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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가스라이팅 그만하세요 (2화)

호랑이 이야기

by 준비

<신사의 품격>


이래저래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인터뷰 후에 좋았다는 평도 들려오니 바쁜 일정 속에서도 꽤나 보람을 느끼는 중이었다.

어느 날, 대표는 갈 곳이 있다며 나와 홍실장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 가량 떨어진 경기도 어느 마을에 도착해 대표는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소개해줬다. 한창 기사를 쓰기에도 바쁜 시기에 이런 쓸데없는 소개에 나를 데리고 간 것이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150페이지나 되는 잡지를 혼자 다 해내야 하는 상황에 마감일까지 인터뷰 진행부터 기획기사, 삽화, 레이아웃 등을 다 끝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던 터라 예민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대표는 그런 나의 업무 강도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 자꾸 불필요한 일정에 나를 대동시키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오후 3시쯤, 또다시 그 지역의 높으신 분을 만나러 이동했다.

그 차 안에서 나는 향후 인터뷰 진행 예정인 분들 리스트를 알려 달라고 했다. 분명 대표는 기획기사 같은 건 필요 없으니 인터뷰로만 채울 것이고, 그냥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한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했다.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인터뷰 한 사람은 고작 5명이었고,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한 명당 6페이지를 할당하면 30페이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120페이지는? 순수하게 인터뷰만으로 채운다고 한다면 20명은 섭외가 끝나야 하고, 마감까지 한 달이 남은 상태에서 주말 포함 날마다 한 명씩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인데 당장 내일 인터뷰할 대상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으니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대표님, 혹시 그다음 인터뷰는 어떤 분으로 진행하실 건가요? 인터뷰만으로 기사 채울 수 없을 것 같은데 혹시 분량 변화나 기획기사로 대체하실 생각이신지요?"


홍실장과, 운전 중인 친구의 눈길은 조심스레 대표를 향했다.

대표는 마른기침을 하며, 기가 차다는 듯 내뱉었다.


"이건 뭐 일을 네가 하는 건지 내가 하는건지...하긴 너 같은 짜바리가 연락하면 그 사람들이 만나주기나 하겠냐. 하나하나 내가 다 해줘야 하는구먼. 알았으니까 기다려"


안하무인격인 저 태도와 말투에 열이 받았지만 꾹 참고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물었다. 이런 모습을 홍실장과 친구도 봤으니 대표도 못 봤을 리 없었다. 그리곤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대표였다.


"어~이 회장 잘 지내지? 거~인터뷰 하나만 해! 아~뭐 별건 없고 그냥 인터뷰만 하면 돼"


"아 네 대표님~근데 인터뷰가 어떤 내용인가요? 저희 단체랑 연결 지을 게 없어 보이는데요"


대표는 항상 전화를 스피커 폰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대화 내용을 다 엿들을 수 있었다. 자기가 이런 사람들이랑 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임을 모를 리 없는 나였다. 무작정 인터뷰를 해달라고 하니 상대방이 저런 말을 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했다.


"아~됐고, 그냥 몇 마디만 해주면 돼. 질문 리스트는 편집국장이 보내줄 거야"


"하하하, 아는데 그래도 뭔가 저희랑 관련이 있는 거여야 뭐라도 말을 하지 않을까요. 다른 분을 소개해 드릴까요?"


"별거 아니니까 그냥 몇 마디 말이나 하면 된다니까 그러네. 아무튼 하는 걸로 알게. 편집국장이 연락할 거야"


정말 이런 사람 아래에서 일을 한다는 게 수치스러울 정도의 통화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인터뷰 요청이 이런 식이니 늘 현장에 도착하면 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었고, 그 부분을 해결할 것도 결국 나의 몫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고 대표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나는 차에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강하게 내뱉었다.


"전 이번 프로젝트만 하고 다음엔 같이 안 할 겁니다. 확실히 결정했어요. 저 인간이랑은 같이 일 못할 것 같아요. 돈 몇 백 더 준다고 해도 관심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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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내 인생의 일부지 전부가 될 수 없어!! 준비도 없이 뛰쳐 나온 후 12년째 비정규직의 삶을 살아가는 40대 아저씨의 파란만장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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