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1년 후, 가게를 옮겼고 그곳에서 18kg이 다시 쪘다. 성인 여자 표준 몸무게 이긴 하지만 몸이 불어나서 그런지 특히나 생리양이 굉장히 차고 넘칠 만큼 많아져서 평상시 하지 않던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곳은 좌식이었고 바닥이 차 방석을 깔고 앉았다. 식사 후 일어나 보니 그 방석이 피로 흥건히 젖어있는ᆢ그야말로 내 인생 최악의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눈을 질끈 감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그리고 생리만 하면 이전에는 없던 증상인 빈혈이 생겼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곧 혼절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며 가만히 서 있는데도 어지럽고 휘청거렸다.
그저 살이 쪄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지 근종 때문일 꺼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10여 년의 세월을 반추해 보니, 불어난 살 때문에 생리양이 많아졌다고 단정 짓는 것도 좀 이상했다. 왜냐하면 특정 증상들이 갈수록 점차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겪은 자궁 근종 증상들.
1. 없던 생리 증후군들이 생겼다
이를 테면, 생리하기 전, 배란기 때가 다가오면 아랫배뿐만이 아니라 배 전체가 묵직한 듯 느껴졌다. 살이 쪄서 그런 거라 생각이되어 식단과운동을 병행하여 열심히 다이어트 했지만 빠지라는 살은 절대 빠지지 않았다.
2. 과한 생리양
살면서 생리대 대형을 써본 적이 없을 정도로 양이 적었는데, 어느 순간 첫날부터 대형을 써야 했다. 차에 타거나 의자에 앉는 게 몹시 불안하여어정쩡하게 삐딱한 자세를 취하게 된다.
3. 생리 전, 생리 중 빈혈
생리 전이든 생리 중이든 어지러움이 심했고 얼굴이 창백했으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등허리가 휘는 듯한 통증을 참아가며 서서 일했다. 일 하는 중간중간 쓰러질 것만 같아 말 그대로 정신이 혼미했다. 눈앞이 까마득해 아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4. 덩어리 혈이 나온다.
글자 그대로다. 울컥울컥 그것들이 나올 때마다 너무나 징그럽고, 이 것 때문에 생리통이 심한 건가 싶었다.
5. 살이 너무나 쉽게 쪘다.
고봉밥을 먹었던 것도 아니었고, 하루에 두 끼를 평상시처럼 먹었던 것 같은데도 살이 급속도로 쪄서 운동이라는 걸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큰맘 먹고 PT를 끊었고 인생 최고의 몸무게와 인생 최고로 많은 종류의 운동을 경험을 했다.
6. 아랫배 통증
콕콕 배가 쑤시는듯한 통증을 자주 느꼈고 누워서 이리저리 배를 만져보면 오른쪽 아랫배가 유난히 아팠다. 윗배보다 아랫배가 유난히 튀어나왔지만 살이 쪄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7. 야간뇨
이건 정말 심각했다. 수술 전 날 까지도 자다가 말고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본 횟수가 10번이 넘었었다.
자다가 깨버리는 횟수가 많아지니 그만큼 다음 날 피곤하고 힘이 들었다.
그 밖에도 많은 증상들이 있었겠지만, 이런 증상들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던 이유를 생각하면 모든 건 스트레스였지 않았을까 싶다. 가게를 운영하게 되며 오는 스트레스를 몸이 견딜 수 없었을 것 같았다. 어떤 이는 여성의 몸으로 때가 되면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데 이를 따르지 않은 죗값(?) 일 수 있다는 얘길 했다. 그 말도 어느 정도는 일리 있다 추측만 할 뿐, 사실 요즘 같이 비혼주의가 많아진 세상에, 모든 비혼주의 여성은 자궁의 질환을 달고 사는 건가 생각하면 그것도 확실치는 않다.
코로나 때문에 입원하기 정말 힘들었던
수술을 청주에 있는 모 병원에서 하기로 한 후, 손님들께 15일 정도 자리를 비운다는 소식을 전했다.
손님들은 감사하게도 많이 걱정해 주셨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신다고도 했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그저 수술 잘 받고, 건강히 회복해서 돌아오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수술일정을 잡고 내 질환과 관련한 카페에 가입했다. 파워 J답게 많은 정보들을 습득 한 뒤,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입원 시 필요한 준비물 이라던가, 이렇게 입고 가면 좋다더라, 뭘 가져간 게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다던가 하는 직접 겪은 생생한 그 들의 꿀팁들을 메모하거나 머릿속에 저장했다.
그리고 나는 밤마다 동네를 뛰거나 걸었다. 그저 마음이 착잡하고 심란하여 움직였던 것뿐이었는데, 일주일 만에 살이 5kg이 빠졌다. 그렇게 죽어라 운동해도 빠지지 않던 살이 빠지니 최고의 다이어트는 역시 마음고생이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입원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아침9시.
드디어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머리를 양쪽으로 땋고 가면 좋다는 글을 본 게 기억이 나, 수술 30분 전부터 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스트레칭을 했다. 특히 하체 위주의 스트레칭을 하면서 정말 작정하고 전투에 들어가는 전사의 마음으로 임했다. 남들이 보면 웃으며 미쳤다고 할지 모르지만, 아픈 건 질색이라.. 최대한 수술 잘 받고 빠르게 회복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리라,
그러고 나서는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혹여 내가 잘 못 될까 두려워 유서 아닌 유서를 작성해서 가게 카운터에 넣어놨다고 웃으며 농담을 하니, 마치 본인이 수술받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울고 있었다. 내 인생 첫 수술은 쌍꺼풀 수술이었는데.. 이것이 진! 짜! 수술인가 싶어 긴장이 됐다. 며칠 휴가를 내어 보호자로 같이 와준 친구도 얼굴이 좋지 않았다. 본인 허리디스크 수술할 때 보다 더 긴장한 것 같았다.
4일간 퉁퉁 부은 손을 안겨준 링겔
수술실은 차디 찬 냉기로 가득차서 혹시 내가 냉동실에 갖힌건가 싶었다. 아마 긴장한 탓에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간호사 선생님이 머리를 아주 예쁘게 땋았다며 칭찬해주시며 주삿바늘을 팔에 꽂았다.
"마취하는거예요?" 하며 기절했다.
"밥 먹었어?"
내가 수술실에서 나오자마자 한 첫마디였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기다려준 친구에게 한 첫마디였는데 왜 그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때의 기억은 없지만 친구가 말하기를 계속 '추워 추워'라는 말만되풀이했으며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떨어져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마취가 다 깨어 정신이 들었을 때, 그제야'나 살았네?' 안도감이 밀려왔다.
모든 걸 내려놓고, 맡기고, 받아들이는 순간, 쫄보 겁쟁이도 대담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소변줄과 피통을 차고 회복을 위해 병원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30분마다 한 번씩. 그게 더 곤욕이었다.
수술 후 집으로 돌아와 회복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했는데, 제대로 먹지는 못했다. 가스통 때문이었다. 음식물이 조금만 들어가도 가스통에 온몸에 유리파편이 돌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오른쪽 다리가 어딘지 모르게 저린 느낌도 들었다.
5일 정도 가스통에 시달리며 일주일을 더 쉰 후, 매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가게로 복귀 후, 첫 손님을 받고 결제를 하려 하는데 , 예전 오르지 않았을 때의 금액을정말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고 손님이 오히려 나에게 그 가격 아니지 않느냐는 말을 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했고, 가격 메뉴판을 내 눈으로확인하고 나서야 내가 틀렸구나 생각이 들었다. 뭐지? 왜 내 기억에 오류가 생긴 걸까? 수술 부작용인가..
이뿐만 아니라 수술 부작용에 대해 생각해 보니 연하곤란이 있었다. 음식을 삼키면 잘 넘어가질 않고 목이 메었다. 검색해 보니 전신마취를 오래 하면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소소하게 부작용 아닌 부작용을 겪다 보니 다른 장점도 보였다.
가장 큰 장점은 생리양이 이전에 비해 훨씬 줄었다는 점이었다. 생리양이 줄어든 것만으로도 좋았지만 가장 심각했던 야간뇨 증상도 확연히 줄었고, 생리통을 견디기에도 훨씬 수월했으며, 신기한 점은 불규칙했던 생리예정일이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규칙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렇게 증상이 판이하게 바뀌니 그간 고생했던 건 생각나지 않고 수술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드디어 생리 지옥에서 몇 발짝 멀어진 기분이랄까.
이제 수술한 지 2년이 넘어간다.
중간에 검진을 두어 번 다녀 왔을 때, 수술 누가한 건지 정말 예쁘게 잘했다고 자화자찬하시던 선생님은 몇 개월후, 국가 자궁경부암 검사를 하기위해 방문했을때 초음파를 보며 1cm정도의 근종이 또 보인다고 시무룩하게 말씀하셨다.
하ᆢ 지긋지긋한 근종.
최선을 다해서 모르는 척하고 싶다.
수술 이후, 산부인과 검진을 손님들과 지인들에게 적극 권유했다. 나의 사례로 경각심을 갖고 부디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