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이야기
토끼(卯)
토끼는 부드럽고 예의 바른 존재로, 민감한 감수성과 조심성의 상징이다. 인간으로 치면 섬세하고 배려심 많지만, 내면에는 자신만의 계산과 방어기제가 발달해 있다. 겉보기와는 달리 은근히 자신의 우위를 의식하는 성향도 가진다.
약육강식의 세계
마이너리그에서 고군분투하며 서로를 독려할 것처럼 보이지만
예쁜 토끼 눈을 하고 철저하게 자기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거나, 얕보는 사람들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메이저가 되고 싶은 마이너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나의 연기 생활.
스스로 내 재능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 따윈 없었다. '나도 이런 일을 할 수 있구나' 정도의 경험에 대한 만족과 돈을 벌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보여지는 묘한 기운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마이너 중의 마이너가 모인 그곳에서 그들 스스로 메이저와 마이너를 나누는 모습이 실로 기괴하게 보였다.
<보조출연 첫 경험>
회사를 나온 뒤 투잡, 쓰리잡을 하며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던 나는 우연히 보조출연 구인광고를 보게 되었다. 고정적인 일도 아니고 나이 제한도 있지 않으니 그냥 하루 일당을 벌고 오기에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지원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38사 기동대'라는 드라마 촬영 현장에 투입되었다. 정장을 입고 여의도 역 앞에 모여 봉고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낯선 사람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조용히 한 시간 정도를 이동하여 현장에 도착했다. 그곳엔 반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현장에는 나처럼 조용히 구석에서 대기하는 그룹과, 이전에 여러 번 봤던 사람들끼리 수다를 떠는 그룹, 반장이라고 하는 사람들 주변에서 그들의 비위를 맞춰 주고 있는 그룹으로 나뉘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각자의 역할을 부여해 주는데 갑자기 반장이 나를 불렀다.
"어이, 거기 이리 와봐. 처음이야?"
초면이지만 말을 놓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그였다. 그는 잠깐 주변을 이리저리 훑더니 나를 어떤 위치에 배치시켰다. 그 순간 반장 주변에 몰려있던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뭐지 이 시선은? 기분 탓인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보조출연자들이 반장 옆에 붙어서 비위를 맞추고 있는 이유는 이후에도 계속 자기를 불러달라는 의미이자 이번 촬영에서 자기 얼굴이 화면에 나오게 좋은 역할을 달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처음 본 사람인 나를 화면에 얼굴이 나오는 역할에 배치하니 그런 눈빛으로 봤던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아르바이트한다는 생각으로 왔고, 화면에 나오고 싶지도 않았다. 괜히 방송에 얼굴 비쳐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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