높였을 때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한다.
이런 내게 가끔 사람 관계에 이상한 패턴이 생긴다.
대놓고 하지도 않고 슬쩍 건드리는 사람. 딱 애매하게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 얄밉지도 않던 사람이 갑자기 적이 되는 순간에도 그리 놀랍지 않다. 그저 '또 시작이구나' 싶을 뿐.
불은 지르고 뒤에서 모른 척하는 사람
자기 손은 더럽히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싸움 붙이고 분위기는 깽판쳐놓고 제일 멀쩡한 척 빠져나간다. 천연덕스럽게. 하지만 그런 행동들 의외로 다 보인다. 조용한 사람이 눈치가 없는건 아니니까.
참는다고 아무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입을 다물 뿐이지 생각까지 닫은 건 아니니까.
그렇게 마음속엔 말하지 않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래도 계속 참는다. 마치 이것이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인 것처럼.
하지만 인간의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물론 언젠가는 터진다. 조용했던 만큼 강렬하게. 평소에 눌러둔 것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거니까.
진짜 무서운 사람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지.
조용한 사람이 ‘무섭다’는 건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말은 적지만, 그래서 더 신중하다.
한 번 입을 열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걸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