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엄마
예전에 잠시 과외를 할 때 어떤 어머니가 첫 상담 때 "우리 애가 장애끼가 좀 있어서 처음에 좀 힘드실 수 있어요"라고 했다.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장애끼라는 표현은 태어나서 처음 들었기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무슨 말이지 싶었다. 아이를 첫 대면하고 무슨 의미로 저 말을 한 건지 단번에 이해가 되긴 했지만 그걸 장애끼로 표현한다는 게 엄마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가 싶었다.
그 아파트는 복층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아이의 방은 복층에 있었다. 좁은 복층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아이는 등을 돌린 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아이 이름을 불렀지만 미동도 하지 않고 계속 뭔가를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세 번 정도 이름을 불렀는데도 미동도 않자 단전에서부터 열이 확 올랐지만, 이를 꽉 깨물고 중저음 톤으로 "야"라고 말했다. 순간 아이는 움찍 해서 살짝 돌아보며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했다. "너 지금 내가 부른 거 못 들었어? 등 돌리고 여기로 와서 앉아"라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중에서도 체구가 많이 왜소한 그 아이는 입술을 쭉 내밀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내 앞으로 와 앉았다. 그리고 한 10분간 정신교육을 시켰다. 그동안 거쳐간 과외 선생님들은 사랑과 따뜻함이 넘치는 말로 어르고 달랬는데,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아이들은 초반 기선 제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 성격이 그런 걸 그냥 넘어가는 성격이 아닌 게 가장 컸다.
그리고 그 아이와 몇 개월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공부할 마음이 없는 학생들은 열심히 수업을 해줘도 어차피 듣지도 않기 때문에 빠르게 이 학생의 관심사가 뭔지 찾아내서 수업 중간에 그런 이야기들을 열심히 들어주고 재밌게 떠들어줘야 한다. 그러면 그 어느 때 보다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난다. 통상 남학생들은 게임 이야기를 하면 눈이 반짝이고, 내가 그 게임을 하고 있고 생각보다 높은 티어일 때 의외의 반응과 더불어 존경의 태도로 바뀐다. 여학생들은 화장이나 연예인 이야기를 하면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진다. 근데 이 학생은 관심사라기보다 학교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것, 이 아이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어느 날 수업을 하다가 그 학생이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선생님 저격총 하나만 구해주실 수 있어요?"
"그건 구해서 뭐 하게?"
"우리 반에 마음에 안 드는 애가 있는데 집에서 저격해서 쏘게요"
사람에 따라서는 당황할 수 있는 발언이지만,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거 되게 커서 너 들고 쏘지도 못해"
"그럼... 권총으로 구해주세요"
"너 권총도 생각보다 무거운 거 모르지? 그리고 그거 표적 맞추기 엄청 힘들어"
"..."
뭔가 자기가 의도한 바로 대화가 흘러가지 않자 뾰로통한 표정을 짓길래, 그 아이가 왜 마음에 안 드냐고 물어봤다.
"아니 맨날 저보고 작다고 놀리잖아요"
"그래? 근데 네가 작은 건 사실이고, 그걸로 놀린다고 왜 화가 나?"
".. 네? 당연히 화나죠"
"그래? 고작 그런 걸로 사람 만만하게 보는 애 말에 신경 쓰여? 난 그런 애들 사람 취급도 안 해서... 그냥 불쌍하던데? 사람이 키가 크고 작은 걸로 그 가치가 평가될 수 있는 거야? 키 작은 걸 네가 콤플렉스로 생각하니까 그 말에 화가 나는 거겠지. 너만 그렇게 생각 안 하면 되지 않나?"
"... 그래도..."
아무래도 체구가 작다 보니 짓궂게 놀리는 친구가 있었던 듯하다. 근데 얘기를 들어보면 일진 무리들이 괴롭히듯 괴롭히는 건 아니고, 저 나이 때 아이들이 친구들 놀리는 수준 정도였던 듯싶었다. 다만 이 아이는 그런 장난이 굉장히 큰 상처로 남았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또래 친구들과도 잘 못 어울리는 성격이었다. 같이 노는 친구가 한 명 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여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어머니가 그 여동생을 엄청 편애하다 보니 집에서도 늘 주눅 들어 있고 학교에서도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어머니는 이 아이가 성격적으로 장애가 좀 있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걸 장애 끼라고 표현한 건 다시 생각해도 큰 충격이다.
이 학생과는 수업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면서 굉장히 친해졌고, 이 아이가 갑자기 이전과 다른 기운을 뿜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우리는 복층에서 수업을 하고 여동생은 거실에서 과외를 했는데 가끔 시간이 겹칠 때가 있었다.
"선생님... 제 여동생 선생님이 우리 수업할 때 목소리 좀 낮춰달래요"
"어? 누가 그래? 저 선생님이?"
"네, 아까 여동생이 저한테 와서 말하고 갔어요"
순간 이건 뭐지? 싶었다. 사실 그런 격한 표현을 쓰면 안 되긴 하지만 나는 들으란 듯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뭐? 조용해 달라고? 그럼 지가 와서 말하던가 뭔 니 여동생을 시켜서 말을 전하고 있어 XXX 없이! 그리고 네가 오빠 아니야? 그럼 네 수업이 우선이지 동생 수업이 우선이야? 정 시끄러우면 직접 와서 말하라고 해! 알았어?"
이 말을 듣는 그 학생은 뭐랄까 완벽하게 자신을 지켜줄 기사를 만난 것 같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당차게 "네"라고 대답했다. 이게 이 학생의 자신감을 그렇게 끌어올려 줄 준 몰랐는데 나중에 어머니랑 상담하면서 그런 말을 들었다.
"선생님~저번에 우리 딸 수업 관련해서 큰 소리 났다고 해서요~"
"아~네네. 저희가 엄청 시끄럽게 수업하는 것도 아닌데 그 선생님이 따님 시켜서 조용해 달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정 시끄러우면 직접 와서 말하라고 했습니다"
"아~그러시구나.(호호) 근데 선생님, 선생님이 우리 아들 너무 기를 세워놔서 요즘 애가 난리도 아니에요"
"네? 어떤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얘가 요즘 기가 살아서 막 아래층에 내려와서 뛰어다니고 막 동생도 괴롭히고 그래요"
"활발해지면 좋은 거죠. 이전에는 많이 위축되어 있었는데 그렇게 활발해지면 좋은 거 아닌가요?(하하)"
"아~그렇긴 한데 그래도 너무 막 기 세워주고 그러진 마세요"
통상 의기소침하던 아이가 활발해지면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 게 부모 마음 일건대 희한하다 싶었다. 늘 이 아이는 복층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고 외부인처럼 존재감 없이 살고 있었는데 그 존재감이 느껴지는 게 싫었던 걸까? 계모가 아닌가 의심이 드는 부분이었다. 왜냐면 딸은 엄마와 정말 붕어빵처럼 닮았고, 아들은 아버지를 닮았는지 전혀 어머니와는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어쩄건 상담은 잘 마치고 어머니의 의사는 전혀 반영하지 않고 이전보다 더 열심히 아이의 기를 세워줬다.
그래서 원래 내가 맡은 과목은 영어였지만, 전 과목 성적을 올려줘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 과목 교과서를 들고 오게 했다. 워낙 하위권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잡아주면 평균 성적은 확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 과목 예상 문제를 체크해 주고 딱 그것만 공부하라고 시켰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평균 60점대 성적인 그 학생은 전 과목 평균 83점을 기록했다. 평균 80점이 넘으면 게임 머니를 충전해 준다고 어머니가 약속했던 터라 그 어느 때보다 들떠있던 아이였는데 어머니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지 물어봤는데 대답이 가관이었다.
"아니 선생님, 솔직히 90점도 아니고 83점이 높은 점수는 아니잖아요. 그걸 빌미로 게임하게 놔두면 언제 성적이 오르겠어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평균 20점 정도를 올리고도 그런 대접을 받으니 이 학생이 그동안 집안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을지가 눈에 훤했다. 어머니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급 우울 모드에 돌입했다. 내 돈으로 충전해 주고 싶었지만 그건 자칫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 같아서 참았다. 어느 날엔 좀 예의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해서 그렇게 할 거면 수업은 그만하자라고 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래도 제 말 들어주는 사람은 선생님 밖에 없잖아요"라고 말을 해서 가슴을 철렁 이게 했다. 보람과 안쓰러움과 그 밖의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좀 더 사랑받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이 아이의 마음의 상처도 생기기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쯤 20대 중반의 성인이 되었을 텐데 부디 긍정적이고 활발한 성격으로 성장했길 바라는 마음이다.
과외를 하면서 여러 학생들을 만나면서 재미난 에피소드들도 많은데, 첫 상담 때 들었던 장애끼라는 그 단어는 아직도 나에게는 꽤나 큰 충격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