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장례식

'툭' 할아버지의 귀가 닫히는 소리가 나에게만 조용하게 들려왔다.

by 다정한 지혜씨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에게 큰 상실감을 안긴다. 죽음이란 필연적이어서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어떤 이는 죽음으로 향해가는 것이 삶이라고 하지만 이제 마흔 인 난 그것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햇빛을 쬐고 바람을 느끼고 계절이 가는 냄새를 맡는다는 것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것일까? 어쩌면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한 정의는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일 수도 있다. 과연 나는 미래에 어떤 기록을 남기게 될까?


예전엔 죽어서도 내가 쓴 책이 남아 사람들에게 영원히 회자되는 삶을 꿈꿔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모두 사라진 곳에서 계속 어떤 형태로든 살아간다는 게 기괴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를 보면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 진정한 죽음이라고 말하며 저승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진정한 죽음이란 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억 속에서 잊히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나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는 천국의 삶은 과연 평안할까 하는 생각 끝에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도 영화 속 코코의 할아버지처럼 천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제발 그곳에서는 편안하시길 바라겠다. 가끔 할머니에게 요양원에서 남자친구를 사귀라는 농담을 했었다는 건 할아버지께 비밀로 하고 싶다. 이미 위암 말기와 선망증상으로 죽은 듯 숨만 쉬고 계셨던 할아버지는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돌아가셨다. 까맣고 반질반질한 생명이 넘쳤던 피부는 얇은 가죽으로 뒤덮인 채 서서히 딱딱하게 굳어갔다. 혈액순환을 위해 할아버지의 몸을 주무르던 나의 손은 순간 당황했다.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충격이었다. 삶이 죽음으로 변하는 순간은 기묘했다. 말로 표현이 안 되는 유일한 경험이었다. 할아버지의 몸이 굳기 시작할 때 나는 즉시 할아버지의 귀로 다가갔다. 죽기 전 청각이 제일 늦게 닫힌다는 말을 떠올린 것이다. 나는 울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려 애를 썼다.


"할아버지, 이제 아프지 마. 편안히 가도 돼. 고생했어. 아무 걱정하지 마."

'툭' 할아버지의 귀가 닫히는 소리가 나에게만 조용하게 들려왔다. 그렇게 슬프고도 소란스러운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손님이 많았다. 절실한 기족교 신자였던 할머니 덕분이었다. 교회에서 온 장로님과 신자들은 진심으로 할아버지를 애도했다. 그와 동시에 장례식장은 거의 막내 작은 아빠의 회사지인분들로 자리가 채워졌다. 막내 작은 아빠는 IT계열 회사에서 슈퍼컴퓨터를 다루는 일을 하셨고 직급도 높았다. 막내 작은 아빠를 '과장님'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흐뭇하게 웃던 막내작은엄마가 생각난다. 마치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 마냥 초상집에서 잔칫집처럼 들뜬 행동을 하는 걸 보며 난 기가 찼다. 그 순간 오래전 막내작은엄마의 말들이 떠올랐다.


"지혜야, 늦게 늦게 시집가. 아니면 아예 가지 마"

"지혜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서 무슨 냄새 안 나니?"

그 입에서 나왔던 모든 말들은 늙은 시부모를 어린 조카딸에게 맡기는, 본인의 추악함을 옮기는 말이었다. 막내작은엄마의 실체를 알고 나서부터 난 그녀를 무시했다. 일명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흘려듣는 방법으로 그 입에서 나오는 무수한 말들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던 그날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부의금으로 들어왔던 수많은 봉투 때문에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싸움이 터진 것이다. 또, 그놈이 돈 때문이었다. 막내작은엄마는 막내 작은 아빠의 지분을 들먹이면서 돈을 가져가야겠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긴 싸움 끝에 결국 돈은 할머니에게로 돌아갔지만 그일 때문인지 많은 시간이 흐른 후 할머니와 막내작은엄마는 절연했다. 할머니는 전화와 문자로 연락이 닿길 노력했지만 연을 끊고자 마음먹은 사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 이후 더 이상 의무적인 전화도 걸음도 서로 하지 않았다. 난 할아버지, 할머니의 몸에서 나는 모든 향을 좋아했다. 쿰쿰한 이불냄새와 그들의 살결에서 나오는 희미한 숨의 냄새가 얼마나 안정감을 주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냄새가 세분화되어 사랑으로 되돌아온다. 그건 사랑을 해본 사람들만의 특권이다.


이제는 희미해진 할아버지의 냄새를 할머니를 통해 맡는다. 이상하게 할머니를 안고 할머니의 손을 잡으면 할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날이 얼마나 지속될까 두렵다가도 현실을 마주하면 이상하게 안도가 된다. 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를 만나고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장수 막걸리를 샀다. 장수막걸리는 생전 할아버지가 즐겨 마시던 술이었는데 이제는 내 전용주가 되었다. 막걸리를 흔들어 먹는 게 진리인 줄 알았던 나는 할아버지한테서 흔들지 않고 위에 맑은 물만 먹는 것도 제법 달다는 것을 배웠다. 머리에 흰 눈이 내리고 허리가 굽어 이마가 땅에 가까워지는 날이 오면 할아버지를 만나 막걸리나 한잔 마시고 싶다. 아마도 내 잔엔 갈색설탕 한 수저가, 할아버지의 잔에는 소주와 섞인 막걸리가 들어있을 것이다. 그렇게 각자가 좋아하는 것들을 넣어 휘휘 저어 먹고서 할아버지는 흥얼거릴 것이다. 이런 날도 있다며 어린 나와 눈을 맞추며 좋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안주는 할머니가 해주신 닭백숙으로 하는 게 좋겠다. 어린 시절 빨간 장미가 그려진 낡은 은색 쟁반 위에 놓인 굵은소금과 푹 삶아진 닭고기는 정말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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