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혹은 비
2025년 올해로 마흔셋이 된 나는 과거였다면 노총각으로 불리며 애잔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비혼이라는 트렌드가 급부상해서인지 이제는 어딜 가도 왜 결혼 안 했냐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는 편함도 누리게 되었다.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걸까? 사실 결혼에 대한 환상이나 꼭 해야 하는 의무감을 느끼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20대 후반에 만난 여자친구와 잘 되었다면 결혼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에는 30대 초반이 되면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는 분위기였던 터라 나도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에 녹아들어 결혼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마침 예상치 못한 퇴사를 결심하며 살얼음판 위로 제 발로 걸어 나와 맨 발로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살다 보니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 긴 시간 동안 결혼은 나에게서 점점 희미해져 가는 단어가 되었다. 또 마침 고등학교 친구들이 결혼을 늦게 한 것도 결혼에 대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는 이유도 되었고, 사업을 하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친구는 먼저 비혼을 선언하기도 했다.
나는 딱히 비혼주의자도 아닌 미혼인 상태지만 우스갯소리로 미혼보다는 비혼이 뭔가 더 있어 보이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에 비혼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끔 주변에서 부족한 상태에서 서로 만나서 하나씩 채워가는 게 결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 성격상 그게 불가능하다. 나는 나에 대한 기준이 되게 엄격한 사람이다 보니, 적어도 결혼에 있어서만큼은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인데 현실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만 가지고 결혼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만약 내가 회사를 나오지 않고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결혼을 했을 수도 있지만, 이미 운명의 갈림길에서 나는 스스로 힘든 길을 선택해 버린 케이스인데 이 고통을 배우자와 함께 나누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조건이 좋은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는 거? 그것도 내 성격이랑은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 와이프를 통해서 강남에서 꽤나 재력가인 연상의 누님을 소개받은 적이 있는데, 나가기 싫은데도 인생 역전의 기회니 제발 한 번만 나가보라고 사정을 해서 나갔는데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사랑의 감정이 들지 않으면 시작이 불가능했다. 내가 경제적 기반이 잡혀 있어야 하고, 내 마음에 드는 여자랑 결혼을 해야 하는 조건이 어찌 보면 기본적인 것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까다로운 조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결혼보다 내가 어떤 일을 잘하고 그걸로 어떻게 사회에서 자리를 잡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앞서있었기 때문에 결혼은 그냥 이번 생애 없는 걸로 하기로 했다.
누군가 결혼에 대해 묻는다면,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처자식을 먹여 살릴 자신이 없으면 열심히 혼자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게 맞지 않을까? 물론 날 닮은 아이를 갖고 싶은 욕심도 없는 편이고, 결혼을 한 친구들의 생활을 보면 불행해 보이지도 않지만 딱히 엄청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날 세상에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은 정말 대단하고 고마운 은인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살다가 명이 다하여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모든 게 끝이지만 그래도 매년 날 찾아 올 가족이 없을 거라는 사실에 살짝 서글프다는 생각과 인간의 삶,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쯤 다시 깊게 생각해 보게 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처럼, 각 개인이 선택한 삶이 존재하고 그 삶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다시 새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을 키워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혼자 살아가는 누군가는 외로움을 이겨내며, 자신이 선택한 답안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살아간다. 다만, 요즘 미디어에서 결혼에 대한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상황들이 사람들의 도파민을 자극하고, 그것이 몇 해가 흘러가다 보니 결혼과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뇌 안에 스며들게 된 듯하다. 그래서 비혼주의라고 하는 트렌드가 더욱더 사회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버렸다. 물론 나는 그런 영향을 받아 비혼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결국 대한민국에 닥친 출생률 저하 문제는 초고령화 사회의 진입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어색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공복 운동을 하고, 수업 자료를 만들고,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책을 읽다가 이렇게 나의 생각들을 정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를 보냈다. 내일도 오늘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보통의 하루를 보내면서 살아 있음에 감사한 마음과 익숙 해지려해도 익숙 해 지지 않는 외로움이란 녀석을 느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