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빵을 먹은 할머니

구름빵 맛이 나는 고기만두

by 다정한 지혜씨

딸과 함께 '구름빵' 동화책을 읽다가 할머니가 생각났다. 구름을 집으로 가져와 커다란 볼에 넣고 우유와 이스트, 설탕을 넣은 빵은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그러다 할머니와 함께 만들던 고기만두가 생각이 났다. 구름빵과 고기만두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만 하얀 색깔과 달콤한 맛은 비슷할 것만 같았다. 명절이 되면 할머니는 찬장에서 은색 찜기를 꺼냈다. 다른 냄비들보다 유독 길고 커다란 찜기는 필요시에만 쓰였는데도 항상 찬장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만두에 진심이었던 할머니는 찜기에 만두 의외에 다른 음식은 절대 찌지 않았다. 혹여나 냄새가 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만두를 만드는 날이 다가오면 우리는 손을 잡고 시장으로 나섰다.


제 몸보다 더 큰 바퀴 달린 시장바구니를 질질 끌면서도 나는 행복했다. 150cm 키의 작은할머니는 시장에만 가면 장군처럼 커 보였다. 작은 등이 갑자기 나무처럼 길어지고 느리던 걸음이 말처럼 빨라졌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할머니 덕에 나는 나도 모르게 시장 안에서 인기스타가 되어 있었다.

상인 1 :"아, 야가 걔여?"

상인 2 : "그렇게 손녀딸 자랑을 하더니만 진짜 이쁘네에"

상인 3: "아 서울에서 내려왔다던 그 할머니랑 손녀구만"

처음 보는 얼굴들이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오고 오랜 지인들보다 더 살가웠던 표현들은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나 :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개미 같은 목소리였지만 물건을 사고 거스름돈을 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던 말은 그들을 호들갑 떨게 만들기 충분했다. 나는 오랜만에 어깨가 올라감을 느꼈다.

상인 1: "어린애가 예의가 바르네"

상인 2 : "할머니가 키워서 그런가"

상인 3 : "할머니랑 손녀랑 똑같이 생겼네, 아고 이뻐라"

시장 상인들과 할머니 덕에 나는 조금 더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은 어쩌면 여기서부터 나온 것은 아닐까? 아이의 자존감은 선한 어른의 말과 같이 자란다.


물론 그곳에는 언제나 당당한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 : "어디가 날 닮았었어? 내가 그렇게 예뻐?"

"3000원? 왜 이렇게 비싸? 단골인데 좀 깎아줘"

"왜 이렇게 오랜만에 봐, 내 얼굴 보니깐 좋지? 그러니깐 좀 깎아줘"

오만가지 방법으로 할머니는 삼천 원짜리를 이천 원으로 만드는 마술을 부렸다. 그 마술로 난 아이스크림과 과자등을 시장바구니에 들려올 수 있었다. 하나, 지금 생각해 보면 값을 깎던 할머니의 손에 유난히 힘이 들어갔던 순간이 있었던 것 같다. 평소 쑥스러움이 많고 수줍어하던 할머니의 용기가 나에게로 전해졌으리라. 또한 값을 흥정하고 난 뒤 승리의 윙크를 보내던 할머니의 환한 얼굴도 생각이 난다. 전장에서 승리한 장군의 얼굴과 천사의 얼굴이 겹쳐지는 마법 같은 모습말이다.


우리는 시장에서 밀가루를 사고 돼지고기와 양파, 부추, 숙주 등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이 넘는 장을 본 덕분에 추운날씨에도 몸에선 열기가 피어올랐다. 현관문을 열자 차가운 바깥공기와 따스한 집안의 공기가 교차되었다. 뜨거운 바람이 훅 밀려오자 마자 나는 장바구니를 내팽계치고 바로 거실에 쓰러졌다.

"할머니, 나 졸려."

"딱해라 내새끼, 잠깐만 쉬고 있어. 이따 할머니가 밀가루 반죽 주면 밀대로 그냥 슥슥 밀기만 하면되. 알았지?"

"응!!"

할머니 혼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만 소란스러움이 자장가처럼 들리는 나는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잠시 뒤,


곧이어 단단한 갈색 나무 도마 위에 하얀색 밀가루가 뿌려진다. 슥슥슥, 도마에 밀가루 반죽이 묻지 않게 미리 가루 세팅을 하는 것이다. 반죽은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 떼어 두껍지도 얇지도 않게 동그란 모양으로 만두피를 만든다.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시판에서 사는 만두피보다 집에서 만든 만두피는 훨씬 쫄깃하고 맛이 있다. 그렇게 나는 만두피를 할머니는 만두소를 한참 동안 만든다. 우린 서로 말이 없지만 몸에서 나는 소리로 집안이 시끄럽다.

'탁, 탁, 칙, 칙, 퍽, 퍽'

드디어 할머니가 만두소를 네모난 플라스틱 통에 꾹꾹 눌러 담아 가지고 등장한다. 분주한 소리의 입가에 침이 고인다. 익지도 않은 만두소를 수저로 마구 퍼먹고 싶은 욕구가 상승한다.

'아 맛있겠다.. 빨리 먹고 싶다.'

할머니는 만두도 자기 얼굴처럼 동글고 이쁘게 참 잘도 만든다. 언뜻 보면 오리 궁둥이 같은 하얗고 동글게 빚은 만두는 팔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곱다. 아침 아홉 시부터 시작된 만두파티는 저녁 아홉 시가 되어서야 끝난다. 손에서 찜기로 다시 채반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 만두는 열기를 식히고 나눠져서 냉동실로 향한다. 물론 그중에서 8할은 다 내 몫이다. 나는 이 순간만을 위해 만두를 빚었다. 난 다른 사람은 받지 못할 호사를 누린다. 찜기에서 바로 나온 김이 펄펄 나는 만두를 바로 입속으로 가져가는 호사 말이다.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평생 모를 것이다. 하루 열두 시간을 거친 열과 성을 다해 만든 만두가 얼마나 맛있는지,


그날 밤 꿈을 꿨다. 구름빵을 먹은 할머니가 두둥실 하늘 위로 떠오른다. 나는 할머니를 잡으러 손을 뻗는다.

'어디가.. 할머니?'

할머니는 정처 없이 하늘을 날다 오래전 만두를 빚던 옛날집으로 들어간다. 곧이어 은색찜기를 꺼내는 주름진 손이 보인다.

'만두 찌게?'

어린 나와 할머니는 자세를 갖추고 만두를 만들기 시작한다. 입에 침이 고인다.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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