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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가스라이팅 그만하세요(3화)

호랑이 이야기

by 준비

계약한 60일의 절반을 넘기고 있을 때였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분들이 고맙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지만 대표는 그런 칭찬했다는 말을 나에게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모든 건 홍실장의 입을 통해 들었을 뿐이다. 대표의 최초 계획인 인터뷰로 전체 분량을 채운다는 허황된 목표는 역시나 이룰 수 없는 상태였고, 결국 시키지도 않았지만 홀로 기획기사 100페이지 분량을 준비해 놓은 덕에 간신히 마감일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른 해치우고 다시는 엮이지 말아야지"


오직 결과로만 증명하겠다는 내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잡지는 완성되었어야 했고, 이 사람과는 절대 같이 일을 하면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바로 그날 있었던 일 때문이다. 이 일을 시작할 때, 인터뷰이 소개를 받기 위해 대표와 홍실장, 그리고 나는 모 사단법인 총장 사무실을 찾아가 인사를 나눴었다. 어차피 실무는 총장이 직접 할게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부장이 하기 때문에 나는 며칠 뒤 업무 요청 메일을 보냈었다. 그리고 그쪽에서는 구체적인 기획안을 작성해서 보내줘야 한다고 해서 그 또한 보내주었고 인터뷰이 소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니, 이 국장님 일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이게 뭡니까"


다짜고짜 나한테 짜증을 내는 부장이었다. 내가 자기 아랫사람도 아니고 뭐하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두 노인네 사이에 끼어서 한 소리 들었던 모양이다. 우리 대표는 그쪽 사단법인 회장한테 받을 축사 언제 줄 수 있냐고 총장한테 말했고, 총장은 부장한테 왜 아직까지 못 받았냐고 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부장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얘기를 가지고 자기한테 역정을 내니 그 화살을 괜한 화풀이를 한 것이다.


"회장님 축사요? 전 처음 듣는 얘긴데요? 저한테 아무 말씀 않고 두 분이서 결정하신 것 같은데요?"


일단은 내 책임도 아니니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 전했지만, 부장은 화가 안 풀렸는지 총괄하는 편집국장이 그걸 모르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했고, 그 사람 입장도 이해는 되는 부분이라 그냥 죄송하다고 하고 일단락 지었다. 그리고 부장이 요청한 기획안과 자료는 새로 만들어서 바로 보내줬다. 수신 완료 문자까지 별도로 보냈지만 일주일간 메일은 읽지 않음 상태였다.



야, 내일 사무실 좀 들어와

저녁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걸려온 전화, 대표는 그렇게 말을 하고 끊었다. 저런 말투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익숙해지지가 않는 건 왜일까. 비가 오는 목요일 아침 우중충한 날씨에 맞는 우중충한 기분으로 사무실을 갔다. 대표와 독사가 같이 들어왔고, 잡지 진행 상황에 대해 물었다. 지금까지 진행한 인터뷰 기사는 다 마무리했고, 기획기사도 계속해서 작성 중이라고 하니 왜 그딴 걸 하냐고 따져 묻는 대표였다.


"인터뷰 기사로만 150페이지 다 못 채우는데 그럼 분량 포기하고 인터뷰로만 채울까요?"


대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너 알아서 하라고 하고 화제를 돌렸다. 대표는 턱에 힘이 없는지 모든 발음이 새고, 완벽한 문장을 구사해서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늘 곤욕이다. 지금 인터뷰 진행하려고 하는 모 국회의원이 있는데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타이밍을 재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마치 배려하듯 나보고 일정에 너무 쫓기지 말고 여유롭게 작업하라고 했다. 내 계약일은 5월 말이고 대선은 6월이었으니 사실상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었다.


(아...이 인간이 배려해 주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계약기간 끝나고도 일해주길 바라나보네)

불현듯 스쳐간 이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서 슬쩍 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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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내 인생의 일부지 전부가 될 수 없어!! 준비도 없이 뛰쳐 나온 후 12년째 비정규직의 삶을 살아가는 40대 아저씨의 파란만장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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