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40분에 알람을 맞춰 놓고 잤다. 내가 못 들었는지 시계는 6시 10분이었다. 기차 시간은 7시 3분, 집에서 역까지 40분, 양치하고 씻고 나가기까지 20분. 한 시간이 필요하다. 가늘어진 머리털에 오랜만에 힘이 들어갔다. 짜릿했다. 입에서는 계속 “오예~!”, “오예~!”를 중얼거리며 나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뭐랄까,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마법 같은 주문이었다. 혼자 치열한 레이스로 목표 지점에 겨우 도착했다.
첫 외침은 “아~씨!”였다. 기차가 7분 연착이랬다. 평소 연착 방송은 짜증 거리였는데 오늘은 다시 찾은 여유 탓에 그나마도 고마웠다. 한편 ‘연착을 알았더라면 몇 번의 신호 위반은 없었을 텐데‧‧‧‧‧‧.’하는 부끄러운 행동에 대한 아쉬움이 들었다. 첫 외침은 일주일 내 우편함 앞에서 다시 외칠 수도 있다. 우편함 밖으로 삐죽이 튀어나온 누런 종이 끄트머리를 보면 말이다. 짜릿했던 레이스 중 일부 통과 지점 결과를 경찰서에서 확인해 준다. 그 결과지를 들고 짬뽕과 짜장 둘 중 하나를 고르듯, 나는 잠시 내부 분열을 일으켜본다. 이제는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돈 만 원을 더 낼지, 벌점을 더 받을지. 일단은 경찰서에서 나의 레이스를 모르길 바라며 기차에 탔다.
첫 계단을 디디는 첫 발에 느껴지는 안도감을 거친 행복감은 9시 이후 펼쳐질 일을 상상하게 해줬다. 서울에 가서 뭐를 하고, 뭐를 먹으며, 어디에서 차를 한잔하고 등, 내가 세웠던 계획이 하나씩 정리되는 상상은 행복함 그 자체였다. 좌석번호를 오른쪽, 왼쪽으로 도리도리하면서 내 자리를 찾아갔는데 50대 초반 여자가 앉아 있다. 당당하고 싶었지만 당황스러웠다. 그냥 빈자리라서 잠시 앉아 있겠거니 했는데 비켜주지 않는다. 내 자리라고 쳐다보면서 눈길을 슬쩍 주니 당당하게 눈길을 되받아친다. 자기 자리라고 했다.
표 확인차 서로 핸드폰을 꺼냈는데 내가 예매한 자리하고 똑같은 번호였다. 분명했다. 몇 초를 이리저리 훑어보니 내가 보는 앱과 여자가 보는 앱이 달랐다. 나는 푸른빛이고 여자는 보랏빛 앱이었다. 내가 SRT라고 말해줬다. 7시에 외쳤던 ‘아~씨!’를 여자도 속으로 외쳤을 거다. 이제는 그 여자가 당황해 얼굴이 SRT 빛이 되었다. 일단 자리를 비켜줬다. 바로 옆자리가 비어 있어 그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마치 내 자리인 것처럼.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 것이다.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6시 10분에 내가 그랬으니까.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어.’라고 속으로 격려해 줬다.
자리에 앉아 여유를 부리려고 일부러 창문 턱에 팔도 걸쳐 봤다. 고지를 탈환한 장수 심정으로. 여유도 부려봤으니 기차 탄 이유를 생각하며 흥인지문이라 불리는 ‘동대문’에 대해 공부를 했다. 알면 알수록 동대문 심정이 느껴져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동대문아! 너의 오른팔과 숭례문 왼팔은 떨어졌던 적이 없었지.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많은 사람이 하소연하고, 때로는 발길질해도 절대 놓지 않았던 두 손.
어느 날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이 쳐들어와 너희들을 떨어뜨려 놓으려, 두 팔을 자르고 전찻길을 낼 때 마음이 어땠었냐.
팔이 다 잘려 나가고 몸뚱이만 남아 따로 똑같이 서 있던 어느 날, 숭례문은 불에 탔었지.
타들어 가는 열기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과 연기, 사람들이 핏대 세워 통곡하던 소리를 동대문 너는 어찌 가만히 듣고 있었냐? 무섭지 않더냐?
형제가 불구덩이에서 쓰러져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너 마음도 같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겠구나.
수백 년 동안 사람들 사는 이야기 듣고, 지켜보고, 외세 침략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너희들 참 대단하구나.
그래도 몇몇 형제들을 잃었지만, 긴 세월 잘 견뎌줘서 고맙구나.
어떤 일이 있어도 굴하지 않고 하늘을 찌르는 듯한 기세를 가진, 너의 처마 선을 보고 있으면 항상 당당해서 보기 좋고,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라고.
동대문이라는 가명을 가진 흥인지문. 그런데 우리는 왜 동대문이 더 익숙할까. 아마 어려서부터 불렀던 “동 동 동대문을 열어라~남 남 남대문을 열어라~열두 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라는 노래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양도성 여덟 개 문 중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대문이라고 불렀다. 내 고향 대구에 가면 앞에 있는 산이라고 ‘앞산’이라고 부르더니.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한양도성 여덟 개 중 가장 아픈 손가락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오송역이다. 장날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전을 걷으려는 난전 주인처럼 옆자리 여자가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기고 있다. 여자는 이제 나를 쳐다보면서 눈길을 슬쩍 준다. 제대로 걸렸다. 내 눈에도 창문 기둥에 꽂혀 있는 핸드폰 충전기가 보였다. 그것을 빼달라는 의미였다. 나는 얼른 빼줬다. 그가 얼마나 이 기차에서 빨리 내리고 싶은지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 오송역을 뒤로 남겨두고 빠르게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다음 내 옆자리 주인은 오송역에서 내린 여자 바로 앞자리 20대 젊은 여자였다.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여자가 갑자기 한 칸 뒤로 오더니, 앉자마자 가방에 노트북을 꺼내면서 한숨을 깊게 내쉰다. 그 한숨은 오송역에서 내린 여자를 원망하는 한숨이었다. 이 여자도 자기 자신이 답답했겠지. 내 자리 두고 내 자리라고 말 못 한 그 마음 누가 알까. 나는 조금 알 것 같은데. 내 자리를 두고 내 자리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던 7시 10분에 내가 그랬으니까.
힐끔힐끔 곁눈질해 보니 노트북에서 뭔가를 한창 작업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자기 자리에서 했더라면 계속 이어서 할 수 있었던 작업이었다. 이사 다닌다고 작업을 저장하고 노트북을 끄고, 다시 이사와 노트북을 켜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분명 귀찮았을 것이다. 키보드 누르는 소리가 거슬리고 나는 점점 그 소리에 꽂혔다. 거슬리는 소리가 내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몹시 짜증 내는 마음이 내 마음에 전해졌다. 덩달아 나도 불편했다.
광명이라고 차내 방송이 나온다. 작업이 끝났는지 분이 안 풀려 작업이 안 되는지 노트북을 덮었다. 나는 노트북 덮는 게 더 불안했다. 왜 그런지 나는 모른다. 알아도 모르고 싶다. 오송역에서 내린 여자는 알 것 같은데 말이다. 오늘따라 검은 가죽 재킷이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불안한 마음에 공부하던 동대문을 닫고, 빠른 몸동작으로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 미디어를 틀었다. 그리고 화면만 묵묵히 쳐다보고 있었다. 곁눈질 한 번 주지 않고 화면만 봤다. 심지어 몸도 살짝 창 쪽으로 돌렸다. 갑자기 분을 못 이겨 “아저씨!”라고 부를 것 같아서. 웃지 못할 일이다.
한참을 웅크려 핸드폰 화면을 보다 보니 한강철교를 건너고 있었다. 갑자기 객실 내에 멜로디가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마지막 역인 서울역에 도착합니다.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금방 눈 떠서 놀란 나를 진정시키던 “오~예!”는 너무 진정된 나를 놀라게 했다. 옆자리에 있는 날카로워진 젊은 여성을 더 이상 안 봐도 된다는 생각이 났으니 말이다.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했다. 우주비행사가 몇 달간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지구로 귀환해서 첫 발을 딛는 것처럼, 드디어 플랫폼을 디뎠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서울역에 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오늘 서울역은 너무 멀었다.