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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가스라이팅 그만하세요 (1화)

호랑이 이야기

by 준비

*이번에 다룰 인물은 이 책에서 다룰 12인 중 가장 혐오하는 인물이자,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기 쉬운듯 보기 힘든 기묘한 유형의 인물이다.


호랑이(寅)

호랑이는 강인함과 카리스마의 상징이다. 주도적이고 권위적이며, 때로는 충동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인간으로 치면 리더십이 강하고, 주장을 굽히지 않는 강경한 성격. 그러나 그 권위는 누군가에겐 억압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런 유형의 인물은 자신이 가진 힘, 권력을 이용해 아랫사람을 찍어 누르며 통제하며,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에 이용한다. 그들은 끊임없는 가스라이팅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두려 한다.



꼰대에도 급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도,

아랫사람을 키워주고 싶어 하는 리더가 있는 반면에

철저하게 아랫사람을 이용만 하고 내다 버리는,

존중받지 못하는 삶을 사는 리더도 있다.



<갑작스러운 제안>

2025년 3월, 공채시즌이 다가오면서 슬슬 열심히 일 할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준비야, 너 혹시 기자 업무 해 볼 생각 있어?"

"응?기자?갑자기?"

"아~별건 아니고 가서 인터뷰만 하고 그거 기사로만 써주면 되는 일이야"

"글쎄, 그거라면 어렵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기자 일을 할 수 있으려나?"


예전에 국회에서 잠깐 같이 일했던 친구로부터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았다. 자기 사무실에 있는 이사장이 잡지를 출간하는데, 계간지 형태로 1년에 4번만 만든다고 한다. 교육기관에 배포될 거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기사로 써서 잡지를 만드는 일이며, 인터뷰 대상이랑 일정은 다 그쪽에서 잡아줄 거라 가서 인터뷰 진행과 원고 작성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10년 전에는 월간지로 진행했었는데 10년 만에 다시 하는 거라 그건 무리일 것 같고 일단은 계간지 형태로 간다는 것이었다. 통상 기자를 섭외해서 진행하는 게 맞는데, 하기로 했던 기자가 갑자기 못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이사장이 혹시 주변에 추천할 만한 사람 있냐고 물어서 나를 추천했다고 한다.


해보진 않았지만, 늘 새로운 기회라는 게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른다는 마인드로 사는 내 입장에서도 하고 싶은 마음 반과 어설프게 시작하지 말자는 마음 반이었다. 그리고 곧 공채 시즌이 되면 바빠질 텐데 괜찮을지도 걱정이었다. 다만, 기자 업무라는 게 사무실에 출퇴근하는 게 아니어서 약간 긍정적인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친구에게 전화해하겠다고 했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새로운 경험인데, 해보지 뭐"


<악연의 첫 시작>

우선은 이사장(대표)과 면담은 해야 하니 국회의사당 부근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엔 굉장히 힘없이 쳐진 얼굴에 게슴츠레한 눈을 한 영감 한 명이 앉아있었다. 나이보다도 훨씬 늙어 보이는 외모였다. 명문대를 졸업했다고 해서 엘리트다운 기본 예의는 있을 줄 알았지만, 내가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도 상스러운 태도에 살짝 놀랐다. 그는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더니 내가 건넨 이력서를 한 번 쭉 읽고는 책상 위에 툭 던졌다. 회사는 왜 그만뒀는지, 정치적인 성향은 어떤지 글은 잘 쓰는지 이런 것들을 물어보고 나서 자신에게 궁금한 거 있냐고 물었다.


"우선은 제가 어떤 방향으로 잡지를 기획해야 할지 알려주시면 기획안 작성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일단 나에 대한 검증은 필요할 테니 기획안으로 보여주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딴 건 필요 없고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그래, 저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만뒀어야 했다. 앞으로 펼쳐질 드라마틱한 일들을 알리는 암시였다는 걸 왜 그때는 깨닫지 못했을까. 우선은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고 하니 알아서 잘 시키겠지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같이 일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방 문을 나서면서 그가 말했다.


"기자 일도 안 해본 너 같은 짜바리, 다 쟤 봐서 써주는 거야. 잘해야 돼. 밥 먹으러 가자"


내 친구가 일을 워낙 잘해서 그의 신임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 친구를 믿고 써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초면에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니 혈압이 살짝 오르긴 했지만, 이미 친구 소개로 온 이상 친구의 입장도 있을 테니 내 성격은 최대한 죽이고 고분고분한 순한 강아지처럼 연기하고 있는 나였다. 사무실 앞에 위치한 식당에 가서 오징어 볶음을 먹으며 연신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순간순간 나를 관찰하고 있는 그를 관찰하는 나였다.


"나는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야. 괜히 뒤통수 칠 생각 같은 건 하지 마라"


그는 뜬금없는 한 마디를 훅 던지며 째진 눈으로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제가 뒤통수 칠게 있나요. 하하"


친구 말에 의하면 주변에 사기꾼들이 이리저리 꼬이다 보니 사람을 잘 못 믿는다고 했다.

이사장은 특별한 직업이랄 게 없는 사람이었다. 무슨 단체의 이사장, 위원장 이런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월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은 소위 말하는 브로커였다. 국회위원부터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과 인맥이 닿아있었고, 결국 그 인맥이 업체들을 소개해 줄 수 있는 힘이 되고, 그 힘은 업체로부터 한몫을 챙기는 원천이었다. 사회생활은 인맥이다라는 말의 표본이라고 할까? 그래서 이 잡지도 결국엔 명목상 하는 일 정도에 불과해 보였다. 그러니 엄청 잘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의식도 없고, 자기 인맥들을 총 동원하여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실어주는 일이라고나 할까. 왜 기획안 같은 게 필요 없다고 하는지 답이 나왔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그는 약속이 있다며 유유히 사라졌고, 나는 친구와 사무실로 돌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일단은 인터뷰가 잡힌 게 없으니 당분간은 눈도장 찍을 겸 사무실로 출근하겠다고 했다.


<첫 출근 前>

정해진 출근 시간은 없지만 1시까지 출근하면 된다고 전달받아 12시 40분 도착에 맞춰서 가고 있었다. 그리고 12시쯤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야"


"네! 지금 사무실 가는 길입니다."


"너는 뭔 일을 그따위로 해"


"네?"


"아니 온다고 하면 어디쯤인지 보고해야 될 거 아니야!"


이게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 건지. 출근하면서도 내가 어디쯤인지 보고 하란 건가?

순간 무언가 찌릿하며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이 노인네 지금 길들이기 하는 건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진성 꼰대들 중에서 저런 테스트를 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 할지라도 찍소리 하지 않고 '네! 알겠습니다'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다. 물론 전혀 이해는 되지 않지만 이미 군생활을 통해서도 그런 사람들을 경험해 봤던 터라 나는 나를 숨긴 채 사회적 가면을 휙 바꿔 끼며 연기를 했다.


"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겠습니다.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대표는 알았다며 바로 뚝 끊었다. 그리고 현재 위치와 몇 시 도착 예정인지와, 죄송합니다라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담아 최대한 공손하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대표가 전화할 때 옆에 홍실장이 있었는데 나중에 홍실장을 통해 전해 들은 바로는 전화 통화를 끊고 내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쓰윽 보여주면서 '애가 됐네' 하며 흐뭇해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기상천외한 일들이 등장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대표의 성향의 디폴트 값이 바로 저거다. 철저하게 대감집 마님과 하인의 관계에서나 볼 법한 철저한 상하관계에서 오는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비위를 맞춰주기 쉬운 타입일 수 있지만, MBTI 성향이 INTP인 나와는 상극 중의 상극이기도 했다.


<첫 출근 後>

막상 출근은 했지만 거기서 딱히 할 게 없었다. 10년 전쯤 발간된 잡지들을 쭉 훑어봤는데, 대표는 나름대로 그 퀄리티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하며, 이 정도 수준은 뽑아야 한다고 압박을 했다. 그런데 내가 볼 때, '도대체 이 정도 퀄리티를 기준으로 삼으라는 건가?' 의아했다.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담당했는지 잡지는 통일성도 없고 중구난방이었다. 물론 내용적인 부분은 나쁘지 않은 게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책이건 잡지건 뚜렷한 목적과 레이아웃이 명확하게 잡혀 있어야 하는 건 해당 업종의 일을 해보지 않은 나라도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그럼에도 잡지들은 중구난방이니, 어쨌건 이것들보다 훨씬 좋은 퀄리티로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오후 시간을 보내고 오후 6시에 퇴근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그런 반복적인 일상이 펼쳐졌다. 그리고 나름대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바로 퇴근시간이다. 도대체 할 것도 없이 왜 이곳에서 시간을 때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누가 봐도 대표는 그냥 내가 일하는 척이라도 하며 사무실에 있는 게 좋았던 거다. 빨리 인터뷰를 잡아주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음에도 출근을 한지 일주일이 지나도 인터뷰는 잡히지 않았다. 그러면 적어도 집에서 기획기사라도 작성하면서 보내야 하는데 쓸데없이 사무실에 붙잡혀 있으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오후 3시 반쯤 아주 해맑고 태연한 표정으로 대표를 보며 외쳤다.


"대표님!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이 한 마디가 대표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홍실장은 항상 대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해줬는데, 그날 내가 그렇게 말을 하고 나간 후 대표의 얼굴이 엄청 일그러지면서 어떻게 감히 자기가 있는데 먼저 갈 수 있냐고 역정을 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걸 듣고 있던 홍실장이 대표에게 한 마디 했다고 한다. 참고로 홍실장은 대표에게 직언을 사정없이 날리는 나와 비슷한 성격의 여성이었다.


"아니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그런 생각을 하고 계세요? 그리고 저분은 기자잖아요. 기사를 쓰는 사람이지 사무실에 붙박이처럼 있어야 되는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홍실장이 시원하게 해 줬다.

아무리 꼰대 비위를 맞춰 주는 게 중요하다고 해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춰줄 수 없는 것이고, 나름대로 부하직원도 상사 길들이기를 해야 한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강하게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던져줘야 내가 편해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염없이 사무실 붙박이처럼 지내다가 심심한 노인네 저녁 수발까지 들게 되고, 술까지 한 잔 하게 되면 그냥 개인 비서의 삶과 달라질 게 없게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경력 위조>

대표는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들 위주로 인터뷰 섭외를 하면서도 자신의 인맥으로 섭외되지 않는 사람들의 인터뷰는 모 총장님을 통해 소개받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둘 사이에 친분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대표는 나와 홍실장을 데리고 총장님 사무실로 향했다. 사실 나를 인사시킬 필요는 없지만 대표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가 데리고 있는 사람들을 과시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기자 출신도 아니고 그런 경력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세울 것도 없었는데, 대표는 수습도 하지 못할 최악의 시나리오를 연출했다.


"아~여긴 이번에 인터뷰할 편집국장. 국회 출입 기자 출신이니까 잘 좀 부탁해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정말 가만히 있다가 뒤통수를 세게 후려 맞는 느낌이었다. 국회에서 잠깐 일을 한 건 사실이지만 기자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고, 내가 편집국장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이렇게 소개를 하면 당연히 상대방은 어느 신문사에 있는지 물어볼 것이 뻔하지 않은가. 이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총장은 미소를 지으며 "아~그래? 어느 신문사?"라고 물었다. 내가 여기다대고 TV조선이니, 한겨레니 거짓말을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에? 아... 네" 하며 세상 병X같은 행동을 하고야 말았다. 누가 봐도 거짓말인 게 들통난 순간이고, 거짓말을 한 사람은 대표인데 그 수치심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불쾌함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았지만 그 자리에서 티를 낼 수는 없고, 두 귀는 방울토마토처럼 시뻘게졌다. 총장님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지만 이미 표정에서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었다.


30분간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대표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대표님 죄송한데 앞으로 국회출입기자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굳이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지도 않고요"


대표는 절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야! 그런 건 네가 알아서 해결해야지. 그런 것도 해결못하고..에휴...아니 그 양반은 굳이 어디 신문산지 왜 물어봐서는...에이"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물어볼 말이고, 도대체 뭘 어떻게 수습하라는 건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대표에게 다시 한번 앞으로 절대 그런 행동은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고 어금니를 꽉 깨물며 진지하고 정중하게 전달했다.


"알았으니까 들어가 봐"



<첫 번째 인터뷰>

정확히 내가 출근한 지 14일째 되던 날 첫 번째 인터뷰가 잡혔다.

일단 나는 기자가 아닌 편집국장이었다.

기자라고 하면 상대방이 무시할까 봐 편집국장이라고 명함을 팠다고 한다.

그리고 기사만 쓰면 되는 게 아니라 표지부터 레이아웃, 기획기사 선정 및 작성, 인터뷰 기사 등등 그냥 내가 혼자 다 알아서 해야 하는 업무였고, 내 친구도 자신이 전해 들은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어서 당황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나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다. 심지어 잡지 페이지수는 150페이지로 정했다고 한다. 중간에 광고와 목차등을 감안하더라도 최소 130페이지 분량의 기사로 잡지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첫 인터뷰를 2주가 지나서야 잡아주었으니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첫 인터뷰였기에 걱정됐는지 홍실장과 내 친구를 대동해서 가도록 지시했다.

대학교 학장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사실 인터뷰 자체는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상했던 30분을 훌쩍 넘은 1시간이 소요됐고, 다행히 학장님도 인터뷰 질문에 굉장히 만족했는지 따로 문자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이 상황을 지켜본 홍실장은 고맙게도 대표에게 가서 입에 침이 닳도록 칭찬을 해주었다.


"저도 사실 반신반의 했는데, 저분 진짜 일을 너무 잘하네요. 인터뷰 진행이 너무 자연스럽고 학장님 과거 이력들도 다 외우고 가서 거기서 질문을 이끌어 내는데 학장님이 그때부터 표정이 굉장히 좋아진 게 눈에 보이고 제가 봐도 너무 완벽했어요. 그냥 믿고 맡기셔도 되겠어요"


그냥 지나칠 수 있음에도 이렇게 뒤에서 칭찬을 해줬다고 하니 홍실장에게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대표는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뭐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어떻게 하면 저 150페이지 분량을 채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 외에는 없었다. 결국 내가 아무리 나이스하게 인터뷰를 했건 못했건 결국 마감 날짜에 최종 결과물로 평가받는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가 크게 부담 갖지 말고 하라고 했음에도 내 생각은 전혀 달랐다.


"야! 대표가 여유 있게 하라고 하는 거? 그거 내 계약 기간 지나서도 그냥 무보수로 하라는 의미지 그 기간만큼 돈 준다는 거 절대 아닐걸? 그리고 결국 나는 결과물로 평가받을 거라 지금은 저렇게 여유 부려도 결과물이 안 나오면 내가 뒤집어쓸 수밖에 없어"


"야 그건 절대 아니야. 돈 관계는 확실한 사람이라, 계약기간 지나서 더 하게 되면 그건 100% 돈 줄 거야. 그건 걱정 마. 그리고 대표가 너 되게 마음에 들어 해서 계속 너랑 일 하고 싶어 하던 눈치던데?"


"네가 아직 모르네 대표를... 하긴 널 엄청 총애하고 어떻게든 키워주려고 액션을 취하니까 그렇게 보일 수 있는데, 내가 볼 때 저 사람은 개국공신 타입이 아니라 환관 타입이야. 개국공신은 꼰대여도 자기 부하들 한 자리씩 주지만 환관들은 자기가 세력을 잡았을 때 그 누구도 챙기지 않아. 지 이익만 챙기지. 너네 대표가 딱 그런 관상이야. 두고 봐 봐"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고유한 장점을 갖고 있다.

그게 잘 발현이 되면 특기가 되고, 발현이 되지 않더라도 평타는 치게 된다.

그래서 노력은 타고난 재능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이다.

프로들의 경쟁은 재능 있는 사람들의 노력 싸움이자,

압도적으로 특출 난 천재가 영재들을 압살 하는 구도로 가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잘하는 것을 잘 살리는 걸 직업으로 삼아야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엔, 사람들의 미세한 행동을 예리하게 보는 편이라 장기간 그 데이터가 쌓여 소위 말하는 '감'이 뛰어난 편이다. 남들 눈에는 착한 사람도 내 눈에는 전혀 아닌 경우가 보이는데 지나고 보면 99.9% 확률로 내 감이 맞았다. 그래서 인터뷰가 나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기도 한 것일 수도 있는데, 컨설팅 일이 잘 맞는 이유도 이런 부분이 다른 경쟁자들과 차별화된 능력이기 때문이다.

즉, 적어도 그 당시 내가 본 대표에 대한 예측은 두 달 후 명확하게 들어맞았고, 내 친구도 이 일을 겪으면서 대표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표의 진면목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았다.

빙산의 일각이라고 해야 할까?

이 정도의 사람이면 내가 충분히 맞춰 줄 수 있었고, 딱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의 면모들을 보여주면서 '와~이런 인간이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이용해 먹고 버리는지...


(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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