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출제위원 경비 아르바이트 경험
퇴사 후 이것저것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나는 우연히 수능출제위원 경비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게 되었다. 단역 배우 밴드에 올라온 공고였는데 아무래도 단역 배우나 보조출연을 하는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고 있는데, 여러 촬영 관련 구인 관련 밴드에 생뚱맞은 내용의 아르바이트 구인 공고가 올라왔다. 수능 출제 위원들이 수능 문제를 출제하는 동안 내외부 경비를 하는 업무였고, 속초에 있는 한 리조트에 머물면서 한 달 동안 생활해야 했다. 어차피 짧게 짧게 아르바이트를 할 바에 딱 한 달 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지원을 했고, 내 이력을 본 그 업체는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며 당장 같이 하자고 했다. 그냥 회사를 다녀봐서 좋아하는 건가 했는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칼바람이 부는 10월, 검은색 정장을 챙겨 들고 옹기종기 모여 버스를 타고 속초로 향했다. 속초에 있는 한 리조트를 빌려서 내부와 외부를 철저히 분리하고, 출제위원들이 입소를 하게 되면 외부와 철저히 차단하고 혹시 모를 부정행위들이 있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내부에서 경비업무를 하는 인원이 있고, 나처럼 외부 초소에서 근무를 하는 인원으로 나뉘게 된다. 경비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삼엄했다. 음식물이 내부로 들어가고 음식물 쓰레기가 밖으로 나오면 그 음식물 쓰레기 안까지 고무장갑을 끼고 뒤적이면서 혹시 모를 쪽지 같은 게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나한테 그 일을 시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데, 나처럼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한 사람도 있고, 잠시 와이프로부터 해방돼서 한 달 동안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온 유부남 형님도 계셨고, 휴학생, 배우 지망생 등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이 안에서도 나름 재미있는 일이 많았는데 우선 그 많은 사람들 중에는 대장 역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나머지 대다수는 그냥 돈을 벌기 위해 온 것이기 때문에 굳이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하거나, 완장을 차고 싶은 욕심조차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었다. 단체로 모여서 그곳에서의 일인자의 설교를 듣는데, 경비업체 선정 권한을 갖고 총책임을 맡은 기관의 책임자였다. 그곳에서 그 사람의 권력은 대통령 그 자체였다. 우리가 꼰대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그런 인물이었고,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비업체 직원들이 항시 비서처럼 따라붙으며 비위를 맞춰주었다. 나는 꼰대를 굉장히 싫어하긴 하지만 꼰대들이 뭘 좋아하는지는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그 일인자가 첫 설교를 할 때 초롱초롱한 눈으로 아이컨텍을 하면서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도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 앞에 섰을 때 내 말에 경청해 주는 태도를 보여주는 병사가 더 예뻐 보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첫인상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유지되고 특히 꼰대들은 처음에 자기가 찍은 인물은 끝까지 밀어주는 생각보다 단순한 성향도 있기 때문에 첫인상을 완벽하게 그 사람 마음에 들도록 애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봐주었다. 효과는 확실했고, 이 한 번의 선택으로 앞으로 남은 한 달간의 생활에서 나는 엄청난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가령 초소 근무를 할 때, 굳이 칼바람을 맞아가며 밖에 있을 것이 아니라 초소 내부에 있다가 차량이 진입하면 그때 나가서 확인을 해도 되는 이 단순하고 당연한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는 인물이 나타났다. 그렇게 함으로써 업체 직원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걸까?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고, 그 사람이 그런 발언을 함으로써 경비업체 대표는 밖에서 서 있는 게 FM이니까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다. 속에서 열불이 나지만 거기서 굳이 대립을 할 필요는 없었기에 일단 알았다고 하고 나는 그냥 안에 앉아서 근무를 했다. 그 일인자가 리조트를 나가면 무전이 오는데, 리조트 정문에서 입구 초소까지 걸어오는데 거의 300미터가량 거리가 되기 때문에 꽤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입구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면 초소 근무자가 가서 문을 열어주는데, 나는 그 사람이 올 때쯤 미리 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목소리가 들릴 때쯤 그가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러면 그 일인자는 "야~역시 장교출신이라 일하는 게 달라"라고 나를 칭찬해 주었고, 나는 그 타이밍에 "대표님~초소 근무 설 때 굳이 밖에서 안 서있고, 초소 내부에 앉아있다가 차량이 다가오면 그때 나가서 확인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대표는 "어~그렇게 해"라고 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업체 대표는 자기가 지시한 내용과 대치되는 걸 그 일인자가 허락해 버려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덕에 다른 사람들은 초소 안에서 히터를 쬐면서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의견을 냈던 남자는 그 이후로 나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느 무리에나 꼭 나대는 사람들이 있듯, 거기서도 대장질을 하고 싶은 누군가가 굳이 30분 전에 도착해서 업무 준비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나는 도통 그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어쨌건 그의 그런 행동은 경비업체 대표로서는 싫을 게 없기 때문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런 걸 그냥 넘어가는 성격은 아니었다. "왜 굳이 30분 전에 와서 준비를 해야 되는데요? 5분 전에만 와도 장비 챙기고 바로 초소 들어가면 되는데 굳이 25분 더 일찍 와서 뭐 하게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사람은 "아니, 오늘 어떻게 할지 얘기도 나누고 초소 들어가기 전에 마음가짐도 되새기면 좋지"라는 이해되지 않는 말을 했다. "마음가짐요? 그냥 경비 업무하는데 무슨 마음가짐을 새겨요. 솔직히 점심시간도 1시간 보장 안되고 밥 먹고 바로 투입되는 것도 이해 안 되는데, 출근시간을 왜 마음대로 정하세요? 전 그냥 5분 전에 올게요." 그 남자와 업체 대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반박을 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좀 막무가내로 할 말 다 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 일인자가 나를 좋게 보고 있어서도 있지만, 내가 장교 출신이라는 점이 그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차량 진입을 막고 확인하는 일종의 경비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자격증이 필요했다. 즉, 정문 초소에 근무하는 사람 2명 중 한 명은 그 자격증이 필요한데 아르바이트생 중 그게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경비업체 직원들은 초소 근무를 서지 않고 리조트 로비에서 행정실 업무만 했기 때문에 그 자격을 갖춘 사람이 필요한 상황인데, 장교 출신은 그 자격증을 따지 않아도 지급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혹시 모를 검열이 나왔을 때 내가 정문 초소에 있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을의 입장이지만 오히려 갑의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그렇게 총대 메고 나서 주니 나머지 사람들은 나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도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생략하고, 어찌어찌 한 달간의 경비 아르바이트를 마쳤는데 기가 막힌 사건이 하나 터졌다. 애초에 200만 원인가 250만 원 고정급을 받기로 해서 당연히 주말에는 쉬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단 하루도 쉬지 않고 30일 꽉 채워서 식사 시간 포함 12시간을 일을 했다. 즉 최저 시급으로 계산을 해도 말이 안 되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 업체를 소개해줬던 그 밴드 관리자 여성에게 문자를 넣었다. 최저 시급에 맞춰서 부족분에 대해 금액을 더 달라는 요구는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는데, 그 여자의 태도가 가관이었다. 무시하는 말투부터 사회생활을 모르네 마네 하길래 서로 언성이 높아지다가 나도 거칠게 내뱉었고, 나는 법적으로 알아서 받을 테니 끊으라고 전했다.
그러고 나서 업체 담당자한테 전화가 왔다. 자기들도 더 챙겨주고 싶은데 참 안타깝다면서, 알고 보니 그 여자는 그 경비업체 대표의 세컨드인데 일부러 그 경비업체에서 직접 인력을 구해도 되는걸 굳이 중간에 에이전시 형태로 회사를 하나 차리고 그쪽에 일을 주는 식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 자기들도 그 부분이 불만이지만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뭐 그런 사정은 이해하지만, 나는 내 노동력에 대해 법적으로 보장된 최소 금액은 받아야겠다고 전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그 회사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랑 통화 후 그 여자가 울고 불고 난리였다는 둥 굳이 알지 않아도 될 부분을 말하면서 이해해 달라고 했다. "지금 그 비용 국가 세금으로 나가는 거고, 기재부에서 결제받고 진행하는 거죠? 그러면 그 부처에서 최저임금법 무시하고 진행하라고 했다는 거네요? 그러면 그쪽이랑 더 이상 할 얘기 없습니다. 기재부에 메일 넣어서 해당 내용 확인하겠습니다" 그 순간 대표는 아차 싶었던지 원하는 금액을 말하라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최저시급 기준 계산한 금액보다 부족한 금액만 받으려고 했는데, 그 이상 금액을 불러서 합의금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렇게 합의는 끝날 것 같았으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하면서 친해진 몇 명과 단톡방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해당 내용 말하면서 "너네들도 청구해"라고 톡을 남겼다. 그 톡을 보자마자 "오 땡큐" "대박"을 남기면서 그들도 그 업체에 내가 말한 금액 자기들도 달라고 말을 했고, 나와 그들 모두 똑같은 금액을 받을 수 있었다.
애초에 원만하게 해결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 여자의 그 거만한 태도가 결국 이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건 번외지만, 그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는데, 수능출제위원들이 머무는 그 공간은 외부와 철저히 차단되었기 때문에 은밀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는 얘기였다. 불륜의 장소로는 완벽한 공간이랄까. 나중에 퇴소 후 청소를 할 때 정액이 묻은 수건이 침대 밑에서 나온다던가 콘돔이 나온다던가 하는 얘기를 듣고, 내가 모르는 비밀스러운 세계를 알게 된 느낌이었다. 내 눈으로 현장을 본 것은 아니기에 확언할 수 없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그런 일도 충분히 생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밤 수백 명분의 야식들이 배달이 되는데, 저 야식 업체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리베이트라는 게 없을 수 없는데라는 의심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늦은 밤 봉고차에서 양주부터 다양한 선물세트들을 누군가의 방으로 빠르게 옮기는 모습을 목격했다. 세상에는 우리가 모를 뿐이지 이런 현상들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한 부분이긴 하다.
칼바람을 맞으며 하루 12시간씩 초소 근무를 서며 고생을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도 좋은 경험이자 추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